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개쓰레기 아이가. 이것들.”

사장님도 혹시 기억나십니까? 신년 벽두에 저희 대구MBC 다큐멘터리 <깨어나라 대구>에서 방송되어 한동안 해당 인터뷰 동영상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는데요.

(아직 못 보셨다면 검색창에 ‘MBC 개쓰레기’라고 치면 지금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당시 편성제작국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어마어마한 사고를 쳤는데도 서울로부터 아무런 징계 지침(?)이 없어 몹시 의아했습니다. 나중에는 지방방송이라고 무시하나 싶어 살짝 섭섭한 마음까지 들더군요. 

▲ 대구MBC 다큐멘터리 ‘깨어나라 대구’ 화면 갈무리.
▲ 대구MBC 다큐멘터리 ‘깨어나라 대구’ 화면 갈무리.

회사의 답답한 현실에 대해 풍자만화 그렸다고 해고시키고 사내 게시판에 글 좀 올렸다고 정직 때리던 엄혹한 시절이라 –하기야 지금 부사장의 영예를 누리고 계시는 당시 백종문 본부장은 ‘가만 놔두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최승호, 박성제 같은 자랑스런 PD, 기자를 해고시키기도 했지요- 방송 책임자였던 저 역시 제법 단단히 각오를 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징계를 모면한 것이 다행스러운 건지 치욕스러운 건지 알 수 없으나 이미 보직자도 아닌 제가 몇 달이 지난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그동안 시민들의 혁명으로 우리 정치, 사회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는데도 공영방송이라는 우리MBC는 신뢰도, 영향력이 바닥을 기면서 여전히 시민들에게 개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으며, 그 책임의 대부분이 사장님에게 몰려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스스로 물러나셔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회사의 치부(?)를 이렇게 외부에 드러내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닌 줄 압니다. 주제넘은 줄도 압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개 지방 계열사 사원이 본사의 사장님께 이런 시건방진 글을 공개적으로 밝혀도 눈곱만큼도 겁이 안 난다는 것입니다. 저같이 둔한 사람도 분위기 파악이란 걸 할 수 있거든요. 

그렇습니다. 세상이 변했습니다. 옛 권력은 거짓말처럼 무너지고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기대었거나 버티는 사람들의 말로가 어떤 지는 우리가 날마다 생생하게 목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려 95%가 넘는 동료들이 사장님이 나가주셔야 우리MBC가 살아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그나마 서로 얼굴 붉히지 않는 마무리가 될 지는 전적으로 사장님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오랜 기자생활의 감각에서, 또 그 무지막지한 권력투쟁의 와중에서도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단시간에 두루 섭렵하신 능력으로 미루어 그 정도 정세나 상황 판단은 충분히 하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김장겸 MBC 사장
▲ 김장겸 MBC 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분명 쉽게 오르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아쉬움이 더 크시겠지만 사장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제 이성적인 판단을 하실 시간입니다. 모두들 이미 너무 늦었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도 있다’는 건 케케묵은 옛 격언이 아닙니다. 사장님의 결단에 따라 MBC가, 공영방송이, 대한민국의 언론 기능이 빠르게 정상화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몰락한 공영방송의 책임자로서 우선 대국민사과와 함께 자진사퇴를 천명하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지난 10년간의 적폐로 만신창이가 된 회사의 시스템과 인사구조를 정상으로 복구하십시오. 그러려면 해고자의 즉각 복직과 징계 무효조치, 부당 전출되었던 구성원들의 정상적인 직무 복귀가 조속히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구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행사하셨던 사장님들의 막강한 권한을 생각하면 조금도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 그냥 하십시오. 단언컨대, 제 말을 들으시면 칭찬까지는 아니라도 손가락질은 피할 수 있습니다.

아! 사장님, 한 가지 청이 더 남았군요. 사장님이 임명하신 사람들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는 지역MBC 구성원들의 무너진 자존심도 회복시켜주셨으면 합니다. 여기에 대해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지만 최소한으로만 요구하겠습니다. 명색이 지역사 사장이라는 사람들 중에 ‘혼이 비정상인’ 분들이 있습니다. (이 또한 인터넷상에서 쉽게 검색하실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파렴치하고 한심한 작태를 거론하는 것조차 부끄러우니 나가실 때 제발 조용히 데리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게 진작부터 저희들이 목 터져라 외쳐오지 않았습니까? 지역MBC는 서울MBC에서 용도 폐기된 허접쓰레기들의 하치장이 아니라고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이 순간 사장님께서는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같은 권력에 부역한 전임 사장들처럼 우리MBC와 대한민국 사회에 해악을 끼친 적폐인사의 대열에 합류하느냐,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그나마 기자의 양심을 지키며 대한민국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결단을 한 언론인으로 평가 받느냐 하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계십니다.

이미 지난 주, MBC 출신이었던 교육방송 사장이 스스로 물러나고 YTN에서는 해직자들이 9년 만에 복직한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우리MBC는 아직도 공정방송을 염원하는 사원들에게 징계 주기에만 급급하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최근 불거진 블랙리스트 사건은 물론, 그동안 회사가 저질렀던 온갖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결과도 조만간 나올 것이고 사장님과 화려한 조연들이 출연하는 영화도 수많은 시민들의 관심 속에 곧 개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말 남은 시간이 없는 것 같습니다. 부디 사장님의 현명한 판단, 마지막으로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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