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을 폄훼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 그가 지난 20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부부싸움 끝에 (노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씨가 가출하고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글을 남긴 것이 화근이었다.

누리꾼들은 격앙했다. 논란이 커지자 정 의원은 지난 23일 “노 대통령 죽음은 복합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고 그 때문에 당시 여러 정황을 언급했던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순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4일 “저열한 막말과 망언은 근절돼야 할 적폐”라며 정치적 책임을 촉구했다. 노무현재단은 “정진석 발언이 명백한 거짓임을 밝히며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단호한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무현재단은 25일 유족 명의로 정 의원을 고소할 예정이다. 

‘말’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또 다른 문제는 언론 보도다. 특히 구성원들이 총파업 중인 KBS·MBC 보도들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 사건에 침묵하다가 지난 23일 MBC 뉴스데스크 첫 보도를 했다.

▲ MBC 뉴스데스크 23일자 보도. 사진=MBC화면
▲ MBC 뉴스데스크 23일자 보도. 사진=MBC화면
리포트 제목이 문제였다. “정진석 SNS 파문… ‘책임져라’ vs ‘재수사하라’”였다. MBC는 정 의원 막말을 문제 삼는 민주당에 “노 전 대통령 서거 과정과 600만 달러 뇌물 수수 사건 진상을 밝히는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한국당 주장을 배치시켰다.

막말 논란을 부른 것은 정 의원인데 해당 보도만 보면 노 전 대통령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발언과 주장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여·야 공방으로만 사안을 보도할 때 발생하는 문제다. 

지상파 기자들은 방송사의 이러한 보도 행태를 ‘기계적 중립’이라고 부르거나 ‘공방신기’라고 비꼰다. 언론으로서 ‘사실’을 전했으니 문제될 것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가 공방신기 리포트를 선호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같은 날(23일) KBS ‘뉴스9’ 리포트 제목은 “‘정진석 발언’ 논란 확산… 여야 대립”이었으나 온라인 제목은 “‘정진석 발언’ 논란 확산… ‘법적 대응’ vs ‘재수사’”으로 뽑았다. 

그래도 KBS는 전날 메인뉴스에서 “‘노 前 대통령, 부부 싸움 뒤 목숨 끊어’… ‘최악 막말’”이라는 제목으로 30초짜리 앵커 멘트로 기본적인 사실 관계를 전하긴 했다. MBC보다야 나은 수준이지만 KBS 보도 역시 수년 동안 여·야 공방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 JTBC 뉴스룸 23일자 보도. 사진=JTBC화면
▲ JTBC 뉴스룸 23일자 보도. 사진=JTBC화면
반면, JTBC ‘뉴스룸’은 공영방송과 차이를 보였다. JTBC는 23일 “정진석 ‘노무현 발언’ 해명… 민주당 ‘법적 대응’”으로 제목을 뽑았다. 노 전 대통령 사건 재수사를 주장하는 한국당보다 법적 대응을 시사한 민주당 움직임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그러면서 JTBC는 “민주당은 블랙리스트와 정치 댓글 작성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커지자 한국당이 물타기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면서 한국당의 속내도 덧붙였다. 정 의원은 MB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바 있다.

정치인 말은 무거워야 한다. 정 의원 말은 가볍다못해 사자를 공격하는 ‘정쟁의 수단’이 됐다. 그가 근거 없이 무리한 주장을 하는 까닭이 MB를 겨냥하는 사정을 비난하고 저지하는 데 있다면, 의도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양비론’ 보도를 한 언론들 역시 MB를 비호한 결과를 빚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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