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임아무개 과장의 죽음을 놓고 유족이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국내 감청 목적으로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을 구매한 임 과장은 빨간색 마티즈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임 과장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정황이 나오면서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유족이 나선 것은 처음이다.

CBS 노컷뉴스에 따르면 임 과장의 부친인 임희문씨는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놀랐다”며 “몸이 저렇게 당할 정도면 뼈까지 상했을까 걱정돼 오죽하면 감정을 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 과장 죽음에 대한 당국의 조사 결과는 차량 안에서 번갯불을 피워놓고 자살을 한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직접 아들의 시신을 본 부친이 얼굴에 난 상처가 비상식적으로 많다고 증언한 것은 외부 요인에 따라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어서 타살 의혹으로 연결된다.

임씨는 “간단하게 유서 쓰고 잠들게 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왜 몸뚱이에 상처가 있고 얼굴에 안 터진 곳이 없냐”며 “나만 본 것이 아니라 아들 염(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한 사람들도 대번에 알아봤다”고 말했다.

특히 임씨는 아들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뒤 타살 의혹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경찰의 외압이 있었다고 증언해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임씨에 따르면 임 과장의 장례식에서 한 경찰관이 언론 등 외부접촉을 하지 말라고 사실상 ‘협박’했다. 임씨는 육군사관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임 과장의 자녀에 피해가 있을까봐 며느리가 외부접촉을 만류했다면서 그동안 타살 의혹을 제기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 CCTV 화면에 잡힌 국정원 직원의 마티즈 차량. 사진=경기경찰청 제공
▲ CCTV 화면에 잡힌 국정원 직원의 마티즈 차량. 사진=경기경찰청 제공
임 과장 얼굴에 난 상처는 그동안 나온 타살 의혹 중 가장 직접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 번갯불을 피워 자살했다는 시신에서 외부 상처가 나온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타살 의혹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유족을 대상으로 입단속을 시켰을 가능성이 높다.

임 과장이 숨졌을 당시 국정원은 이상하리만큼 예상 밖의 행동을 보였다. 보통 정보기관에서 요원의 죽음은 공표하지 않은 것이 원칙이지만 국정원은 ‘직원 일동’ 명의의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이 직원은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다”며 “고인의 죽음으로 증언한 이 유서 내용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임 과장의 죽음이 곧 국내 사찰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사건을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실제 임 과장 죽음 이후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해킹프로그램 구입 및 사찰 의혹은 급격히 사그라들었다. 임 과장이 국정원을 살린 셈이었다.

당시 민주당 유승희 의원은 “국정원장은 모든 일은 숨진 임 과장이 주도했고 임 과장이 책임졌다고 하는데 지난 17일 국정원은 보도자료에서 임 과장은 그 분야 기술자일 뿐이라 했다”며 “국정원 직원 명의 성명서에서도 순수한 사이버 기술자라고 했는데 불과 10일 만에 임 과장은 해킹책임자로 둔갑됐다”고 말했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 국가정보원. ⓒ 연합뉴스


국정원은 임 과장의 죽음을 대대적으로 알리면서도 사건 당일 석연치 않은 정황이 쏟아지면서 죽음에 개입돼 있다는 의심을 받았다.

임 과장 자살 당일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상황실 근무자와 현장 출동 소방관 대화 내용을 보면 국정원은 사건 현장에 이미 나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상황실 근무자가 “보호자는 어디 계시는데”라고 묻자 현장 소방관은 “보호자는 이쪽에 나온 거 같진 않고 직장 동료 분이 근방에 계셔서 저희랑 한번 만났다”라고 답한다.

또한 상황실 근무자가 “그 위치추적 관계자 같이 없어요”라고 묻자 소방관은 “없어 그 사람들 차 가지고 가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찾아준다고”라고 말한다. 위치추적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으로 추정되고 사건 현장에서 국정원 요원이 긴밀하게 움직였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국정원이 혹시 모를 사찰에 대한 폭로를 막기 위해 사라진 임 과장을 추적했을 가능성이다.

임씨의 부인이 112에 사건을 신고했지만 취소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경찰 신고 시 돌입할 현장 초동 조사를 방해하기 위해 ‘작업’이 들어간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최소한 국정원은 임 과장이 죽었던 사건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조사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임 과장의 시신을 본 다른 사람의 증언이 나올 가능성도 남아있다. 임 과장의 외부 상처가 가족 뿐 아니라 여러 사람의 공통 증언을 통해 확인되면 타살 의혹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정원 적폐청산 TF 조사대상에는 해킹 프로그램 의혹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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