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를 ‘극우들의 놀이터’라고 부른다. 2012년부터 5년 동안(현재 방문진을 출입하는 기자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지켜본 결과 이보다 적합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유명세를 탄 공안 검사 출신 고영주 이사장은 물론이거니와 ‘뉴라이트 인사’ 김광동 이사, 문 대통령에 대한 “사상 검증이 필요하다”던 언론학자 유의선 이사, 친북인명사전(1차 발표 명단에 박원순 서울시장,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임종석 비서실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편찬사업을 추진한 우익 단체 출신의 권혁철 이사, ‘정수장학회 출신’ 김원배 이사, 고 이사장을 거들며 방문진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내용의 원고를 1시간 동안 읊어대던 이인철 이사까지.

이들은 헌정 사상 최초로 파면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 입김이 반영된 ‘구여권 이사’들이자 한국 사회의 오른쪽 극단에 위치한 인물들이다. 매번 쪽수로 구야권 이사 3명을 들러리로 만들고 시작하는 방문진 이사회는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MBC 예능보다 잼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MBC 관리·감독을 포기한 채 언론노조 MBC본부 소속 언론인들에 대한 인사 배제를 골몰하는 ‘극우들의 놀이터’로 변질된 지 벌써 10년이다. 그 세월 MBC는 극우 세력이 가장 사랑하는 언론사로, 태극기 부대의 최후의 보루로, 사회의 공기가 아닌 흉기로 전락했다. “MBC 밖에 안 남았다”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사진=이치열 기자
“김장겸은 물러나라” 구호로 일어선 MBC 언론인들은 ‘큰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시민 다수가 이 싸움을 지지하고 있지만 여전히 “지난 5년 동안은 뭐했느냐”는 비난도 적지 않다. MBC 해직 PD인 최승호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에서 알 수 있듯, MBC 언론인들은 처절하게 싸우다가 그보다 더 처절하게 탄압을 당했다. 단지 “인사권을 쥔 경영진의 전횡으로 저항의 목소리가 시민들에게 닿지 못했”(제작 중단 중인 이영백 MBC PD수첩 PD 발언)을 뿐이다.

그동안 MBC 언론인들의 저항은 한 사업장에서 파업을 하느냐, 마느냐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시민과 시청자들의 권리와 맞닿아 있었다. 그것은 ‘공정한 공영방송을 가질 권리’였다. 시민들의 권리를 권력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설 수 있는 언론사는 단언하건대 대한민국에 몇 없다. 

이를 테면 손석희 앵커의 수의 사진으로 유명한 1992년 50일 파업이 그랬다. MB 정부 때인 2008년 종합편성채널 탄생을 막기 위한 미디어법 파업이 그랬다. 법원이 정당성을 인정한 2012년 파업은 시민들과 함께 했던 공정방송 투쟁이었다. MBC와 대척에 있던 기득권 언론과 정치 세력이 MBC 파업을 ‘정치 파업’이라고 매도하는 이유다.

시민들이 이번 MBC 언론인들의 투쟁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세력 청산’을 꼽겠다. 극우화한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싸움은 낡아빠진 냉전 이데올로기 세력과 이에 부역하는 언론인에 대한 청산과 연결된다. 

전가의 보도처럼 색깔론을 꺼내는 극단의 인사가 공영방송에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극단의 진영에 충성 맹세를 하고 보도를 망가뜨린 인사에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한 줌의 권력을 쥐고 기자·PD에 재갈을 물린 경영진에는 법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것이 비정상의 정상화일 것이다.

이미 촛불시민의 박근혜 탄핵으로 이 세력들의 정치적 수명은 다했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 잔존하고 있다. 그들의 최대 버팀목인 방문진 세력은 ‘극우의 마지막 전사’로 최후까지 저항할 것이다. 독하게 노력하는 악을 이기기 위해선 더 지독한 투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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