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MBC 투쟁은 많이 알려져있고 국민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국제신문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른다. 잘 돌아가는 줄로만 안다.”(A 기자)

“분노와 동시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 사람은 아직도 밖에서 실력을 행사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지친 마음을 어떻게 추스리고 갈 수 있을까.”(B 기자)

“노조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대자보 쓰는 것? 1인 시위 하는 것? 집회하는 것? 대자보를 100장 가까이 썼다. 솔직히 무력감이 든다.” (C 기자)

국제신문 기자들의 말이다. 지난 7일 부산 국제신문 본사에서 만난 기자들은 하나같이 무력감을 호소했다. 편집국 입구에는 전국언론노조 국제신문지부(지부장 김동하) 명의는 물론이고 기자들의 기수별 성명까지 차승민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자보가 빼곡했다.

차 사장은 지난 3월 공갈과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 중간 수사 결과에 따르면 차 사장은 엘시티 고위 관계자에게 ‘차액 광고비를 주지 않으면 관련 의혹을 1면에 보도하겠다’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5142만원을 받았고 엘시티 명의 법인 카드를 주점 및 골프장에서 사용했다.

지부는 지난 3월6일 비상 조합원 총회를 열고 차 사장 퇴출을 위한 투쟁을 결정했다. 당시 김동하 지부장은 “사장이 그런 혐의를 받는 것만으로 언론사 이미지에 흠이 간 것”이라며 “지금 국제신문의 모든 직원이 ‘차 사장과는 일을 못한다’는 입장이다.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제신문 편집국 앞에 붙은 대자보. 사진=언론노조 국제신문지부
▲ 국제신문 편집국 앞에 붙은 대자보. 사진=언론노조 국제신문지부
김 지부장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사장 퇴진 운동이 벌써 6개월째다. 조합원들은 매일 2~3명씩 돌아가며 1인 시위를 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 반에는 사옥 앞에서 결의대회가 열린다. 초반에는 차 사장의 출근을 막기 위해 오전과 오후조로 나눠 사장실 앞을 지켰다.

전직 국제신문 기자들로 구성된 사우회는 지난 3월14일 “숱한 선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국제신문의 명예와 위상이 차 사장으로 인해 땅에 떨어졌다”며 차 사장이 15일까지 퇴진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우회도 행동에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차 사장은 퇴진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의 퇴진 요구도 쏟아졌다. 부산지역 시민사회원로들은 지난 4월 부산 YMCA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주인 이정섭 회장(법명 지광)이 자정을 미루고 있어 차 사장 자체가 부산의 수치로 둔갑했다”고 입을 모았다. 차 사장은 지난 6월 언론노조가 발표한 ‘3차 언론부역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럼에도 차 사장은 여전히 건재 한 듯 보인다. 지난달 27일 간부급 7명에 대해 단행된 인사발령이 대표적이다. 지부에 따르면 인사 대상자들조차 당일 오후에서야 인사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인사발령은 ‘팩스’로 이뤄졌다. 발신지는 이 회장이 있는 서울 능인선원이었다.

지부는 해당 인사에 차 사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이종태 부사장에 대해 지부는 “불과 5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이 부사장을 사실상 해고했다”며 “이 부사장이 각종 사안에서 차 사장과 대립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쯤되니 이 회장이 차 사장을 비호하는 수준을 넘어 차 사장이 이 회장을 ‘주무르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구성원들은 이 회장에게 차 사장을 해임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으나 이 회장은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C 기자는 “둘이 특수관계가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노조 국제신문 지부가 8월7일 지부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노조 국제신문 지부가 8월7일 지부 사무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돌이켜보면 차 사장이 국제신문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이상한 조짐은 있었다. 차 사장은 국제신문 출신이 아니다. 2011년 11월 경영진은 차 사장을 부사장으로 데려왔다. 당시 경영진은 차 부사장 영입을 두고 “언론계와 상공계 네트워크가 풍부하다”고 영입 배경을 설명했지만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지부는 “차씨는 경영 능력과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으며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내는 등 정치적 편향적 마저 뚜렷해 언론사 임원으로 부적격”하다며 “검증 작업을 벌인 결과 뚜렷한 실적을 남긴 적은 없었고 짧으면 몇 개월, 길어야 몇 년 주기로 직장을 옮겨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2012년 차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에 대해 D기자는 “차 사장은 인사권을 무기로 자기를 잘 따르는 사람들을 승진시키는 일종의 ‘줄 세우기’를 했다"며 ‘인사권은 어차피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니까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크게 나오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회사는 “1심 판단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아직 범죄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성원들 입장은 다르다. A기자는 “어느 조직이 피고인 자격으로 조사받고 있는 사람을 용납하나”며 “검찰 조사를 받는 사람이 버젓이 신문에 발행인으로 찍혀있다”고 꼬집었다.

차 사장이 퇴진하지 않아도 신문은 그대로 나온다. “오히려 이전보다 신문이 더 잘 나온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편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차 사장이 하루빨리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 사장 개인의 비리가 국제신문 전체 명예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A 기자는 “국제신문 기자들은 기본적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한다. 우리는 지역을 위해서 이런 저런 기획도 하고 관에 대한 비판도 자유롭게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사장이 기소됐다는 이유 하나로 ‘국제신문 적폐’ 이런 이야기를 듣기가 괴롭다”고 말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국제신문지부(지부장 김동하)가 3월6일 오전 11시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국제신문 사옥 앞에서 차승민 사장 퇴진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국제신문지부(지부장 김동하)가 3월6일 오전 11시 부산 연제구 중앙대로 국제신문 사옥 앞에서 차승민 사장 퇴진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기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굴욕감’도 문제로 지적됐다. 기자들이 취재를 하다보면 상대로부터 “국제신문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라고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마치 “너희들이 취재할 자격이 있냐”는 말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내부문제가 해결돼야 당당하게 취재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구성원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KBS나 MBC 구성원들의 싸움은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A기자는 “지역신문이기 때문에 관심을 못 받는건지. 언론에서 제대로 다뤄주지 않기 때문인지, 우리가 제대로 못하는 건지”라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C 기자는 “지난 6개월 동안 아무리 싸워도 회사는 꼼짝을 안 한다. 답답한 건 사실이지만 몇몇 부역자들 말처럼 1심까지 봐준다면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오히려 차 사장이 나간 이후에도 차 사장을 비호한 이 회장에 대한 문제제기와 싸움이 계속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제신문 지부는 8월8일 기준으로 156일째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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