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붕’이었다. ‘한류열풍’에 힘입어 중국에 진출하거나 진출을 준비했던 한국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한한령’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MCN분야도 직격탄을 맞았다. 진행되던 계약이 잠정 중단되었고 동영상 플랫폼의 한국 크리에이터 노출빈도가 크게 줄었다.

그런데 뷰티 전문 MCN업체 레페리는 중국 시장에서 타격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중 협업전략 보고서’에서 이례적인 성공사례로 레페리를 언급할 정도였다.

최인석 대표는 “현지에서 크리에이터를 육성하는 전략으로 차별화했다”고 밝혔다. “다른 회사들은 에이전시 역할을 했지만 우리는 한국의 크리에이터 육성 시스템을 중국에도 적용해 왕홍(중국의 인기 인터넷방송 진행자) 콘텐츠 퀄리티를 높였다”는 것이다. 2015년 문을 연 레페리는 중국 텐센트 그룹과 함께 뷰티 크리에이터들을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 최인식 레페리 대표. 사진=박왕진 대학생 명예기자.
▲ 최인식 레페리 대표. 사진=박왕진 대학생 명예기자.
최 대표는 한국에서도 크리에이터 ‘제휴’가 아닌 ‘육성’ 전략을 통해 사업을 해왔다. “연예인 매니지먼트와 비슷하다. 오디션을 통해 스타성과 성실도 등을 판단한다. 이후에는 촬영, 편집, 기획, 디자인 등 4주 동안 교육을 거치고 실습영상을 대중에 공개하며 트레이닝을 한다. 이들이 연습생이고 이 중에서 최종 합격생들을 정식으로 뽑는 방식이다. 중국 현지 크리에이터 교육은 9박10일 동안 합숙을 통해 이 같은 과정을 진행했다.”

최 대표는 “사드 한한령은 주로 콘텐츠 중심의 제재였다. TV나 중국의 유튜브와 같은 ‘유쿠’에서 연예인이나 한국 크리에이터의 노출을 막은 것”이라며 “반면 커머스는 ‘타오바오’ 등 상거래 사이트 중심이라 피해가 적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콘텐츠보다 커머스에 주목한 점이 호재로 작용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한국 MCN이 인기를 끄는 배경이 무엇일까? “중국은 라이브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에 콘텐츠 퀄리티 자체는 높지 않다. 홈쇼핑 쇼호스트처럼 상품을 파는 게 중심이다. 반면 한국은 브랜디드 콘텐츠 중심이라 영상 편집, 자막의 퀄리티가 높은 편이다. 중국인들이 한국 콘텐츠를 보면 놀라더라. 이 같은 양질의 콘텐츠를 내세우며 국내 크리에이터가 진출하고, 현지에서 크리에이터를 육성해왔다.” 최 대표의 말이다. 국내 크리에이터 다또아는 중국에서 순위권에 드는 뷰티 크리에이터다. 중국채널 구독자만 200만 명 가까이 된다. 상해를 걸어 다니면 연예인처럼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다.

또 하나의 전략. 레페리는 ‘뷰티 장르’의 크리에이터만 뽑는다. CJ E&M의 다이아TV와 트레져헌터 등 MCN업체들이 다양한 장르의 크리에이터들과 계약을 맺으며 규모를 키우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 대표는 한 장르에 집중해 마케팅을 ‘고도화’하는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유일한 ‘뷰티 버티컬기업’이다. CJ의 목표는 미디어기업이고 이를 위해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와 가는 길이 다르다. 크리에이터 수나 총 구독자수는 CJ가 많지만 뷰티 분야 마케팅비즈니스를 통한 브랜드 장악력은 우리가 앞선다고 자부한다. 다양한 장르를 다 다루면 우리처럼 노하우가 고도화되기 어렵다. 회사규모는 작지만 크리에이터 입장에서도 우리 회사가 더 매력적일 수 있는 이유다.”

