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교육에도 ‘사상검증’과 ‘블랙리스트’가 있었다. 지난해 밝혀진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에는 비영리 공공영상미디어센터인 ‘미디액트’가 등장한다. 이 단체는 이명박 정부 때 ‘좌파색출 문건’에 이름이 오르면서 정부 지원이 끊긴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시청자미디어재단은 정부정책에 대해 견해를 밝히면 안 된다는 윤리강령 서약을 미디어 강사들에게 강제했다 논란이 되자 철회했다.

미디어 교육분야의 중요한 시기다. 지난 18일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 공모가 시작됐으며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도 조만간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민병욱 전 동아일보 논설위원이 한국언론진흥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 편집자주) 두 기관의 이사장이 과거 정부처럼 정치적 논란을 야기하거나 ‘관치 교육’을 답습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을 18일 오후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서울영상미디어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국미디어센터 시설 위치가 표기된 현황판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방송문화진흥회, 방송통신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지방자치단체, 민간 등 다양한 주체들이 운영하는 시설 32곳이 협의회 소속 미디어 센터다.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는 각 센터에서 진행하는 독립다큐 개봉, 마을미디어 제작, 노인 등 소외계층을 위한 제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최근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는 학계, 언론인들과 함께 ‘미디어교육지원법안 추진위원회’에 참여하며 입법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 사진=금준경 기자.
▲ 허경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 사진=금준경 기자.

‘공동체 미디어’를 강조하는 각 센터들은 신문읽기나 콘텐츠 제작을 강조하는 정부 주도의 미디어 교육과는 결이 달라 보였다. 허경 사무국장은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마을미디어 등이 제각각인 것 같지만 모두 공동체 미디어 정책으로 포괄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각 지역 센터에서는 생활의 공동체건, 이해의 공동체건 공동체를 위한 교육을 제공해 이들이 적극적으로 미디어활동을 할 수 있게 돕고,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 체제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역량을 기르는 활동을 한다”고 덧붙였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미디어교육 부처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방통위, 문체부 등 각 부처별로 미디어 교육이 따로 시행되다보니 산발적이고 때론 중복되기도 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허경 사무국장은 벽을 허물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통합 논의는 생산적이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19대 국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를 전담하는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민희 의원이 방통위가 컨트롤타워가 되는 미디어교육지원법안을 내놓자 문화체육관광부를 전담하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희정 의원은 문화부가 컨트롤타워가 되는 법안을 발의했다. 허경 사무국장은 이를 언급하며 “대응성 법안이라고 봐야 한다. 부처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자기 부처에 대한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어느 부처가 주도할 것인가만 두고 싸우다 논의를 제대로 못한 채 폐기됐다”고 말했다.

“사업이 중복된다”는 말에 위험성이 있다고 허경 사무국장은 지적했다. “방통위와 언론재단의 교육 모두 여전히 열악한 상황인데, 중복된다는 표현을 쓰면 사업예산을 깎아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강원도에 시청자미디어센터가 설립되면서 춘천MBC미디어센터가 폐지됐다. 춘천MBC에서 굳이 비용을 들여 유사한 센터를 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방식을 유지해도 문제가 없는 걸까. 허경 사무국장은 “물론 각 부처가 지금처럼 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며 ‘유기적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토론회에서 방통위와 문체부가 협력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아무런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데 대해 비판했다. 그는 “도시재생 관련 정책도 국토부, 문화부, 행안부가 유기적으로 협력한다. 한 부처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협업을 하는 게 더 민주적일 수 있다”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공동체 미디어, 마을미디어 정책도 기본법을 통해 공통의 개념과 기준을 만들고 이들 부처가 협력하고 연계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는 미디어 교육의 성과로 시청자미디어재단 출범 및 센터 확대를 강조했다. 몇몇 지역에 있던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총괄하는 재단을 신설하고 각지에 시청자미디어센터를 건립한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이 같은 모델의 부작용도 있다는 지적이다. 허경 사무국장은 “협의회에는 여러 주체별로 미디어센터들이 찢겨져 있는데, 오히려 다양한 모델이 존재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래야 통제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방통위가 시청자미디어재단을 만들어서 하나의 조직으로 묶는 센터들은 각 지역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데다 중앙에서 통제하기 좋은 구조가 됐다”면서 “각 센터의 자발성과 자율성을 촉진시키는 운영구조가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이치열 기자.
▲ 인천 시청자미디어센터. 사진=이치열 기자.

