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한 블로그에 등장한 글의 제목에서처럼 한국기자들이 방중취재과정에서 중국경호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으나 국내 여론은 동정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맞을 짓을 했다’는 식이다. 심지어 이화여대 한 교수는 중국 경호원의 집단폭행을 ‘정당방위’운운하다가 사과를 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포털 ‘오늘의 유머’ 코너에는 “솔직히 맞을만 했을 겁니다”라는 제목에서 “우리나라에서 하는 짓이나… 미국 방문때 백악관 소동을 보면…맞을만 했다고 생각되네요”라는 글에 옹호하는 댓글이 왕창 달려있다.

비난을 하든 동정을 하든 각자의 판단영역이지만 내용을 좀 알아야 하지않을까. 비난받고 있는 영상, 카메라 기자의 세계, 그들의 활동과 역할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과 정보를 갖고 있는가.

“지하철 행사장에 인상을 찌푸리며 이곳저곳을 촬영하며 다니던 기자가 불안하여 제발 인상 좀 펴고 일하라고 부탁했더니 퉁명스럽게 ‘배고파서 그래요’라는 답변을 듣고, 빵과 우유를 사다줬는데 그렇게 고맙게 받아 먹는 모습은 처음 봤다.”

▲ 12월1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개막식’에서 한국의 사진기자가 중국측 경호원에게 폭행 당했다. 사진=노컷뉴스
▲ 12월14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한·중 경제·무역 파트너십 개막식’에서 한국의 사진기자가 중국측 경호원에게 폭행 당했다. 사진=노컷뉴스
한 공기업 홍보팀장은 사진기자들이 식사때를 놓치며 일하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행사장 근처 ‘싸구려 빵과 우유를 겨우 구해다 줬는데도 그렇게 감사인사를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카메라 기자들은 현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제 때 식사를 할 수 없다. 맘 편하게 식사조차 할 수 없는 카메라 기자들은 똑같은 사진을 전송하지 않기 위해 각도와 거리의 싸움을 벌이기 위해 몸싸움은 다반사다. 더구나 치열하고도 위험한 현장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위험에는 항상 노출된다.

보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12월14일 오전 10시50분경 한중경제무역 파트너십 개막식에서 연설을 마치고 기업 부스를 도는 과정에서 취재하는 기자들이 쫓아가자 중국 경호원들이 이를 제지하면서 폭행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

중국 측 경호원은 문 대통령이 부스를 돌고 개막식장을 빠져나가려 할 때 한국 취재기자와 사진 기자들이 따라나가자 제지했다. 이에 비표를 제시하고 정당한 취재 활동이라며 중국 경호원 측에 항의했지만 항의한 기자는 멱살을 잡히고 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중국 경호원들은 이를 촬영하는 사진 기자에게도 달라붙어 카메라를 뺏으려는 일이 발생했다.

청와대 카메라 풀단의 기자들이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기자들을 대표하여 사진을 찍어 서비스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무슨 특종욕심이나 단독촬영 차원이 아니라 일상적 사진 서비스를 대표해서 찍는 일을 한 것일 뿐이다. 취재가 공식적으로 허용된 비표를 제시했는데도 제지당하고 구타까지 가해졌다면 그것은 중국 경호원측의 과잉경호, 불법구타행위로 비판받아야 한다.

▲ 중국측 경호원에게 폭행당한 매일경제 기자가 15일 밤 귀국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 중국측 경호원에게 폭행당한 매일경제 기자가 15일 밤 귀국한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한국 언론의 신뢰가 떨어지고 국내에서 비난받는다고 해서 이런 명백한 잘못에 대해조차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는 식은 언론자유를 위험에 빠트리고 카메라 기자들의 역할을 부정하는 일이다.

한국의 언론자유도가 60~70위권으로 비판받지만 중국의 세계언론자유지수는 180개국중 176위(국경없는 기자회 RSF)로 ‘언론자유 개념’조차 없는 나라다. 중국에서 언론사는 오직 국가발전의 하부기관으로 공산당의 대변인 역할에 머문다. 자유로운 취재와 권력에 대한 감시는 꿈같은 이야기다. 당연히 카메라 기자들은 당에서 주는 사진을 보도하는 식으로 자유로운 취재와 영상촬영은 국가의식을 방해하는 정도에 머문다. 언론후진국에 가서 취재하는 한국 기자들은 언제든 집단구타, 취재방해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현장을 지키고 보도하는 카메라 기자들은 국민을 지키는 민주주의 수호의 전사들이다. 역사를 바꾸는 사진 한 장은 이들의 고통과 위험, 인내 속에 만들어진다.

베트남 전쟁에서 벌거벗은 아이가 울면서 거리를 뛰는 모습은 전세계에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위대한 고발 사진이었다. 미국 AP 통신사 닉 유트(Nick Ut)는 폭탄이 터지는 전장의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찍은 사진을 본국으로 타전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에 반전여론을 가져온 역사의 사진으로 평가받았다. 미국이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는 결정을 내린 이면에 바로 이 사진이 함께 했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하게 됐다.

국내에서도 30년 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에 이은 이한열 사망 사건은 한국 정치사에 물줄기를 바꾼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2017년은 이한열 열사 사망 30주기가 된다. 그가 최류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찍힌 한 장의 사진은 전세계에 타전됐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대한 분노는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전두환이 권력을 포기하며 헌법을 개정하는 쪽으로 급선회하여 오늘의 직선제와 언론자유를 성취한 셈이다.

일반 기자는 걷지만 카메라 기자는 뛰어다녀야 한다. 일반 기자는 멋도 부리고 권력에 줄대기라도 하지만 카메라 기자는 무거운 밧데리, 망원 렌즈, 사다리, 삼각대 등 장비만으로도 너무 무거워 여름 겨울 가리지않고 헉헉 댄다. 기자실조차없는 이들은 현장에서 때론 쪽잠을 자며 망원렌즈에 턱을 붙인다.

“아무도 동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점을 알지만 카메라 기자들은 조직적으로 항의하는 법도 서툴고 조직화 된 목소리를 전달하는데도 익숙하지 않다. 카메라 기자들이 더 좋은 예우를 해달라고 소리친 적도 없다. 리포트를 엉터리로 해서 신뢰를 잃은 기자들 때문에 부당하게 카메라 기자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 현장에서 쫒겨다니고 심지어 구타까지 당하지만 억울하다고 요구조차 못한다.

때로는 사진 한 장, 동영상 하나가 역사를 바꾸고 진실을 지킨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 기자들에게 정당한 예우와 존경이 주어져야 한다. 현장에서 자신의 일에 충실하다 구타당한 카메라 기자에게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취재 허가를 받은 기자, 비표를 제시한 기자에게 집단구타를 했다는 것은 폭력국가, 폭력집단, 언론자유없는 미개국에서나 일어나는 법이다. 카메라 기자에게 손가락을 겨누기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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