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들의 규제 근거를 마련하는 국책연구기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통신사들로부터 7년 간 146억 원 상당의 연구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통신사와 유착 의혹이 불거진 전례가 있는 KISDI가 독립적인 연구를 해왔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10~2016년 연구비 현황을 미디어오늘이 분석한 결과 지난 7년 동안 통신3사 및 계열사는 KISDI에 연구비 명목으로 146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KISDI가 수주한 민간 연구용역 전체 금액이 151억700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민간용역 대부분을 통신사가 채워준 꼴이다.

KISDI에 가장 많은 연구비를 지출한 통신사는 SK텔레콤과 자회사들로 7년 동안 70억8000만 원을 지급했다. KT의 경우 같은 기간 63억8000만 원을 지급해 비슷한 규모를 보였다. LG유플러스는 연구비 명목으로 11억6000만 원만 지급해 다른 통신사와 격차가 컸다.

▲ 2010~2016년 KISDI가 수주한 통신3사 연구용역. 사진=연합뉴스. 디자인=이우림 기자.
▲ 2010~2016년 KISDI가 수주한 통신3사 연구용역. 사진=연합뉴스. 디자인=이우림 기자.

연구용역은 ‘개별 용역’과 ‘공동 용역’으로 나뉜다. ‘공동 용역’의 경우 복수의 통신사 및 통신업체가 망 접속료 대가 산정 등을 위해 정부와 공동으로 실시한다는 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를 감안해 ‘공동 용역’을 제외하고 개별 통신사가 1:1로 연구용역을 맡긴 규모만 보더라도 SK텔레콤 59억 원, KT 52억 원, LG유플러스 2억 원 순이었다.

통신사의 규제를 전담하는 기관이 통신사로부터 연구자금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다는 사실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통신사가 통신사 규제와 관련한 연구에 유리한 결론을 얻기 위해 보험을 들어놓는 차원에서 형식적으로 연구 용역을 맡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KISDI는 △통신서비스 부문 경쟁도입 △불공정행위 규제 및 사후규제체계 △방송·통신서비스 시장의 규제제도별 개선방안 △통신서비스 시장의 경쟁상황 평가 등에 대한 연구가 주요 업무다. KISDI가 어떤 연구결과를 내놓느냐에 따라 통신사의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사안들이다.

통신사가 KISDI와 체결한 연구계약의 지급 규모와 시기를 보면 언론사에 광고를 집행하는 것처럼 비슷한 규모의 금액이 주기적으로 지급됐다. SK텔레콤은 2010년 10억, 2011년 12억, 2012년 14억, 2014년 13억, 2015년 10억 원씩 연구용역을 맡기며 두 해를 제외하곤 10억 원 이상의 연구비를 지급했다. KT의 경우 2010년 8억, 2011년 11억, 2012년 10억, 2013년과 2014년에는 각각 6억,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5억5000만 원씩 연구 용역을 맡겼는데 연속된 두해에 같은 액수의 연구비가 책정됐다. 

연구가 필요할 때 용역을 맡기는 게 아니라 금액을 정해놓은 다음 이에 맞춘 연구를 진행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통신사 관계자는 “경쟁 통신사가 한다고 하는데 다른 사업자가 안하기는 어렵다”면서 “정부기관에서 발주 부탁이 오면 거절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이미 자사의 연구소가 있는 KT와 SK가 국책연구소에 연구를 맡길 필요가 있는지도 물음표다. 실제 두 통신사의 연구 과제를 보면 환경변화에 따른 통신사의 전략이나 산업 동향 등 자사 연구소를 통해 수행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SK텔레콤이 맡긴 연구는 △창조경제시대의 ICT산업 동향과 향후과제(4억) △인터넷 융합-혁신과 그 시사점(4억) 등이다. KT 역시 △IT생태계의 진화방향과 통신사업자에 대한 시사점(3억) △스마트미디어의 현황과 전략 연구(3억) 등의 과제를 맡겼다.

산업 전망에 대한 연구과제의 경우 통신사에 유리한 방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게 되는 구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자체 연구를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사업을 진행할 때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의 자료는 외부적으로 활용하기 좋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KISDI에서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발주처의 요구사항에 맞춰 수행계획서를 작성한다”면서 “결국 원하는 결론에 맞춘 연구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 통신3사 대리점. ⓒ 연합뉴스

이와 관련 KISDI 관계자는 “KISDI가 먼저 제안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자가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KISDI는 국제기구 활동, 개발도상국 지원 등을 통해 해외규제현황 등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기관으로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통신사의 지원이 다른 연구에 영향을 주는 일은 없다. 조직 내부의 안전장치가 충분히 확보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내부에서도 통신사업자가 요구하는 수준이 일부 과도한 면이 있어 거리감을 둬야 한다는 생각도 있다”면서 “하지만 아쉽게도 재정상황이 뒷받침하지 못하다보니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용역 연구 과제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공교롭게도 SK텔레콤이 케이블업계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에 대한 인수합병 발표 직후인 12월31일 KISDI의 연구용역 3건(10억 원 규모)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상적으로 계약체결 후 1~2주 후부터 연구가 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결정한 직후 대규모 계약이 체결된 것이다. 

이후 KISDI의 행보는 SK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인수합병이 시장경쟁에 저해되는지 여부를 증명할 KISDI의 ‘통신시장경쟁상황평가’가 이례적으로 예년보다 네 달가량 늦은 2016년 3월에 발표됐다. 뒤늦게 나온 보고서에는 인수합병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결합상품의 경쟁제한성’을 비롯한 쟁점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등 ‘알맹이’가 빠져 KISDI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KISDI 관계자는 “12월 말에 계약한 건 당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었지만, 해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선에서 정리가 된 것”이라며 “민간사업자들의 상황을 상시로 모니터링 하고 있지 않다. 사업자 상황에 따라 계약하는 건 아니다. 인수합병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KISDI와 통신사의 관계가 의심을 받는 이유는 과거 여러 차례 유착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에는 SK텔레콤의 단말기 시장 진출에 대한 적합성 여부를 판단한 연구 보고서 내용이 SK텔레콤에 사전 유출되는 일이 벌어졌다. KISDI 출신 SK텔레콤 상무급 인사가 후배인 현직 연구원을 통해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해당 연구원은 면직됐다. 공교롭게도 유출된 시기와 맞물려 KISDI가 SK텔레콤과 20억 원대 연구용역 계약을 맺으면서 연관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KISDI 출신 인사들이 통신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유착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키운다. 염용섭 SK경영경제연구소 소장, 김희수 KT경제경영연구소 부소장은 KISDI에서 통신 분야 연구를 맡았던 인사다. 조신 전 SK브로드밴드 사장, 이인찬 전 SK브로드밴드 사장도 KISDI 출신이다. 참여정부 때 “SK는 그룹 내에 KISDI 연구소를 하나 차려도 될 듯하다”는 말이 방통위 과장의 입에서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우선 무분별한 연구 수주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KISDI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재논의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수 의원은 “민간 연구용역 대부분을 이해당사자인 통신사가 채우고 있는 것은 부적절한 연구용역 수주로 비춰질 수 있다”면서 “방송통신분야 시장에 대한 진단과 평가 등 규제 기초 연구를 진행하는 독립적 연구기관으로서 역할과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KISDI 관계자는 “KISDI 경영상태를 감안하면 통신사의 연구용역을 무조건 받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라며 “KISDI는 가장 출연규모가 작은 기관 중 하나다. 정부의 출연 규모를 늘리는 게 병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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