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의 강력한 저항이 통했다. 정부가 22일 발표한 가계통신비 절감대책에서 결국 ‘기본료 폐지’가 빠졌다. 통신3사는 정부의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율 상향’도 위법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양날의 검인 요금인가제 폐지를 두고서는 시민사회와 정부가 대립하는 모양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국정위)는 22일 오전 ‘가계통신비 절감대책’을 발표했다.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제’ 할인율을 기존 20%에서 25%로 상향 △취약계층 통신비 감면 및 기존 감면 혜택 확대 △알뜰폰 전파사용료 감면 연장 등이 핵심이다.

국정위는 장기 과제로 △최저요금제 2만 원대 도입 △공공와이파이 20만 개 설치 △단말기유통법(단통법) 개정을 통해 보조금 상한제 폐지, 분리공시제 도입 및 국내·외 단말기 출고가를 비교 공시 등을 제시했다.

▲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이개호 경제2분과 위원장이 22일 오전 ‘가계통신비 절감대책’을 발표했다. 사진=노컷뉴스.
▲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이개호 경제2분과 위원장이 22일 오전 ‘가계통신비 절감대책’을 발표했다. 사진=노컷뉴스.

‘기본료 폐지’ 도입, 통신사 반격에 무너지다

가장 주목을 끌었던 ‘기본료 폐지’는 결국 빠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으로 통신3사의 요금 중 1만1000원에 달하는 기본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기본료는 통신3사가 망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요금에 포함하는 것을 말한다. 국정기획자문위(국정위)와 시민단체는 “망 설치가 끝났기 때문에 기본료가 필요 없지만 1만1000원 가량을 걷고 있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통신3사는 “기본료 자체가 없다”며 맞섰다. 미래부 역시 통신사의 편을 들자 최민희 국정위 경제2분과 자문위원은 업무보고를 거부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본료가 있다는 점은 미래부도 인정한 적 있다. 2015년 11월 국회에서 최재유 미래부 차관은 “기본료 1만1000원을 일시에 폐지하면 모든 사업자가 적자 상태로 된다”고 밝혔다. 기본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기 이전에 19대 국회 때 민주당의 정책이기도 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는 ‘통신요금 산정 근거 및 원가공개’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통신사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요금의 원가를 밝히지 않고 있고, 정부로서는 강제할 수단도 없다. 관련 정보공개 소송이 진행중이지만 대법원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기본료 폐지’를 둘러싼 국정위와 미래부의 기싸움을 통해 미래부가 다른 방안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게 되는 ‘협상 전술’로서 효과를 거둔 건 사실이다. 정부는 기본료 폐지를 포기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본료 폐지’가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였고, 19대 국회 때부터 반복된 반발이었음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밀어붙인 점은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사 판매점.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사 판매점. ⓒ연합뉴스.

25% 요금할인이 위법? 통신사의 ‘억지’

국정위가 미래부를 압박한 성과로 나온 정책이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율 상향’이다. 단통법이 도입되면서 핸드폰을 구입할 때 ‘보조금’을 받을지, 아니면 기기값을 전부 지불하고 20% 요금할인을 받을지 선택하게 됐다. 보조금을 받지 않고 기기만 구입하는 이용자들이 차별받아선 안 된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통신사는 요금할인율 상향이 위법 소지가 있다며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유는 ‘법적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단통법에는 요금 할인을 정할 수 있는 지위가 명확하지 않은데 하위개념인 고시에서 ‘(미래부 장관이) 요금할인 범위를 가감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 게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통신사가 문제제기를 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2015년 4월 박근혜 정부 때 방통위와 미래부는 할인율을 기존 12%에서 20%로 조정했지만 위법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당시 보조금 상한선이 너무 낮아 시장이 침체되자 상한선을 올리면서 요금할인율도 함께 인상한 것인데 유불리에 따라 판단이 바뀐 것이다.

▲ 서울 시내 통신대리점. ⓒ 연합뉴스
▲ 서울 시내 통신대리점. ⓒ 연합뉴스

할인율이 20%에서 25%로 올라가면 통신사의 손해가 이전보다 커지는 건 불가피하겠지만, 여전히 요금에 ‘마케팅비’ 거품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1일 KBS는 통신사 요금의 40%가 마케팅비라는 내부자료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25% 할인율이 과도하다고 볼 수만도 없다. ‘기본료 폐지’와 달리 ‘25% 요금할인’은 통신사의 내막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주무부처인 미래부가 내세운 정책이다. 이개호 국정위 경제2분과 위원장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미래부는 통신사 별로 통신비 구성 요소를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 5% 할인율을 올리더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해외 주요 사업자의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율’ 평균은 25.2%다. 프랑스 오렌지는 37.6%, 일본 NTT도코모는 48.2%까지도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25%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아니다.

요금인가제 폐지는 양날의 검

앞으로 논란이 예상되는 대목은 ‘요금인가제 폐지’다. 국정위가 보편 요금제 출시를 의무화하는 대신, 다른 요금은 통신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도록 인가제를 폐지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점이 발단이 됐다.

요금인가제는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의 통신요금을 사업자가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정부가 인가하는 제도다. 1위 사업자가 부당한 요금을 산정하거나 담합을 하는 등 불공정거래행위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1위 사업자가 요금을 인가받으면 2위, 3위 사업자가 대동소이한 요금을 책정해 담합을 막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시민사회단체와 정부의 해법은 정반대다. 정부는 요금인가제를 폐지하면 통신사가 자율적인 경쟁을 통해 보다 가격이 낮은 요금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은 19대 국회의원 때 요금인가제 폐지 법안을 내기도 했다.

반면 참여연대는 요금인가제가 요금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외려 ‘요금인가제 강화’를 주장해왔다. 통신요금 인과 과정에 민간이 참여하게 해 애초에 합리적인 요금제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22일 오후 논평을 내고 “(요금인가제를 없애는) 자율이 ‘요금인상의 자율’로 오용될 수 있는 문제가 없는지 살펴봤어야 했다”면서 철회를 요구했다.

‘제4이동통신사’ 정책은 왜 없을까

‘제4 이동통신사 도입’을 통해 가계통신비 인하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최종안에 반영되지 않았다. 제4통신사 도입은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3사 독점 구조가 요금제 ‘담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무너뜨리는 경쟁구도가 형성되면 값비싼 가계통신비가 인하될 것이라는 발상이다.

그러나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이미 제4이동통신사 공모를 7차례나 진행했으나 실패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통신사업은 비용부담이 큰 데다 이미 통신3사가 전국에 통신망과 대리점을 구축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자가 진출해 살아남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차라리 그동안 제4통신사 몫으로 비워둔 주파수 대역을 통신3사에 팔아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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