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라 말 중개상’으로 알려진 덴마크 국적 중개상인이 삼성 뇌물 사건 항소심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향후 출석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진다. 삼성과 최순실씨 간 ‘말 세탁’ 계약에 개입한 인물로, 삼성 측에 유리한 증언을 할 가능성이 있지만 삼성 측 공범으로 사법처리가 진행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입국에 응할 지도 불투명하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28일 오전 10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피고인 5인의 삼성 뇌물 사건 항소심 제1회 공판준비기일에서 삼성 측이 신청한 덴마크 말 중개상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트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안드레아스는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수익은닉 혐의 공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2016년 8월 삼성이 정씨에게 고가의 말을 사줬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정씨가 탄 ‘살시도’, ‘비타나’, ‘라우싱’ 등을 삼성으로부터 구매한다는 허위 매매계약서를 작성했다. 이후 최씨 및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 등과 ‘말 소유권 세탁’ 논의를 함께 했고 삼성과 재차 허위 계약 관계를 맺음으로써 삼성의 말 처리 과정에 개입했다.

특검 측은 이에 “안드레아스는 (삼성 측의) 범죄수익은닉과 관련된 공범이고 유럽연합과의 형사 사법공조에 의해 수사 협력이 가능하다”면서 “공범 지위기 때문에 증언의 신빙성이 낮다”고 의견을 밝혔다.

특검은 이어 “자금 세탁 범죄로 안드레아스에 대한 수사 이뤄지는지 형사사법공조를 통해 덴마크에 사실조회 신청을 할 예정”이라면서 재판부에 “안드레아스가 실제로 국내에 들어와 증언을 할 수 있는 지가 먼저 소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 부회장의 범죄수익은닉 법 위반을 무죄로 이끌어내기 위해 안드레아스를 증인으로 신청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안드레아스의 증인 출석 의사를 알아볼 것이라 밝혔다.

특검 vs 삼성 변호인단 신경전, 긴장감 감돈 법정

재판부는 뇌물수수 혐의자인 전 대통령 박근혜씨와 최순실씨도 항소심 증인으로 채택했다. 다만 “증거가치가 있는지 근본적으로 의문이 든다”며 증인 신문 기일 결정을 보류했다. 이들이 증언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박씨의 경우 현실적으로 구인장을 집행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씨는 1심 재판에서 증인 출석을 거부했고 최씨는 법정에 출석해 증언거부권을 행사했다.

특검과 삼성 변호인단은 이날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날 선 설전을 주고받았다. 변호인단이 정씨의 1심 재판 증인 출석에 대해 ‘보쌈 증언 논란이 있었다’ 말한 것에 대해 양재식 특검보는 곧장 “변호인이 모욕적인 표현을 썼다. 매우 유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검이 지나치게 많은 증인신문 시간을 차지했다’는 주장을 둘러싸고도 공방전이 벌어졌다.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와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을 2심 법정에 증인으로 다시 세울 것인지를 서로 논박하는 과정에서다. 박 전 전무와 김 전 차관은 정유라 승마 지원 뇌물죄 유죄를 이끌어낸 핵심 증인이다. 변호인단은 중요 증인임에도 1심에서 변호인단의 반대신문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았다며 항소심 증인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사실과 다르다”며 “증인신문조서 녹취록을 보면 확인될 것이다. 특검 신문시간과 변호인 신문시간은 비슷했다”고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곧장 반박에 나서 “변호사의 명예를 걸고 말하지만, 정말로 (신문시간을) 쟀을 때 특검이 변호인보다 1초라도 짧은지 확인해달라”면서 “특검은 스스로 신문해서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오전 10시에 시작해 저녁 8시까지 끝내지 못했다. 과연 정상적인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뇌물 공여와 관련된 진상이 추가적으로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특검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 및 김종찬 전 승마협회 전무 문자메시지 내역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수석 통화내역과 업무수첩 △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 문자 내역 △대통령 주재 회의 문건 등을 추가 증거로 제출할 예정이다. 특검은 현재 서울중앙지검이 수사 중인 ‘청와대 캐비닛 문건’에서 관련 증거를 확보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은 올해 안에 종결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오는 10월12일 첫 공판기일을 열고 19일, 26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양측 항소이유를 주제별로 나눠서 듣는 기일을 진행할 것이라 밝혔다. 11월부터는 주당 1~2회 씩 기일을 진행할 예정이다.

채택이 확정된 증인은 안드레아스, 남찬우 문체부 서기관, 주민근·강기재 삼성전자 과장 등 4명이다. 기일 확정이 보류된 박근혜·최순실씨, 채택이 보류된 박원오 전 전무와 김종 전 차관 등을 합하면 총 8명이다. 추가 증인 채택을 전제해도 “필요한 증인만 부를 것”이란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올해 안에 결심 공판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한편 1심에서와 같이 항소심에서도 뜨거운 방청·취재 경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4석 규모 소법정에서 열린 이날 재판은 기자석 10석, 사건관계인 6석을 제외한 18석이 일반 방청석으로 배분돼 방청을 위해 법원을 찾은 시민 십수명이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방청권 배부 대기열에서 첫 번째 순서를 차지한 삼성그룹 전 미전실 직원은 새벽 5시40분 경 법원을 찾았다.

공판이 열린 502호 소법정은 입석 방청을 하는 취재기자로 발디딜틈이 없었다. 서울고등법원은 취재진에 한해 입석 방청을 허용했다. 34석 방청석 좌우로 취재기자 30여 명이 서서 1시간 가량 진행된 공판을 지켜봤다. 서울고등법원은 이를 고려해 오는 10월12일 첫 공판기일부터 100여 석 규모의 중법정에서 재판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특검 측에선 양재식 특검보를 비롯해 특검에 파견된 강백신·김영철·김해경·박주성·조상원 검사 등이 출석했다. 피고인 석엔 1심에서도 변론을 맡았던 법무법인 태평양의 권순익 변호사, 김종훈 변호사, 이현철 변호사를 비롯한 변호인 5인이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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