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신년기자회견 화두는 문재인 대통령 입으로 직접 말한 개헌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개헌을 언급한 순간 정치권은 블랙홀로 빠져들었다.

1987년 이후 개헌의 현실화는 가장 근접해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지방선거와 함께 동시 투표해 개헌을 하자고 공약했다. 개헌 찬성 여론은 70%를 넘어섰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향후 개헌 작업에 탄력을 주거나 발목을 잡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와 기자들과 두번의 질의응답에서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특히 이날 발언은 대통령의 개헌발의권 사용 여부와 관련해 극단으로 해석될 수 있어 청와대도 언론에 신중한 보도를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정당과 후보들이 약속했다”며 “이번 기회를 놓치고 별도로 국민투표를 하려면 적어도 국민의 세금 1천200억 원을 더 써야 한다. 개헌은 논의부터 국민의 희망이 되어야지 정략이 되어서는 안된다. 산적한 국정과제의 추진을 어렵게 만드는 블랙홀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저는 줄곧, 개헌은 내용과 과정 모두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며 “저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의 합의를 기다리는 한편, 필요하다면 정부도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 국민개헌안을 준비하고 국회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개헌발의권을 직접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피하면서도 정부에서 개헌안을 마련하겠다는 말로 국회에서 조속한 합의안을 도출해달라고 압박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합의가 없다면 사실상 개헌을 할 수 없다는 고민도 토로했다.

문 대통령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개헌안에 대해서는 국회의 3분의 2의 찬성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또 국민투표에서 통과돼야 한다. 그래서 국회가 동의하고 또 국민들이 지지할 수 있는 그런 최소분모들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중앙권력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가라는 부분은 말하자면 많은 이견들이 있을 수 있는 그런 부분”이라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가장 지지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낼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만약에 그 부분에 대해서 하나의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또 개헌을 다음으로 미루는 그런 방안도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개헌과 관련한 다른 질의응답에서 문 대통령은 “국회 개헌특위 논의가 2월말이나 3월에 발의된다면 국회 쪽 논의를 기다릴 생각이다. 그것이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자체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며 “두 가지 길이 있다 본다. 국회가 의지를 갖고 정부와 함께 협의가 된다면 최대한 넓은 개헌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함께 합의되지 않고 정부가 발의한다면 아마도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국회 의결도 받을 수 있는 안으로 좁아 질 수도 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도 최소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의 정부 개헌안을 마련해 대통령이 개헌발의권을 직접 사용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회견 직후 청와대 관계자는 브리핑실을 찾아 대통령의 개헌 발언에 대해 “개헌 발의를 하자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 1월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청와대
▲ 1월1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했다. 사진=청와대
청와대가 문 대통령 발언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헌발의권의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관심은 문재인 대통령이 ‘진짜’ 개헌발의권 카드를 꺼내느냐다. 이 말은 아무도 문 대통령의 결정을 알 수 없다는 얘기와 같다. 참모진 안에서도 정부의 개헌발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가장 큰 걸림돌은 ‘문재인의 약속’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개헌을 국민과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최대 장점은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다. 국회에서 개헌안 합의가 지지부진하다고 하더라도 문 대통령이 ‘액션’을 보여주지 않고 체념한다면 대통령의 약속은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 말대로 개헌안은 국회에서 3분의 2가 찬성하지 않으면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다. 자유한국당이 버티는 한 대통령이 아무리 개헌발의권을 사용하더라도 통과될 가능성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개헌발의권을 사용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별 소득이 없어도 정치에서 해야만 되는 상황이란 게 있는데 문 대통령의 개헌발의권 사용이 그것이다.

개헌발의권을 사용하는 순간 정치권은 블랙홀로 빠져들 수 있다. 이런 저런 명분을 대고 있지만 ‘문재인발 개헌’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자유한국당의 속내다.

대통령 개헌발의권 사용은 자유한국당과 ‘전쟁’을 벌이자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야당의 극한 반발이 예상되고 실효성도 없는데 굳이 대통령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어야만 하느냐는 반대도 있을 수 있다.

오히려 개헌발의권을 사용하면 지방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개헌에 찬성하는 민주당 후보들은 지방분권을 강화하자는 개헌안을 가지고 선거를 이끌 수 있다. 개헌에 반대하는 야당 후보들은 수세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눈에 보이는 전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청와대의 고심도 여기에 있다. 개헌발의권이 갖는 파장을 알고 있고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날 문 대통령의 개헌 발언은 그래서 중요하다. 개헌발의권 사용의 포문을 여는 경고성 발언이 될지, 아니면 개헌발의권의 한계를 인정하며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메시지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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