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삼성그룹 뇌물공여 국정농단 사건 재판이 오는 25일 1심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 2008년 삼성 특검은 ‘봐주기 수사’, 1·2·3심 선고는 ‘면죄부 판결’이란 평가를 받아온 점에 비춰, 이 사건 선고에 더욱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지난 3개월 간 공판 과정을 빠짐없이 지켜 본 미디어오늘은 유·무죄 판결만큼 이 재판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미디어오늘은 삼성 1심 재판이 우리 사회에 던진 교훈을 선고 전까지 연속기획으로 다룬다. (편집자주)

싣는 순서
‘삼성공화국’ 총수를 구속한 최초의 수사기관
삼성 재판, 공직자 청렴성도 법정에 세웠다
[인터뷰] “나는 이재용 재판에 파견된 방문판매원이었다”
④ 
“여론을 의심하라” 삼성 이재용 재판이 드러낸 내부자들

‘삼성 뇌물 재판’은 재벌 대기업이 주도하는 여론 형성 메커니즘을 일부분 드러냈다. 언론과 기업은 광고와 기사를 교환하는 공생관계를 맺고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여론 지배력을 가진 언론·학계와 긴밀한 네트워크를 조성해 대기업 이해관계 확성기 역할을 했다. 대시민 여론전을 담당하는 보수단체엔 삼성그룹을 비롯한 대기업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관계의 원동력은 돈이었다. 특검이 법정에서 공개한 수사 기록에 따르면 언론은 광고·협찬료를, 보수단체는 활동 지원금을 삼성에 요구했다. 전경련 등 재계단체는 대기업의 후원금으로 운영됐다. 각종 학술 협회 등의 전문가 집단은 사외이사 선임 등 기업과 유대관계를 맺으며 얻는 부대이익을 기대했다. 삼성에 ‘우호적인’ 여론 중 일부는 돈과 거래된 여론일 수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여론 형성 시도가 여론 장악으로 번질 수 있는 지점이다.

언론과 기업, 광고비와 기사 교환

풍문으로 회자되던 ‘경언유착’은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휴대전화를 통해 물증으로 확인됐다. 언론사 간부들은 직접 장 전 차장에게 “좋은 기사로 보답하겠다”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 지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등의 내용으로 문자를 보냈다.

▲ 지난 4월13일 ‘삼성 뇌물공여 사건’ 공판에서 삼성그룹 임직원 간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공개됐다. 문자에 등장한 언론사들은 모두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다.
▲ 지난 4월13일 ‘삼성 뇌물공여 사건’ 공판에서 삼성그룹 임직원 간 주고받은 문자 내역이 공개됐다. 문자에 등장한 언론사들은 모두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에 우호적인 논조를 보였다.

“올들어 문화일보에 대한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대비 1억 플러스(8억) 할수있도록 장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달라는게 요지입니다. …(중략)…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문화일보 편집국장)

“존경하는 실차장님! 어제 감사했습니다. 면세점 관련해서 서양원 국장과 상의해보니 매경이 어떻게 해야 삼성의 면세점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합니다.”(매일경제 유통경제부장)

“장 사장님. 늘 감사드립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안팎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누워계시는 이건희 회장님을 소재로 돈을 뜯어내려는 자들도 있구요. 나라와 국민, 기업을 지키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져갑니다.”(연합뉴스 콘텐츠융합담당 상무)

‘좋은 기사’는 삼성그룹 측 논리를 옹호하는 보도로 읽힌다. 문화일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지난 2월17일 “삼성 이재용 구속과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그러잖아도 겹겹 규제로 지뢰밭을 걷듯 기업 활동하는 처지에 정치 리스크까지 가세해 기업을 옥죄는 판이다”라고 주장했다.

매일경제는 HDC신라면세점이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자로 선정된 다음 날인 2015년 7월11일 “HDC신라 세계최대 도심면세점…용산을 한국판 ‘아키하바라’로”라는 기사에서 “이번 입찰 전쟁에서 총수 일가 중 가장 적극적으로 뛰었던 이부진 사장은 경영능력을 입증할 첫 번째 시험대에서 합격점을 받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매일경제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 한창이던 2015년 7월 가장 적극적으로 합병 이슈를 보도한 언론사다. 7월6일부터 10일까지 관련기사만 총 22개, 하루 평균 4꼭지가 5일 연속 게재됐다. 9개 일간지 및 10개 경제지 중 가장 많은 수다. 기사 요지는 대부분 헤지펀드 엘리엇을 포함한 외국계 투자자들의 투기 공세가 한국 대기업 경영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삼성그룹 측이 강조하던 주장과 동일하다.

