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내기 ‘갑질’을 당하고 원하지 않는 물품을 구매해야 했다. 원하는 물건을 사려고 해도 꼭 정해진 곳에서 비싸게 사도록 제한했다. 계약에 따라 인테리어 리뉴얼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이 비용은 대리점의 몫으로 돌아왔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치킨과 피자, 김밥을 팔던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장들은 너무도 억울했다. 본사의 보복이 두려웠던 이들은 정권이 바뀌자 용기를 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외치며 언론 앞에 섰다.

2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는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이 주최한 가맹점·대리점 분야의 갑질 피해사례 발표대회가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는 남양유업대리점주와 피자헛가맹점주, 교촌치킨 가맹점주, 피자에땅가맹점주 등과 현대모비스, 한국GM 등 자동차 부품업계 정비사업자와 부품대리점주 등이 직접 겪은 본사의 ‘갑질’에 대해 호소했다.

김경무 피자에땅가맹점주협회 부회장은 본사 측으로부터 사찰을 당한 사연을 소개했다. 김 부회장에 따르면 가맹점주협회를 만들기 위해 총 세 차례에 걸쳐 점주들과 총회를 가졌다. 저녁 11시에 급하게 단체 톡방을 통해 점주들끼리 서울역이 아닌 용산역으로 장소를 바꿔 총회를 하자는 약속을 했는데도, 사측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항상 나타나 점주들을 사찰해갔다고 했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연석회의와 참여연대 등은 20일 공동으로 가맹점주 사찰 및 블랙리스트 작성,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피자에땅 대표를 고발했다.

김 부회장은 “사찰의 이유는 딱 한가지다. 사측에 불리한 발언을 한다는 것”이라며 “바른 가격에 바른 메뉴를 주면 이런 사태가 일어날 수 없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라 점주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노예가 됐다”고 호소했다.

피자에땅 가맹점주협회는 본사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가맹점주협회를 사찰했다고 주장한 것 이외에도 가맹점주들에게 행한 ‘갑질’을 몇 가지로 추렸다. 이들에 따르면 시중에서 구입이 가능한 원·부재료를 지정한 업자로부터만 고가로 구입해야 했다.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본사로부터 반드시 구매해야 하는 품목들이 정해져있고, 이들을 구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필수품목으로 지정된 물건들은 대부분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 공산품으로, 본사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최대 35%까지 싸게 구매가 가능하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피자에땅 본사가 계약서에 광고비 조항을 두고 일방적으로 광고비를 징수했는데, 정작 2013년 피자에땅 측은 광고비와 판촉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광고비 징수 후에도 매년 2개월 정도만 광고를 했기 때문에 사실상 가맹점주들에게 광고비를 떠넘기다시피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가맹점주협회 단체 활동을 이유로 불이익을 제공했다는 주장도 포함됐다.

▲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민변, 참여연대 등이 주최해 가맹·대리점주 들의 피해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 전국을살리기운동본부, 민변, 참여연대 등이 주최해 가맹·대리점주 들의 피해사례 발표대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이러한 ‘갑질’ 행태는 비단 피자에땅 만의 사례는 아니다. 피자헛 가맹주들은 가맹점주 어용단체를 만들어 기존의 가맹점주단체를 무력화시키거나 매장 리뉴얼 공사를 해야 하는데도 법에 규정된 리뉴얼 지원금액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문상철 피자헛가맹점주협의회 부회장은 “한국 피자헛은 5년 혹은 3년 단위로 리뉴얼 공사를 하기로 계약에 나와 있다. 가맹법에 의하면 20~40%를 (본사가) 지원하도록 돼있는데도 여태껏 지원한 사례가 없다. 우리가 스스로 알아서 했다”고 털어놨다.