레페리 조직을 살펴보면 독특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데이터랩’이 있다. ‘고도화 전략’의 실체를 이 사업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데이터랩’ 이야기를 꺼내자 최 대표는 책상에서 보고서 한 권을 꺼내왔다. 월 단위로 브랜드에 전달하는 보고서다. 국내 뷰티콘텐츠를 전수조사한 다음 ‘브랜드’ ‘제품’ 단위로 얼마나, 어떻게 노출됐는지 담겨 있었다. 5월 자료를 보면 238명의 뷰티 크리에이터가 8960개 콘텐츠를 만들었고 646개 브랜드, 3569개 제품이 노출됐다.

▲ 최인석 레페리 대표. 사진=박왕진 대학생 명예기자.
▲ 최인석 레페리 대표. 사진=박왕진 대학생 명예기자.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전체 브랜드 노출빈도 중에서 특정 브랜드 순위가 어느 정도인지, 어떤 세대에게 인기 있는 크리에이터가 특정 브랜드를 노출했는지까지 분석하고 솔루션을 제시한다. A브랜드의 경우 노출된 크리에이터 숫자는 많은 편인데 제품 품목수가 적다는 결과가 나오면 다품목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식이다.

‘레페리’는 커머스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게 목표다. 데이터렙의 데이터도 커머스에 활용할 계획이다. “한국은 탑 크리에이터가 브랜드와 한달에 2번 콜라보레이션해서 2000만 원씩 받아 1년에 5억 원 버는 수준이다. 탑크리에이터가 이 정도라면 산업적으로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그래서 커머스에 도전하는 것”이라는 게 최 대표의 설명이다.

중국진출은 중국에 콘텐츠를 판매하는 목적도 있지만 동시에 중국시장으로부터 배우려는 목적도 있다고 한다. “중국에 퀄리티 높은 콘텐츠를 선보이는 전략이 유효했다면 우리는 중국에서 배워 온 커머스 판매 노하우를 한국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배워서 써먹을 곳이 아직은 찾기 힘들다. 중국의 쇼핑사이트인 알리바바의 ‘타오바오’는 접속하면 ‘크리에이터 세션’이 있고 원하는 크리에이터를 클릭하면 옷, 화장품 등을 라이브로 시연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상을 보다 클릭하면 바로 제품구매로 이어지는 식이다. 최 대표는 한국에도 이 같은 커머스 서비스가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20대를 기반으로 해서 이런 콘텐츠를 즐기고 있고, 팬덤이 형성돼 있다. 한국에도 이러한 크리에이터 커머스를 입힐 수 있는지 실험을 할 것이다.”

MCN시장에 대해서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초창기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던 상황이 끝나고 적지 않은 업체가 ‘흑자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품이 꺼지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온다. 최 대표는 “주식투자를 많이 하는데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으면 처음에 반짝하고 한번 가라앉는다. 그러다 장기적으로 다시 올라가게 된다”면서 “3일 만에 전 국민의 시청패턴이 바뀌어 유튜브로 영상을 모두 보지는 않는다. 지금 10대가 자라 30대가 되고 이들이 주 소비층이 됐을 때를 봐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업체의 성과가 부진한 이유로 ‘해외진출’의 성과가 늦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꼽았다. “미국은 인구가 많으니 광고수익만 받아도 먹고살 수 있지만 한국은 시장이 작아 해외진출이 필수적이다. 우리 업체도 작년에 국내사업만 했으면 금방 흑자를 냈을 텐데 중국진출을 시도하니 시간이 걸리는 거다. 지금은 지켜봐야 할 때다. CJ E&M의 방송사업은 한 때 ‘부회장이 취미로 하는 사업’이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오랜 기간 투자한 결과 콘텐츠로 성공하지 않았나. 과실을 보려면 2~3년 더 지켜봤으면 한다.”

중국 시장에서 안착한 레페리는 동남아 시장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에서 한류는 식고 있는 반면 동남아는 뜨겁다”는 점이 투자이유다. “다만 중국은 하나의 나라인데 동남아는 다른 문화의 개별국가들로 이뤄져 있고 구매력이 높지 않다는 점이 애로사항이다. 그러나 성장률이 중국의 5배이고 이곳의 사람들은 한국을 정말 좋아한다. 여기서 커머스가 ‘터질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본다. 전초기지를 미리 세워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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