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삼성동 사무실 취재 현장은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취재진들의 불만과 원성으로 가득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이 관련된 검찰 수사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 위해 17일 오후 5시30분 서울 대치동 슈페리어타워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사 취재진들은 회견 개최 사실이 알려진 오후 4시 경부터 해당 건물에 모여들었다. 건물관리인과 이 전 대통령 경호원들이 건물 출입을 불허해 오후 5시 경엔 정문 앞 양측 인도가 취재진들로 가득 찼다.

▲ 1월17일 오후 5시 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대치동 슈페리어타워 정문 앞이 취재진들로 가득 찼다. 사진=손가영 기자
▲ 1월17일 오후 5시 경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대치동 슈페리어타워 정문 앞이 취재진들로 가득 찼다. 사진=손가영 기자

80명이 넘는 카메라·사진·취재 기자들이 현장에서 대기했으나 회견장에 들어간 취재진은 기자 15명, 오디오맨 7명, 외신기자 2명 등 총 24명이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회견장이 좁다’ 등의 이유를 들며 취재기자 4명, 사진기자 4명, 방송사 7곳(각 사당 2명) 등의 취재만 허가했다. 이마저도 취재진과 MB 보좌진 간 한 시간 여의 협상 끝에 도출된 결과였다.

최소 23개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들을 파견했으나 취재기자가 회견 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언론사는 4곳이었다. 방송사 중엔 채널A, 지면 제작 언론사 중엔 한국일보가, 통신사 중에선 연합뉴스와 뉴스1의 취재기자가 한 명씩 이 전 대통령 사무실에 들어갔다.

이날 오전부터 ‘뻗치기(무한정 대기를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한 언론사가 우선 선정됐다. 지면 제작 언론사에게 할당된 한 자리의 경우 ‘가위바위보’로 기준을 정했다. 아시아경제, 시사인, 한국일보, 매일경제 등 언론사 5곳이 가위바위보를 벌였고 한국일보 강아무개 기자가 최종 승리해 지면 언론사 대표로 회견장에 참석했다.

가위바위보를 제안한 기자는 주간지 시사인 소속 주진우 기자였다. 주 기자는 오전부터 취재 대기를 하지 않아 애초 취재진 선정 후보에 들지 않았으나 “10년을 기다려왔다” “한번만 생각해달라”고 말하며 가위바위보를 제안했다.

“전 대통령의 권위가 있지 이게 무슨 기자회견인가.” 회견 취재 기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취재진들은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했다. 주 기자는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한다 해놓고 ‘기자들을 부르지 않은 기자회견’을 열었다”며 “기자가 못 들어가니 질문도 못했다. 대체 뭘 말하려고 했는지, 뭐가 그리 두렵고 뭘 숨기려고 했는지 정말 안타깝다”고 비판했다.

▲ 주간지 시사인 소속 주진우 기자가 회견 취재진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가위바위보'를 제안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주간지 시사인 소속 주진우 기자가 회견 취재진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가위바위보'를 제안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회견장에 들어가지 못한 한 기자는 “장소가 좁으면 옮겨서 하든 밖에서 하든 해야지, 자신의 범죄 의혹 문제인데 몇 명만 들어오라고 하다니 말이 되느냐”며 “이럴거면 집에서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이나 하면 됐지 기자들 불러 가지고 뭐하는 짓이냐”고 거세게 항의했다.

가까이 접근 말고 “멀리서 소리질러 질문하라”던 MB 보좌관

이 전 대통령은 성명 발표를 마친 지 한 시간 가량 후에 1층 정문으로 나와 검은색 제네시스 차량을 타고 사무실을 떠났다. 이 한 시간 동안 취재진과 MB 보좌진 간의 실랑이가 수차례 벌어졌다.

“어른 나오시는데 이렇게 계속 막으실 거예요?”(보좌관)

“질문을 아예 하지 말란 말이네요?”(취재기자)

‘포토라인’(과열 취재경쟁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취재경계선) 취재 관행대로 취재기자 3명이 1층 정문 양 쪽에 서서 이 전 대통령을 기다렸다. 모든 기자가 이 전 대통령 주변으로 몰릴 시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에 대표로 질문할 기자를 소수로 선정한 것이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좌진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할 기자들의 기자증을 일일이 확인한 후 출입을 허가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의 보좌진들은 기자회견에 참석할 기자들의 기자증을 일일이 확인한 후 출입을 허가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 전 대통령 경호원 및 보좌진들은 이 기자들의 접근 자체도 불허했다. 한 보좌진은 “자꾸 여기 서 계시면 (포토라인) 못 한다” “문 옆에 있지 말라” “(4m 가량 떨어진 곳을 가리키며) 저 쪽으로 물러서 계시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질문을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는 한 기자에게 그는 “저기서 소리를 지르시라”고 까지 말했다. 기자들이 “기자 불러놓고 질문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 “질문이 필요한 사건이다” 등의 말을 하며 항의하자 이 보좌관은 “어른이 대답하실거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결국 고성이 오갔다. YTN 이아무개 영상취재기자는 “말도 안되는 걸 양해해달라고 하고, 중요한 날인데 무슨 양해를 구하고 있느냐”라며 “적당히 하라. 뭐가 그리 떳떳하다고 이렇게 하느냐. 갑질 그만하라”고 소리를 쳤다. 이 기자는 ‘어른이 대답을 안한다’는 보좌관 대답에 “그래서 질문하지 말라는게 앞뒤가 맞느냐”고 큰 소리로 항의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 접근 가능한 취재진은 3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 이 전 대통령은 저녁 6시30분 1층 정문을 열고 주차된 전용 차량으로 걸어나갔다. 취재기자 2명이 양쪽에 서서 ‘나에게 질문하라고 했는데 검찰 수사에 응하겠다는 뜻이냐’ ‘국정원 특수활동비 관해 보고를 받았느냐’고 이 전 대통령을 따라가며 물었으나 이 전 대통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정문을 나선지 10초 만에 전용 차량에 탑승해 서울 대치동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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