가맹사업자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자동차 정비업계와 부품사업 등 ‘유사’ 가맹사업자들의 억울함도 이에 못지 않았다. 이계훈 한국GM정비사업자연합회 부회장은 “피자에땅이나 다른 가맹점주를 보면 부럽다”며 “우리는 본사와 대화도 못하고 있는데 저기는 그래도 대화하면서 ‘갑질’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한국GM정비사업자들은 사실상 가맹점주처럼 영업을 해왔지만, 법적으로는 가맹사업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들에 따르면 가맹금을 본사에 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로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이들을 가맹사업자로 보지 않는다는 해석을 내렸다. 이계훈 한국GM정비사업자협회 부회장은 “가맹비를 실질적으로 내지는 않지만 유사 가맹비를 많이 내고 있다. 저희는 가맹비를 내고 싶다. 가맹사업 제도권 안에서 보호받고 싶다”며 “유독 외국법인인 르노삼성과 한국GM, 쌍용자동차 등은 가맹사업법을 유독 피해나간다”고 덧붙였다.

르노삼성정비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본사는 저가 부품을 정비소 사업자들에게 고가로 납품했다. 보험사의 ‘갑질’도 언급됐다. 보험사의 긴급출동서비스는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지만, 보험사는 그동안 정비사업자에게 지급하는 수수료를 5% 인상하는데 그쳤고, 사고차 물량을 밀어주는 조건으로 부가서비스를 정비업체의 몫으로 부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업을 떠날 수 없다”며 익명을 요구한 한 현대모비스 부품대리점 가맹점주 A씨는 지난해 대리점 계약을 해지당했다. A씨에 따르면 A씨가 물건을 판 사람이 물건을 가지고 외국에 가서 판매하면 계약 위반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구매한 사람이 해외에 물건을 팔았다는 것만 가지고 대리점에게 ‘간접수출’을 했다며 A씨에게 책임을 지운 셈이다. A씨는 계약 해지로 인해 본사로부터 받은 부품 재고를 반품도 못하고 그대로 떠안을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자동차 부품대리점은) 일반적인 가맹점의 전 재산 이상이다. (부품을 구매한 비용이) 은행 담보로 끌어온 돈이다. 본사 쪽에서는 (저에게) 떠안으라는 것”이라며 “새차 나올 때마다 부품이 엄청 나오는데 모두 받아들이고 감수했다. 그렇게 감수했는데도 대리점이 필요 없다며 계약을 해지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현재 전국가맹점주협의회연석회의가 구성돼 22개 가맹점주들이 모여 조금씩 ‘을’의 목소리를 키워나가고 있지만, 아직 다수의 ‘을’들은 여기에 함께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피해 사례를 언론에 제보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다.

다만 이들도 새 정부가 들어서고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임명된 이후 조금씩 용기를 내는 모습이다. 가맹·대리점주들은 공통적으로 △집단 대응권 강화 △필수물품에 대한 투명성과 심사 강화 △감독행정 복원 △전속고발권 폐지 △가맹계약 갱신요구권을 10년 제한한 규정 삭제 등을 요구하며 제도적 개선 방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특히 가맹점주연석회의 측은 계약갱신요구가 가능한 기간을 10년으로 정해 이 기간 동안 가맹점주를 보호하기 위한 법 규정이 정작 10년 이후 사실상 계약을 해지 해도 되는 조항으로 오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든 ‘갑질’ 사례를 조사하기에는 담당 인력이 8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은 지방자치단체의 감시권한으로 이양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실상 늘어지기 행정을 했던 것이 큰 원인”이라며 “피해를 구제하는 곳이 아니고 개별 사건을 책임지고 조사하는 곳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공정거래법과 관련해서는 공정위가 고발을 해야만 검찰이 기소가 가능했고, 감사원과 중소기업청 등으로 고발요청권이 확대됐지만 전담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사실상 제대로 ‘갑질’을 근절하기 위한 행정적 뒷받침은 전무했다.

김 변호사는 “공정위와 검찰의 대대적 행정개혁을 통해 불공정 행위가 제대로 수사돼야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하도급, 대리점 등 단체들이 대기업 본사와 상생협약을 만들어 해결해가야 한다. 40여개 가맹점 본사에서 상생협약이 추진되고 있지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미미한 상황이다. 공정위가 모범적인 상생협약을 만들어 가맹점과 대리점 업계의 상생협약을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재광 가맹점주연석회의 의장은 “피해 사례를 얘기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고도 하기 힘들다”며 “말도 못하고 현업에 쫓겨 매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아픔들이 있다. 그 중 일부가 모여서 얘기 나온 게 피자에땅이나 미스터피자 등의 이야기다. 말도 못하고 고통받고 있는 가맹점이 22만개가 넘는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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