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언론의 신뢰도와 영향력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미디어오늘-에스티아이 조사에 따르면 한겨레 신뢰도는 2015년 11월 17~20%를 기록하다 한 때 24.2%까지 올랐지만 2017년 5월 대선이 끝나고 16.6%로 떨어졌다. 경향신문의 신뢰도는 2015년 11월 13.8%에서 2017년 5월 9.6%까지 떨어졌다. ‘한경오’로 묶여 시민들에게 공격받는 진보언론, 이는 무얼 말하는가?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원장은 미디어오늘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23일 오후 서울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주최한 ‘6월 항쟁 이후 30년 한국언론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에서 ‘진보언론의 과제와 전망’을 주제로 발표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권이 들어섰지만 진보언론의 위기는 더 가속화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었다.

언론수용자의 ‘배제의 습성’

이 원장은 “언론수용자에게는 자신이 싫어하는 매체가 보도하는 의견 뿐 아니라 사실까지 믿지 않으려는 ‘배제의 습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세계일보가 ‘수서 비리’와 ‘정윤회 사건’ 등 굵직한 특종을 했지만 영향력이 크게 확장되지 않은 게 한 예다. 같은 맥락에서 한겨레 신뢰도 하락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 ‘한경오’로 불리는 진보언론 혐오프레임의 영향이 컸다고 분석했다.

한겨레가 보수매체에 영향력이 뒤지고 다른 진보매체에 비해서도 확고하게 우위를 유지하지 못한 이유로 이 원장은 ‘정치기사의 당파성’을 꼽았다. 사실과 의견이 뒤섞여있고, 기사 방향에 맞는 사람만 인터뷰해 진영논리에 기댄 기사를 쓴 건 보수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란 지적이다. 언론 스스로가 당파성을 지녀왔고, 최근엔 이를 이유로 신뢰를 잃고 있는 것이다.

▲ 디자인=안혜나 기자
▲ 디자인=안혜나 기자

이 원장은 최근 한겨레 고위 간부를 만났는데 그는 ‘문재인에 치우치면 안빠들이 공격하고 안철수에 치우치면 문빠들이 공격해 어느 편도 들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 원장은 “문재인·안철수 둘 다 유럽에서 보면 진보정치인이 아닌데 둘 사이에서 포지셔닝한 건 잘못”이라며 “진보적 가치를 기준으로 삼지 않아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가디언, 르몽드는 주요 현안이 발생하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편집국 회의를 소집해 논조를 결정하기도 한다”며 “때로는 정치부나 경제부에서 각자 합의하면 방향이 다른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고 서구선진언론에 대해 소개했다. “정치부와 논설실의 최소한의 합의된 논조가 없으며 의견과 사실이 뒤섞인 정치기사”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그는 “한겨레 사회부 법조팀, 최순실 보도팀에서 올린 업적을 정치부 일부기자가 까먹었다”고 최근 상황을 요약했다.

반성하지 않는 언론

이 원장은 언론이 오보의 정정이나 사과에 인색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언론중재위나 1·2·3심을 거쳐도 구석에 조그맣게 정정기사를 내보내는 등 악습을 언론 신뢰도가 추락하는데도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칼럼과 토크쇼에 의견형태로 자주 등장하는 악의적 보도들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특정 주장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패권주의’, ‘우유부단하다’ 등 비난이 많았다. 집권 이후 보여준 모습이 이와 거리가 멀지만 잘못된 논평에 대해 반성하는 언론인은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원장은 세계 권위지들은 “사과에 능한 신문들”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은 정정을 넘어 ‘정정·해명’난을 매일 내보내고, 뉴욕타임스는 ‘사과 잘해 권위지가 됐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고 한다. 이 원장은 “정정기사가 때로는 신뢰도를 높이는 상업적 수단으로 활용되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했다. 한국 언론에도 편집진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시민편집인 또는 ‘독자의 변호인’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벌광고 줄이기·자본 확충

재벌광고 의존도를 줄이고, 자본 확충에도 신경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4대재벌 광고 비중은 8개 신문 중 한겨레가 25.2%로 가장 많고 경향신문이 16.9%로 세 번째였다. 이 원장은 “중소기업 광고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새 정부에서도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취약한 자본구조도 문제다. 한겨레는 약 6만7000 주주가 있다. 이 원장은 “30년 가까이 주주에게 배당한 적이 없다”며 “배당은 나가는 돈이 아니라 주주대접, 자기자본 증액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주주모집을 해 약 5억 원이 모였다. 이 원장은 “50억 원은 들어왔어야 하는데, 결국 신뢰도가 떨어진 것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주가 경영권 참여에서 배제되면서 충성도가 떨어지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오피니언면·미디어면 강화 필요

이 원장은 진보언론이 콘텐츠를 혁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첫째로 오피니언면 대폭 확충을 말했다. 그는 “가디언을 보면 2005년 오피니언면을 광고없이 5개로 확대하고 ‘뉴스 대 분석’ 비율을 8:2에서 2:8로 바꿨다”며 “한겨레·경향에 지적욕구를 충족하거나 흥미로운 칼럼이있느냐”고 비판했다.

진보언론에서 내부필진은 연조 높은 이가 맡는 게 관행인데 이게 문제라는 주장이다. 내부 칼럼진 구성에도 경쟁을 도입하고 오래 칼럼을 써온 필자에겐 재충전 기회를 주는 등의 조치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진보언론 종사자들이 또 하나 자주 언급한 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 원장은 일정부분은 이를 진보언론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 해킹 파문을 일으킨 영국 타블로이드 일요신문 뉴스오브더월드 2011년 7월10일자 폐간호
▲ 해킹 파문을 일으킨 영국 타블로이드 일요신문 뉴스오브더월드 2011년 7월10일자 폐간호

가디언 미디어팀은 뉴스오브더월드의 전화 해킹사실을 끈질기게 보도해 2011년 폐간시켰다. 더타임스, 더선, 뉴스오브더월든 등 3대 보수언론이 언론환경을 망가뜨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동업자 의식’을 버리고 취재한 결과다.

이 원장은 “입법·행정·사법부에는 수백명씩 기자를 출입시키지만 제4부인 언론을 담당하는 기자는 고작 한둘이고 그것도 다른 분야를 겸하기도 한다”며 “진보언론 당사자들에게도 책임이 있고, 여기서 덕보는 쪽은 보수언론”이라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이외에도 “세계 독립언론들과 연대하자”, “방송진출을 모색해보자” 등을 제안하며 “자기도취에 빠져 반성하지 말고 혁신에 대해 얘기하길 꺼려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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