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상훈 사장이 조선과 TV조선에 기사 쓰지 않도록 얘기해두겠다고 했습니다. 변용식 대표가 자리에 없어서 김민배 TV조선 전무에게도 기사취급하지 않도록 부탁하고 왔습니다.”

발신자를 확인할 수 없는 이 문자에는 세 명의 이름이 등장한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변용식 TV조선 대표이사, 그리고 TV조선 보도본부장 출신의 김민배 TV조선 전무다. 수신자는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 문자에 등장하는 ‘기사’는 어떤 기사를 말하는 걸까. 특검과 시사인 517호 단독보도에 따르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관련 기사다.

해당 문자는 누군가 방 사장과 김 전무에게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비보도를 부탁했고 방 사장의 경우 이 요청을 받아들였다는 내용으로, 발신자는 삼성 미래전략실 간부에게 이를 보고했다. 발신자를 삼성측 인사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문자를 통해 삼성이 당시 수많은 언론사 가운데 조선일보의 보도 여부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 삼성그룹 깃발. ⓒ 연합뉴스
▲ 삼성그룹 깃발. ⓒ 연합뉴스
해당 문자에 대해 조선일보측은 지난 9일 “조선일보 편집국은 독립돼 있고, 방상훈 사장도 이 같은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측은 “뉴스타파가 ‘이건희 회장 동영상’을 공개한 다음날인 22일 조선일보와 TV조선이 모두 이를 보도했다”며 “해당 문자 메시지가 어떤 경위로 작성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김민배 TV조선 대표이사 전무 또한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문자를 보낸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 내용이다”라며 이건희 동영상 보도와 관련해 “보도본부에 (보도하지 말라고) 얘기한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TV조선의 한 기자는 “당시 보도하지 말라는 지침 같은 건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선일보와 TV조선은 관련사실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016년 7월23일자 10면에 ‘이건희 성매매 의혹 파문… 삼성 “당혹스럽다”’ 기사를 실었으며 7월26일자 14면에 ‘이건희 성매매 의혹 사건 서울중앙지검서 수사키로’ 기사를 실었다. TV조선도 7월22일자 메인뉴스에서 ‘이건희 회장 동영상 파문… 경찰 수사 검토’ 리포트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 보도가 전부였다. 조선일보의 경우 이후 2016년에는 관련기사가 지면에 실리지 않았고 2017년 들어 3월8일자 12면에 ‘이건희 동영상 CJ부장이 촬영 지시했다’ 기사를 실었다. 이후 3월14일자 11면에 ‘이건희 동영상 연루 의혹 CJ 계열사 임원 3명 압수수색’, 3월29일자 10면에 ‘이건희 동영상 때문에 삼성, 10억 원 뜯겼다’ 기사를 실었다.

▲ 뉴스타파가 지난해 보도한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화면 갈무리.
▲ 뉴스타파가 지난해 보도한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화면 갈무리.
TV조선 또한 이후 메인뉴스 리포트가 없다가 2017년 3월7일자 메인뉴스에서 ‘이건희 동영상 파문… CJ 부장이 촬영 지시?’, 3월13일자 메인뉴스에서 ‘검찰, 이건희 동영상 촬영 의혹 CJ 압수수색’ 리포트를 내보냈다. 당시 언론은 조선일보·TV조선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을 재벌총수의 성매매 대신 영상으로 돈을 뜯어내려 했던 공갈 프레임에 기울어 있었다.

조선일보와 TV조선에서 관련 보도를 한 건 맞다. 그러나 삼성이 원했던 ‘비보도’의 취지가 이건희·이재용 일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결과적으로 삼성이 원했던 그림으로 보도가 이어졌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다수 언론은 동영상에 대한 삼성의 공식입장을 확산시키는데 머물렀고, 검찰이 이 회장의 성매매 행위에 삼성이 그룹차원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은 점 등에 대해선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만약 조선일보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처럼 적극적으로 취재했다면 상황은 달랐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 문자가 갖는 의미는 상당하다. 삼성의 꼼꼼한 이건희 성매매 보도 ‘마사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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