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지는 재벌그룹 삼성을 대변해왔다.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문자에는 유력 경제지 이름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미디어오늘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재판 내용과 시사인 517호 보도 등을 종합해 언론사 간부들과 삼성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문자 내용을 입수했다. 지난 7일 오후부터 연속으로 보도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삼성을 도와줄 수 있는지”

“존경하는 실차장님! 어제 감사했습니다. 면세점 관련해서 서양원 국장과 상의해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김대영 올림”

2015년 7월 삼성 출입 기자였던 김대영 매일경제신문(이하 매경) 유통경제부장이 장충기 사장에게 보낸 문자다. ‘서양원 국장’은 서양원 편집국장을 지칭한 것으로 당시에는 매경 산업부장이었다. 

삼성 핵심 인사에게 “존경하는”이라는 경어를 쓰면서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내용. 장충기 문자를 통해 언론과 삼성의 검은 유착을 폭로한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9일 공개된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서 이 문자를 소개하며 “매경 기자의 데스크·사장은 삼성인가”라고 비판한 뒤 “매경이 삼성 재판에서 왜 삼성 편을 드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은 어떤 맥락에서 이런 문자를 삼성에 보냈던 걸까. 매경 간부들은 이 문자가 ‘취재 활동의 일환’이었다고 말한다. 2015년 7월은 이른바 ‘면세점 전쟁’이 치열했던 시기다. 7개 대기업이 신규 서울 시내 면세점 운영권 2장을 놓고 경쟁을 펼쳤다.

이 문자를 두고 서양원 매경 편집국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면세점 경쟁이 치열했다. 기획으로 각 경쟁사마다 어떤 면세점 전략을 갖고 있는지 취재했던 것”이라며 “이와 관련해 삼성이 갖고 있는 전략이 뭔지 내가 (김대영 기자에게) 취재해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서 국장은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경쟁했던 곳을 똑같은 크기로 똑같이 썼다”며 “한군데라도 작게 쓴다면 또 문제가 생기지 않겠는가. 정상적인 취재 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문자는 기사를 위한 것이었으며 면세점 경쟁사마다 동일한 비중으로 보도했다는 것.

김대영 부장은 “삼성을 출입할 때 보냈던 문자”라며 “삼성 출입기자로서 삼성이 면세점 사업에 임하는 자세나 CEO 포부를 취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 과정에서 장 사장(장충기)이 도와달라고 해서 ‘당신이 도와달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취재원이 도움을 요청할 수 있지 않나”라며 “다만 그걸 받아보고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우호적이거나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사실과 다르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문자가 오해를 사고 있다고도 했다. 김 부장은 “해당 문자만 보면 마치 삼성에만 (기사를) 잘 쓴 것처럼 왜곡되고 오해하는 것 같다”며 “그렇게 부각돼 굉장히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는 2015년 7월10일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로 선정됐다. 

김대영 기자는 선정 직후인 7월11일 “HDC신라 세계최대 도심면세점…용산을 한국판 ‘아키하바라’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입찰 전쟁에서 총수 일가 중 가장 적극적으로 뛰었던 이부진 사장은 경영능력을 입증할 첫 번째 시험대에서 합격점을 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사진=포커스뉴스
▲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사진=포커스뉴스
“내일자 1면 톱도 그렇게 나간다”

“매경(매일경제신문) 손현덕 국장이 홍완선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본부장이랑 통화했는데 찬성 확정했고, (의결권 행사) 전문위로 안 넘긴다고 했다. 내일자 1면 톱도 그렇게 나간다.” (2015년 7월10일 이수형 전 미래전략실 기획팀장(부사장)이 장충기 사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지난 4월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진동) 심리로 열린 ‘이재용 등 5인의 삼성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공판에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공개한 문자 내용이다.

손현덕 매경 논설실장은 당시 편집국장이었다. 이 문자는 매경 고위 간부와 삼성 관계자가 언론 지면 편집을 두고 ‘사전 협의’한 것처럼 보인다. 실제 7월11일자 매경 1면 톱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국민연금 ‘찬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일자 1면 톱도 그렇게 나간다”는 삼성 관계자 말은 사실이었던 것.

손 실장은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특검이 공개한 문자에서 자신이 언급된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손 실장은 “이수형 부사장과는 선후배 관계로 연락을 자주 한다”며 “신문이 나오기 전에 알려준 것이 아니다. 토요일자(7월11일은 토요일) 기사는 전날 오후 3시면 나온다. 기사가 발행되고 저녁 즈음에 (이수형 부사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손 실장은 “기사가 사실과 다르면 몰라도 담당 취재 기자가 제대로 쓴 기사인데 기사 외압이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해당 기사는 담당 기자와 데스크가 발제해서 준비한 것이었고 당시 큰 이슈였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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