‘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부 주도 미디어교육의 취약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정부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졌다. 지역 시청자미디어센터에 정부 국정홍보 영상을 틀도록 하는가하면 “정부 정책에 대한 견해를 교육 내용에 포함해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지역 센터 강사들에게 강제해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가 성명을 내면서 문제가 알려졌다.

참여정부 때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가 설립한 지역 미디어센터 역시 예산 삭감 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참여정부 때만 해도 방문진이 미디어센터들 네트워크 교류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 사업은 지역과 연계가 가장 잘 된 것으로 평가받는다”면서 “그러나 지역MBC의 경제난이 이어지고, 센터가 촛불단체의 배후로 찍히면서 방문진의 지원이 크게 줄었다. 대구의 경우는 MBC파업 도중 ‘지지마 MBC’콘텐츠를 만들어서 퍼블릭엑세스 프로그램(시청자 제작 프로그램)으로 내보내기도 했다. 그런 국면들을 보면서 지원을 다 없앤 것 같다”고 말했다.

방통위와 달리 문체부의 경우 설립 후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에 운영권을 넘기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한 후 지자체에 넘기다보니 중앙에서 통제를 할 수 없고 각 지역 상황에 맞게 협력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센터들이 있다”며 “이렇게 되면 탄압하기도 애매하다. 과거 한 의원실이 문체부 산하 센터에서 시민들이 만든 영상 리스트를 제출하라고 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아서 제출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는 ‘공동체 미디어’를 전면에 내세우는 미디어 교육 공약을 밝혔고 방통위를 미디어 교육의 중심 부처로 설정했다. 허경 사무국장은 “질적인 측면에서 이전 정부와 다른 건 분명하지만 정부 주도의 미디어 교육에는 위험요소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미디어 교육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다. 제작 과정에서 스토리를 발굴하고, 삶을 돌아보고 공동체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 자체에서 민주적인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청자미디어재단처럼 공공기관화하면 공무원들은 평가지표를 근거로 사업을 해야 되고 그 근거는 수강생 수, 만들어낸 콘텐츠의 수가 된다. 학원이 돼 버리는 거다. 아이들 유튜브 보고 알아서 미디어 잘 만드는 세상인데, 그럴 거면 뭐 하러 세금 들여 건물을 짓나.”

정부 주도의 미디어 교육 정책이 지역사회와 협력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허경 사무국장은 “참여정부 때 방송위원회가 최초의 시청자미디어센터를 만들었는데, 만족스럽진 않지만 지역 단체들과 자율적 운영을 위한 논의를 했고, 운영위가 센터장을 선출하는 방식이었다”면서 “그런데 재단으로 통합되면서는 운영구조, 의사결정구조가 하향식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31일 시청자미디어재단 혁신방안 국회토론회에서도 “시민, 시청자(시민)단체, 미디어교육 강사와의 소통 부족”과 ‘하향식 소통’이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공동체미디어 활성화를 위해 각 센터가 지역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움직이도록 하고, 지역 사회와 교류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시청자미디어재단은 허브 역할만 하면 좋은데, 공무원들은 ‘폐지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더라.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운영위원회 부활이 시급하다. 운영위원회가 주도해 지역 상황에 맞는 성과지표와 정책을 만들고, 상향식으로 소통이 되도록 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허경 사무국장은 “결국 미디어센터는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잘 만드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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