연합뉴스 상무의 문자는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 보도가 났을 즈음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는 당시 축소 보도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취재기자가 이 회장이 기소중지 처분을 받은 사실을 파악한 후 “檢 ‘동영상 속 행위 ‘성매매’ 맞다’ 결론…이건희 기소중지”라는 단독 기사를 준비했으나 보도되지 않았다.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에 따르면 해당 기사는 내부 기자들 반발로 뒤늦게 보도됐으나 제목과 부제에서 ‘성매매’란 어휘가 빠졌고 실제 행위에 관한 기술은 삭제됐다.

‘대기업→전경련→언론’ 여론의 생산 경로 

언론은 전경련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냈다. 보도자료·보고서·간담회·토론회 등 전경련의 활동이 언론보도로 연결되면서 여론이 확산되는 식이다. 특검이 전경련으로부터 제출받은 주간업무계획표엔 전경련의 꼼꼼한 취재지원 계획이 담겨있었다. 2015년 6월 초부터 7월 말까지 해외 투기 자본 세력에 대응한 경영권 방어제도를 다룬 보도가 스크랩돼 있는가 하면, 보도자료 발송, 전문가 대담 기획, 인터뷰 지원 등 전경련이 계획한 취재 지원 계획도 확인됐다.

▲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샤진공동취재단
▲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샤진공동취재단

이승철 전 전경련 부회장은 7월9일 장 전 차장에게 “오늘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포이즌 필’ 등 방어권 제도 도입을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기획기사, 동아를 출발로 본격적으로 방어권 제도 개선 얘기를 해 나갈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전경련은 7월9일 30대 그룹 사장단을 모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동아일보는 7월 8~9일 이틀에 걸쳐 ‘경영권 방패 없는 한국기업’ 심층 기획기사 7꼭지를 보도했다. 9일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가 삼성물산 합병안 찬성 입장을 정하기 하루 전이었다. 장 전 차장 휴대전화에서는 임채청 동아일보 전무(현 부사장)가 7월 10일 삼성물산 합병 성사를 두고 당시 최치훈 사장에게 ‘축하한다. 고비를 넘겼다’고 인사한 사실이 확인됐다.

전경련 주간계획표엔 ‘[7/13 기획 동아]’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동아일보 7월13일 1면 톱기사는 “‘헤지펀드 공격 가속’ 93% ‘적대적 M&A 늘 것’ 50%” 제하의 기획기사였다. 해당 기사는 3면 전체 지면으로 연이어 보도될 만큼 당일 비중있게 다뤄졌다. 전경련 기업정책팀이 7월23일 공개한 ‘경영권 방어수단 부재, 방어비용 증가와 투자위축으로 경제 성장잠재력 약화 초래’ 보고서는 다수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청와대→대기업→(전경련)→보수단체’ 또 다른 여론 조성 사슬

‘좋은교과서만들기시민연대 5천5백만 원, 한러대화 1억5천만 원, (사)포럼오래 5천만 원, (사)문화문 2억1천만 원’

특검 수사 결과 밝혀진 전경련의 보수성향 단체 후원 내역이다. 이용우 전 전경련 상무는 “김완표 (전) 미래전략실 전무가 특정 보수 성향 단체들을 지목하며 후원을 요구했다”면서 “삼성이 직접 지원하지 않고 전경련을 경유해 지원한 이유는 모른다”고 밝혔다.

▲ 사진=미디어몽구 제공.
▲ 사진=미디어몽구 제공.

좋은교과서만들기시민연대는 2015년 10월 출범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지지 운동’ 단체다. 최주원 당시 사무총장은 전경련에 2억8천만 원을 2015년 10월부터 2016년 2월까지 활동비로 요구했다. 그는 전경련에 “삼성에서 지원해주라 했는데 왜 못해주겠다는 거냐”며 막무가내로 요구했고 전경련은 부가세 포함 5천5백만 원을 후원했다. 이같은 내용은 2015년 11월경 안종범 수첩에도 기재돼있다.

