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탈원전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싣는 모양새다. 최근 2개월 간 탈원전 정책에 대한 반대 목소리에 힘을 싣는 세미나가 국회에서 연달아 열리고 신고리 5·6호기 중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1일 국회 세미나 일정표와 정론관 기자회견장 예약현황 등을 확인해본 결과 국회에서 열린 탈원전 정책 비판 기자회견은 6월1일부터 7월31일까지 총 7회 열렸거나 열릴 예정이며, 세미나와 토론회 등은 6회에 달했다. 사전 등록 없이 당일에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의 상황도 있어 사실상 탈원전 정책과 관련된 기자회견과 세미나, 토론회 등은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특정한 한 주제에 대해 기자회견과 세미나가 반복적으로 열리는 일은 흔치 않다.

21일 오전엔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사태와 에너지안보 확보 방안’ 토론회가 열렸고, 이 자리에 원자력공학과 교수들과 원전 관련업체, 한수원 노조 등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됐다.

논의에서는 이번 신고리 5·6호기 중단에서 공론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 탈원전 기조 하에서는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 감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전기세가 크게 오를 것이라는 점 등 ‘탈원전 반대’ 시각의 의견들로 채워졌다. 원전이 해외 원전 수출을 포기하게 되는 결과가 돼 원전 기술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우려도 포함됐다.

특히 전문가들은 신고리 5·6호기 공사의 영구 중지 여부 결정은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맡기지 말고 전문가나 국회의 손으로 넘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시민배심원 결정과 공론조사라는 ‘민주적 절차’를 만들어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에 대해 3개월의 시간을 두고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사태와 에너지안보 확보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사태와 에너지안보 확보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차현아 기자.
그런데 이에 대해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사실보다는 인식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지배되는 시민에게 물어보는 것은 국가적 결정을 하는 방식이 아니며 또 다른 포퓰리즘의 형태”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국가 정책을 공론화 위원회와 시민배심원에 의사결정을 맡김으로써 이념몰이식 포퓰리즘으로 몰고 간다”며 “전문가 사회와 행정부가 정책의 초안을 마련하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최근 관련 세미나가 많이 열리다보니, 패널로 참여하는 전문가들이 여러 세미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정범진 교수는 지난 13일 ‘문재인 정부의 졸속 원전정책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 특별위원회(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실)’가 주최한 탈원전 반대 토론회에 참석했다. 지난 6일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와 여의도연구원이 주최했던 ‘급진적 탈원전 정책 바람직한가’라는 토론회에서도 정범진 교수는 발제를 맡았다.

황일순 서울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지난달 11일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주최한 ‘새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안전과 에너지 안보 위협’이라는 토론회에 참석했으며, 지난 12일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이 주최했던 ‘원전 거짓과 진실: 성급한 탈원전 정책의 문제점’이라는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았다. 황 교수는 7월14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주최한 조찬세미나에도 참석했다.

이처럼 원전 학계와 관련 업계 등의 탈원전 반대 목소리를 언론의 시선이 쏠린 국회가 세미나와 기자회견 등으로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탈원전 정책 반대 관련 기자회견을 주최한 한 야당 의원은 “최근에 원자력 관련 업계 쪽에서 많이 연락하고 찾아오는 분위기”라고 귀뜸했다.

지난 5일 전국 60개 대학 공대교수의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상적 의사결정체제’ 요구 기자회견은 자유한국당 이채익 의원이 주최했는데, 국회에서 6월1일부터 7월21일까지 이채익 의원이 주최한 탈핵 관련 기자회견은 이를 포함해 총 네 개다.

국회 내의 이러한 움직임은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의지를 본격적인 행정절차로 옮기는 것과 거의 맞물려 돌아갔다.

▲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 이후 엿새가 지난 3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공사 현장. ⓒ연합뉴스
▲ 정부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 이후 엿새가 지난 3일 울산 울주군 서생면 공사 현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6월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후 6월27일 국무회의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의 공론화 및 일시중단을 결정했다. 이는 지난 14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신고리 5·6호기 일시중단까지 의결하는 데까지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드라이브는 일단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속도조절 중이다. 국회를 중심으로 한 원자력 학계 등이 공론화 위원회가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을 경계함과 동시에 국회를 통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여론전에 적극 나서게 된 배경으로 풀이된다.

자유한국당 뿐만이 아니다. 21일 오후에는 국민의당 탈원전대책 TF가 주최해 한수원과 산자부,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관계자들과 이번 신고리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한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날 참석한 손금주·김수민·신용현·이상돈 의원과 경주, 전남영광, 부산기장 지역위원장 등은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의 절차상 문제를 따져물었다.

이상돈 의원은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에 “정부가 사유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소액주주가 소송걸면 백프로 이긴다. 불법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공론화위원회에) 중립적인 각계 전문성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데려올 것이냐. 이해관계자를 제외하고 이런 사람 없다”고 비판했다.

신용현 의원도 “(신고리 원전 납품) 업체들이 상당 부분 만들어놓고 납품해 돈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 텐데 불안해서 사업하겠냐”며 “운영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에도 (부품 공급 등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신고리원전 건설 중단을 반대하거나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모두 틀린 얘기들만은 아니다. 실제로 탈원전 이후 한국의 에너지 수급 체계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중단 결정을 여론에 따른 공론화에 맡겨야 하는지는 여전히 합의 되지 않은 부분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탈원전 자체는 공감하더라도 신고리 원전 공사를 잠정중단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민의당의 탈원전TF의 질의에 따르면 3개월 간 신원전5,6호기를 잠시 중단하는 데에만 천억원의 비용이 드는데, 이는 3개월 간의 공사비인 1600억원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다. 이날 정부 관계자는 공론화 결과는 예단하지 않는다면서, 매몰비용으로 추산되는 1조6000억원 가량에 대해 정부가 공사가 아예 중단될 경우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등은 답하지 않았다.

다만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탈원전의 첫 발걸음을 뗀 만큼 여러 세미나를 통해 팽팽한 찬반 입장을 조율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좋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소위 ‘원전 마피아’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해서는 “과거 원전 관련 은폐해왔던 비리가 있는데 지금와서 원전에 대해 찬성하는 목소리를 내는건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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