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지난 10일부터 국가정보원의 불법적인 정치·선거 개입 정황을 담은 문건을 보도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국정원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SNS 여론 장악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수사 기관을 이용한 야권 표적수사를 종용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했다는 것이 보도 요지다. 

MB 정부의 청와대가 이를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나 국정원의 국내 정치·선거 개입이 정권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주장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다.

이번 보도는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을 폭로했던 ‘세계일보 문건팀’의 조현일·박현준 기자가 김민순 기자와 함께 특별취재팀 소속으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3년 전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던 언론인들이 다시 의기투합한 것이다. 

▲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가 지난 2014년 12월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민중의소리)
▲ 전직 대통령 박근혜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씨가 지난 2014년 12월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지방검찰청에 출석하며 조사를 앞두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이번 국정원 문건 입수 경위도 ‘정윤회 문건’과 관련이 있다. 세계일보는 지난 10일 보도를 통해 “세계일보 취재팀은 2015년 이른바 ‘정윤회 문건’ 재판이 진행되던 중 A씨(전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가 유출한 청와대 보고서 715건 중 일부를 입수했다”며 “당시 세계일보는 검찰이 ‘비선실세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국기 문란급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으로 몰고 가면서도 이명박 청와대 시절 유사 사건인 A씨의 경우 벌금형으로 솜방망이 처리한 점에 주목, 이를 보도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세계일보 편집국장 역시 정윤회 문건 보도를 주도했던 황정미 국장이다.

송민섭 한국기자협회 세계일보지회장은 1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기자들도 특별취재팀이 구성된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어떤 내용을 다뤘는지는 기사를 보고야 알았다”며 “2014년 11월 보도 이후 세계일보가 지나치게 정권 눈치만 보고 있다는 여론이 컸고 기자들도 의기소침한 상태였다. 이번 보도로 폭발적인 분위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보도의 방향이 맞다는 믿음은 있다”고 말했다. 

송 지회장은 “기자들은 자신의 출입처에서 타 매체 기자들이나 취재원이 세계일보 보도를 물어올 때 아무래도 힘이 날 것”이라며 “적당한 시점에 의미 있는 보도가 시작돼 구성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세계일보 기자는 “이번 보도가 정윤회 문건 기사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진 않다”면서도 “좋은 단독 기사가 나가고 있으니까 기자들이 응원하는 분위기”라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정윤회 문건 보도 이후 세계일보는 정권으로부터 직격탄을 맞았다. 문건팀 기자들은 먼지털이식 검찰 수사를 겪어야 했고, 회사는 검찰의 압수수색 위협에 직면했다. 세계일보 사장과 회장이 교체돼 정권의 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세계일보에 대한 정권 차원의 대응이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적시돼 있어 정권의 언론 탄압이 계획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보기관의 사찰과 미행도 뒤따랐다. 조 기자는 지난 1월 박근혜 탄핵심판 4차 변론기일에서 “가족에 대한 테러나 위해가 있으면 견딜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에게 아이들 등하굣길에 동행하도록 부탁했다”며 “수사기관에 계신 분들이 걱정을 해주셨다. 어떤 분이 선물해주신 칼을 갖고 다녔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문건 유출자로 지목받은 최경락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도 발생했다.

▲ 2014년 12월 검찰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세계일보 사옥 앞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한 타 매체 기자 40여 명이 진을 치고 대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2014년 12월 검찰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문건(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를 압수수색할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세계일보 사옥 앞에는 이를 취재하기 위한 타 매체 기자 40여 명이 진을 치고 대기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세계일보 기자들은 지난해 12월 “‘정윤회 문건취재팀’이 추가로 준비했던 다른 권력기관의 일탈과 국정 부조리 문제 등의 후속 보도 계획이 어그러졌다”며 “당시 차준영 사장과 한용걸 편집국장 등 세계일보 지휘부는 정권의 부당한 외압에 구성원들과 손잡고 당당히 맞서는 대신 문건취재팀의 의욕을 꺾는 소극 대응으로 일관했다”면서 차 사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현재 기자들과 회사는 편집국장과 디지털미디어국장 등 보도 책임자 인사에 구성원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절차 제도화 등을 두고 일주일에 한 차례 만나 의견 차이를 좁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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