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의 ‘공영방송 이사장 해임 가능’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11일 국회를 방문해 “기본적으로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의 임기가 보장된 건 사실이지만 임명한 사람이 해임권도 갖는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해임’하는 방식의 정상화를 검토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발언이다.

자유한국당은 ‘법적 절차’를 문제 삼고 있지만 실제 방통위가 공영방송 이사장을 해임하는 것은 가능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임명하기 때문이다. 방문진법상 ‘해임 조항’은 없지만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고무효소송 때 대법원이 ‘임명권’을 ‘해임’까지 포함하는 ‘임면권’으로 해석한 판례가 있다.

박근혜 정부 때 3기 방통위는 권한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방문진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방통위가 방문진의 관리감독기구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방문진법에 따르면 방문진 이사를 방통위가 임명할 뿐 아니라 MBC 예결산을 방통위에 제출해야 하며 방문진 정관 변경시 방통위의 인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2002년 법제처가 방문진이 ‘방송위원회’를 주무관청으로 하고, 검사·감독의 대상이라고 해석한 점을 밝히기도 했다.

▲ 왼쪽부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김장겸 MBC 사장.
▲ 왼쪽부터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김장겸 MBC 사장.

방통위 차원에서 전체회의 의결을 통해 이사 해임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방통위원 5인은 정부여당 3, 국민의당 1, 자유한국당 1 구도로 이뤄져 있어 자유한국당 추천 위원의 반발 속 ‘강행’이 가능하다.

다만, 김장겸 MBC 사장의 직접적인 해임은 불가능하다. MBC 사장의 해임은 방통위가 아닌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결정하기 때문에 방문진의 의결을 거쳐 단계적으로 해임할 수 있다. 현재 방문진은 박근혜정부 여당 추천 이사 6명과 더불어민주당 추천 이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최소한 이사 2명을 교체해야 김장겸 사장 해임안을 의결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방문진 이사의 경우 ‘무엇을 이유로’ 해임할지 불분명하다는 사실이다. 해임조항이 없는 방문진법 특성상 이사의 자격을 박탈하기 위해서는 ‘결격사유’를 충족시켜야 한다. 결격사유는 △3년 이내 선출직 공무원 △3년 내 대선캠프 및 인수위 경력 △3년 이내 당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거나 공무원 자격이 박탈되는 등 국가공무원법 제33조에 해당될 때 등이다.

고영주 이사장 재임 이후 MBC의 신뢰도가 급락하고 부당징계, 해고 등을 방치한 점은 ‘매우 심각한 문제’지만 이 같은 관리감독에 대한 평가가 ‘결격사유’에 명시돼 있지 않다. 공영방송 정상화를 바라는 국회 내부에서는 정연주 사장 해임 때와 달리 명분이 있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임을 할 수 있도록 법이 구성돼 있지 않은 점이 까다롭게 작용할 것이란 의견이 나온다.

▲ 8월8일 오전 MBC영상취재기자들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 8월8일 오전 MBC영상취재기자들이 서울 상암동 MBC 사옥앞 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경영진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사진=이치열 기자.

이명박 정부 때 방송통신위원회가 KBS 신태섭 이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무리수’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방통위는 신태섭 이사가 동의대에서 해임되자 이를 빌미로 ‘징계에 의한 해임이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결격사유’라며 사실상 해임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2009년 법원은 신태섭 이사의 결격 사유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이사직 상실이라고 판단하는 건 위법하다고 판결해 역풍을 맞았다.

물론, 고영주 이사장의 언행과 MBC문제를 방치한 점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 또는 ‘사회적 갈등 조장’을 금지하는 방송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방송법의 관련 조항들은 처벌 조항이 없고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적용해 이사를 2명이나 해임하면 이를 악용하려는 정부를 위한 ‘나쁜 전례’를 남길 수도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고영주 이사장의 경우 ‘문재인 공산주의자’ 발언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게 되면 국가공무원법에 따른 결격사유에 해당될 수는 있지만 당장 판결이 나올 것 같지는 않다”면서 “현 정부도 신태섭 이사 때와 비슷하게 강행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방식이라면 논란과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임기가 1년 남은 방문진에 이렇게 하는 게 맞는지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발 속 강행이 실익이 있는지 ‘손익계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방통위가 이사 해임을 위한 속도전을 벌일 가능성이 낮게 점쳐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방통위는 자료제출 등을 통해 MBC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행사하는 일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고용노동부의 MBC 특별근로감독 결과를 바탕으로 한 방통위 차원의 후속조치 차원에서 관련 조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며 박근혜 정부 때 정부여당 위원의 반대로 무산된 백종문 녹취록 진상조사를 비롯해 최근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를 실시할 수 있다. 또, MBC 재허가 과정에서 노동문제를 지적하고 재허가 조건에 명시할 수도 있다.

정부여당 고위관계자는 “국민들이 보기에 답답할 수는 있지만 방통위나 정부 차원에서는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내용과 형식면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우선 조사부터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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