형식적 측면에서 한국 언론은 뉴욕타임스 등 해외 유력언론에 비해 ‘좋은 기사’ 비율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저널리즘 연구회’는 20일 오후 한국기자협회, 한국언론학회, 삼성언론재단이 주최한 ‘한국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국내 종합일간지 10곳과 해외 언론의 뉴스품질을 비교한 결과를 공개했다.

뉴스품질 평가는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우수 저널리즘 프로젝트’ 지표를 인용해 ‘퀄리티 저널리즘 지수’를 개발해 적용했다. 기사당 △투명 취재원(실명 취재원)이 4명 이상 등장 △이해당사자가 4명 이상 등장 △단일한 관점이 아닌 복합적 관점이 담길 것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기사를 ‘좋은 기사’로 꼽고 비율을 비교했다. 기사 내용에 대한 질적 평가는 이뤄지지 않았다. 조사 대상은 지난해 1년 동안 10개 일간지의 1면 기사다.

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좋은 기사’ 비율은 국내 10개 일간지의 경우 7.5%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55.6%, 영국의 더타임스는 31.5%로 나타났다.

▲ 디자인=이우림 기자.
▲ 디자인=이우림 기자.

뉴욕타임스는 기사당 평균 실명 취재원이 8.4명에 달한 반면 국내 10개 일간지는 2.6명에 그쳤다. 기사에 익명취재원만 등장하는 기사 수는 국내 일간지가 6.9%로 나타났지만 뉴욕타임스, 더타임스, 아사히신문에서는 1건도 없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북한 관련 보도에서 확인이 불가능한 대북소식통 등 익명취재원의 발언만 인용해 기사를 작성한 경우가 많았다.

뉴욕타임스 기사에 등장하는 이해당사자가 평균 7.7명으로 나타났지만 국내 10개 일간지는 3분의 1에 불과한 2.6명으로 나타났다. 뉴욕타임스의 복합적 관점을 담은 기사비율 역시 58.3%로 한국 10개 일간지(17.1%)와 격차가 컸다.

특정인의 주장을 직접 인용해 제목에 담는 비율은 국내 10개 일간지에서 59%로 높게 나타났지만 뉴욕타임스 3%, 더타임스 0%, 아사히신문 14%에 불과했다. 이나연 성신여대 교수는 “사실확인이 되지 않은 발언을 제목에 담으면 검증없이 보도를 하게 돼 사실관계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종합일간지 지면.
▲ 종합일간지 지면.

국내 일간지 1면 기사의 심층성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사건의 단순전달이 아닌 맥락을 담은 기사 비율이 국내 10개 일간지는 9%에 불과한 반면 뉴욕타임스는 71%에 달했다. 기사에 ‘원인’ ‘과정’ ‘결과’ 전망’ 등을 모두 담은 기사 비율 역시 국내 10개 일간지가 4%에 그친 반면 뉴욕타임스는 19%로 나타났다.

국내 일간지끼리 비교할 경우 ‘좋은 기사’ 비율이 한겨레(12.7%), 경향신문(11.4%), 세계일보(9.7%), 문화일보 (8.3%), 동아일보·서울신문(7%) 국민일보(5.6%) 중앙일보(4.8%) 조선일보·한국일보(4.2%) 순으로 나타났다.

기사 당 실명 취재원 수는 한겨레가 3.3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민일보(2.9명), 동아일보·중앙일보(2.6명) 순이다. 기사에 등장한 이해당사자 역시 한겨레가 3.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복합적 관점이 담긴 기사 비율은 경향신문(22.9%)이 가장 많았다.

▲ △투명 취재원(실명 취재원)이 최소 4명 이상 △이해당사자가 4명 이상 △단일한 관점이 아닌 복합적 관점일 것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기사의 비중. 조사 대상은 10개 일간지의 지난해 1년 동안의 1면 기사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 △투명 취재원(실명 취재원)이 최소 4명 이상 △이해당사자가 4명 이상 △단일한 관점이 아닌 복합적 관점일 것 등 3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기사의 비중. 조사 대상은 10개 일간지의 지난해 1년 동안의 1면 기사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와 관련 박재영 고려대 교수는 “한국 언론 사이의 차이는 대체로 미세하기 때문에 우열을 판단하는 지표로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현업 언론인들은 확인할 수 없는 관계자 인용이 남발되는 문제에 공감했다. 정경민 중앙일보 부국장은 “당사자로부터 똑 부러지는 증언을 듣기 어렵다보니 주변부에서 훑어서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아 정확도가 떨어지고 언론플레이를 당할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남구 한겨레 논설위원은 “관계자라는 표현으로 쓰게 되면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2007년 한겨레는 취재보도준칙을 제정하며 익명보도를 ‘취재원이 익명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을 때’ ‘신원이 드러나 불이익이 우려되는 경우’에 한정하도록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분석에서 한국 언론의 특성이 간과된 점이 있어 개선의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남구 논설위원은 “미국언론은 객관주의 저널리즘이 강하고 한국은 그렇지만은 않은 상황”이라며 “객관주의 전통에서 나오는 지표만 갖고 분석하기 보다는 평가요소를 다양화하고 한국상황에 맞게 가중치 둬야 한다”고 말했다.

정경민 중앙일보 부국장은 “한국은 ‘일톱삼박’이라고 해서 1면 톱 기사는 3면에 박스기사로 풀어주는 식으로 기사내용이 복잡해지면 기사를 따로 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취재원이 적고, 종합적 시각이 담기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가 1면 톱기사부터 2~3면까지 하나의 기사로 구성한다면 한국언론은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발언’을 1면에 담으면 △전기요금에 미치는 영향 △해외상황 △정치권 반응 △주민 반응 등을 각각 별도의 기사로 쓴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한쪽 입장을 듣더라도 중요한 내용을 담은 단독기사는 좋은기사에 반영되기 힘든 평가기준의 한계 △정부 및 업계 관계자가 언론에 직접적인 노출을 꺼려하는 취재환경 △장기 취재기사를 1면에 게재하는 뉴욕타임스와 당일 제작된 기사를 1면에 싣는 편집의 차이 △발언을 제목에 인용해 강렬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편집적 특성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연구를 수행한 박재영 교수는 개선점을 인정하면서도 “‘일톱삼박’을 왜 고수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필요도 있다”면서 “한국언론은 소비자들이 읽고 나면 더 궁금해 하고 한쪽으로 쏠리게 되는 불만이 있다. 생산과정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소비자들이 그것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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