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는 차갑고 생명력이 없다. 하지만 현장과 결합하면 생기가 돌고 이야기가 된다. 주요 언론사의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이 한 목소리로 강조한 내용이다. YTN과 SBS, 중앙일보, 뉴스타파의 데이터 저널리스트들이 미디어오늘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구글코리아가 16일 서울 강남구 ‘구글캠퍼스 서울’에서 공동주관한 ‘데이터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그들의 성과와 고충을 참가자들과 나눴다.
데이터 저널리즘을 할 때 가장 힘든 과정은 데이터 구하기다. 함형건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팀장은 “구체적 데이터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며 문헌 조사와 현장 조사를 번갈아 하며 일정한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함 팀장은 데이터 저널리즘 보도인 ‘펀치볼 지뢰지도’를 만들기 위해 단순히 데이터만 수집·정리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야 답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안을 찾아야했다”는 함 팀장은 한 지뢰활동가가 1년 동안 해당 지역을 지나면서 직접 만든 지도 파일을 입수했다. 공공데이터가 아니기 때문에 검증이 필요해 걸어 다니며 위치 정보를 하나하나 수집했다. 지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의 인터뷰 자료집을 받고는 당사자들을 직접 만났다. 그렇게 ‘펀치볼 지뢰지도’가 탄생했다. 함 팀장은 “소박한 매핑(Mapping·지도 제작)과 투박한 기술이라도 현장으로 접근하면 이들의 이야기를 더 잘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날 데이터가 데이터 저널리즘의 유일한 재료가 아니라며 입을 모으기도 했다. 김태형 KBS 데이터저널리즘팀 기자는 데이터의 한계를 언급하며 데이터에 ‘이야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한 명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일 뿐”이라며 “사람들은 숫자에 분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시각화해서, 궁극적으로는 이야기로 만들어야 공공이 얻는 부가가치가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도를 힘들게 만들고 끝내는 게 아니라, 초등학생들이 칠판에 지도를 붙여 놓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한별 중앙일보 데이터저널리즘 데스크 또한 “데이터는 건조하고 차갑다”며 ‘대우조선해양, 어쩌다 밑빠진 독 됐나’를 보도했을 당시 사례를 들었다. 그는 “시간이 갈수록 대우조선해양의 주가가 떨어지는 모습을 3D 그래프로 만들었는데, 너무 날것 그대로의 데이터여서 독자의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의 이야기를 넣었다.
김 데스크는 “거제 지역 구직급여 수령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은 점을 보고 현장에 가서 사람을 만나봤다”고 말했다. 그 결과, 대부분 경리 업무를 하던 무기계약직 여성들의 일자리가 먼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데스크는 “관련된 사람의 이야기를 앞에 넣고 데이터를 바닥에 까는 식으로 했더니 그냥 차트보다 독자들 반응이 좋았다”고 밝혔다. 박원경 SBS 기자도 “데이터 저널리즘팀에 처음 왔을 때에는 너무 데이터에 방점을 찍었다”며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도 중요하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풀어갈 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사이트를 만든 김강민 뉴스타파 데이터팀 기자는 공유를 강조했다. 김 기자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언론계의 관행이 하나의 ‘허들’이었다고 전한 뒤 “다른 언론사에서도 참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회사 내부에서도 호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이런 작업이 언론 생태계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