한러대화는 외교부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로, 2008년 9월 이명박 정부 때 한·러 간 교류를 증진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외교부 대변인과 러시아대사를 역임한 이규형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이 2014년부터 조정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5년 이승철 전 상근부회장, 엄치성 전 전경련 상무 등도 조정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자유주의·시장주의에 기초한 경제·재정전략을 연구”하는 사단법인 포럼오래(오래포럼으로 이름 변경)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를 지원하는 ‘친박 모임’으로 알려져있다. 법인 대표인 함승희 강원랜드 이사장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공천을 받고 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으나 2007년 탈당하고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 이후 친박연대 최고위원을 역임,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 후보로 노원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문화문은 문화예술 지원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법인이다. 법인이사로 등록된 이석원 전 여의도연구소 기획실장이 눈에 띈다. 이 이사는 장충기 전 차장과 서울대 72학번 동기로 알려졌다. 장 전 차장은 문화문 대표의 지원요청을 김완표 전 미전실 전무에게 전달했고, 전경련이 김 전 전무의 요청을 듣고 후원금을 지급했다.

청와대는 직접 대기업에 보수단체 활동비를 요청했다. 2015년 10월 삼성·현대·LG·SK 등 4대 그룹 조찬 모임에서 모임을 주선한 전경련 관계자가 ‘보수단체 지원을 위해 추경이 필요하고 그룹 별 할당도 정해졌으니 협조하라’고 전달했다. 삼성은 5억 원, SK는 2억 6천만 원 등 총 13억1000만원 부담하라는 취지였다. 김완표 전 미전실 전무가 전 대통령 뇌물수수 사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확인한 사실이다.

특검은 수사 결과 청와대가 정무수석실 주도로 2014년~2016년 10월 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총 68억원을 대기업으로부터 받아 특정 보수단체에 지원을 했다고 파악했다. 전경련은 2014년 대기업으로부터 지원받은 자금과 자체 자금을 합한 24억원을 22개 단체에 지원했고 2015년 31개 단체에 약 35억원, 2016년 22개 단체에 9억여 원을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혜 단체엔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엄마부대 등 ‘친정부’ 시위를 주도해 온 단체들이 포함돼있었다. ‘화이트리스트’라 불리는 이 사건은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양석조 부장검사)에 재배당됐다. 

▲ 삼성 깃발. ⓒ연합뉴스
▲ 삼성 깃발. ⓒ연합뉴스
“도와드리겠습니다” 지식인 집단의 조력

재계단체, 학술단체, 각종 협회 등도 전경련처럼 언론과 시너지효과를 냈다. 이들 중 일부는 삼성 등 대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장충기 전 차장 휴대전화 등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한국선진화포럼과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015년 7월14일 ‘경영권 방어와 기업지배구조 논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외국인 투자자 공세에 대비한 대기업 경영권 보호 제도의 필요성을 다뤘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최종 결정될 임시 주주총회를 3일 앞둔 때였다. 손병두 한국선진화포럼 고문,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윤창현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책위원장 등 학자들이 참여했다.

손 고문은 당시 장 전 차장에게 “엘리엇 때문에 얼마나 노고가 크냐. 한국선진화포럼과 바른사회시민회의가 공동으로 다음주 화요일에 간단한 세미나와 기자회견 가질 것”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한테도 이럴 때 전경련이 목소리를 내고 삼성을 도와야 할 거 아니냐고 행동을 촉구했다”고 문자를 보냈다. 손 고문은 2014년 5월부터 삼성 호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금융투자협회와 삼성 간 교감 관계도 확인됐다. “밖에서 삼성을 돕는 분들이 많은데 그중에 연합뉴스의 이창섭 편집국장도 있다. 기사 방향 잡느라고 자주 통화하고 있는데 진심으로 열심이다. 나중에 아는 척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오늘 통화 중에 기사는 못 쓰지만 국민연금 관련 의사결정 관련자들한테 들었는데 돕기로 했다고 한다.” 황영기 한국금융투자협회장이 2015년 7월8일 장 전 차장에게 보낸 문자다.

황 협회장은 2001~2004년 동안 삼성증권 사장을 역임했다. 2007년 ‘삼성 비자금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 일가의 비자금을 차명 관리한 임원으로 황영기 전 사장을 거론했었다. 황 전 사장은 당시 검찰이 불법 비자금 등 수사를 목적으로 삼성증권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하기 하루 전인 2007년 11월29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해 의혹을 더 키우기도 했다. 

이처럼 재벌이 주도하는 여론 형성 과정에는 학계·언론·보수단체·협회, 그리고 청와대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모두 내부자들이었다. 삼성 이재용 재판은 우리에게 “여론을 의심하라”는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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