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64)은 ‘언론 비리 종합세트’였다. 그는 수천만 원 금품을 제공하는 ‘스폰서’를 달고 기사를 썼다. 본인이 직접 인사 청탁에 나섰고 여기에는 박근혜 청와대가 개입하기도 했다.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김태업 부장판사)가 그에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47만 원(배임수재죄 및 변호사법 위반)을 선고한 까닭이다. 유력 언론사 최고위 간부가 기사 청탁을 받고 재산상 이득을 취해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은 전례 없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이날 판결을 보다 면밀히 분석했다.

▲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3일 오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인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3일 오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인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① 법원은 왜 ‘스폰서 관계’라고 규정했을까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관하여 부정한 청탁을 받고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357조는 배임수·증재죄에 대한 조문이다. 배임수재죄는 송 전 주필이 받았던 혐의다. 보통 민간 영역에서의 ‘뇌물죄’라고 생각하면 쉽다. 

돈 받은 사람이 있으면 돈 준 사람도 있다. ‘송희영 사건’에서 송 전 주필에게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재산상 이익을 제공한 인사는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 대표(뉴스컴·60·구속기소)다. 뉴스컴은 홍보대행업체로 고객사들의 홍보 업무를 대신해준다. 박 전 대표 역시 이번 사건으로 징역6월에 집행유예 1년(배임수·증재죄)을 선고받았다. 

두 사람을 재판에 넘긴 검찰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피고인 박수환은 조선일보 주필 겸 편집인인 송희영에게 2014년 8월경 자신의 지인이 출간한 자서전 소개 기사 청탁, 2014년 10월경 자신의 고객인 외국계 담배 제조사 BAT코리아의 입장에 반하는 정부의 담배 개별소비세 도입 정책에 대한 비판 기사 청탁, 2015년 4월경 자신의 고객인 멀린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하는 전시회 소개 기사 청탁, 2015년 7월경 자신의 고객인 GE코리아와 경쟁 관계에 있는 미쯔비시에 불리한 기사 청탁 등 자신의 홍보 대행 영업 활동을 도와달라는 내용의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2007년 12월 초순경부터 2015년 5월25일까지 송희영에게 총 12회에 걸쳐 합계 4947만 원 상당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공여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검찰 주장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을까. 재판부는 박 전 대표의 기사 청탁을 사회상규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부정한 청탁”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기사 청탁이 이뤄졌던 시기 전후에 있었던 4차례 골프 접대의 경우 대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두 사람의 배임수·증재 혐의에 대해 ‘일부 유죄’ 판결이 나온 이유다.

다만 재판부는 수표·현금 등으로 제공된 금품에 대해서는 기사 청탁과의 대가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박 전 대표가 송 전 주필에게 2007년 12월 초순경 제공한 1000만 원권 자기앞수표 1장, 2008년 3~6월경 현금 1000만 원, 2008년 7월22일경 1500만 원권 자기앞수표 1장 등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는 2014~2015년에 있었던 기사 청탁과 대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표·현금을 제공한 시기(2007~2008년)와 기사 청탁 시기(2014~2015년) 사이에 ‘6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이 있다는 점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줬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배임수재죄 요건인 “부정한 청탁”이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청탁 내용은 어느 정도 구체적이고 특정한 임무 행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단순히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만 취한다고 배임수재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골프 접대를 제외한 송 전 주필의 현금 및 수표 수수는 사실상 청탁 없이 이뤄진 행위인데, 재판부가 두 사람을 ‘오랜 기간 동안 스폰서 형태의 유착관계’라고 규정하는 연유가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히 스폰서 관계 유지를 위해, 먼 훗날의 청탁을 위해 박 전 대표가 송 전 주필에게 수천만 원을 제공했던 것일까. 이 부분과 관련해선 애초부터 검찰 수사가 부실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

▲ 전직 대통령 박근혜와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50여개 대기업이 774억 원을 억지 출연하게 한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전직 대통령 박근혜와 공모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50여개 대기업이 774억 원을 억지 출연하게 한 혐의로 구속수감 중인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② 왜 안종범은 조선일보로 불려왔나

재판부가 보다 명쾌하게 판단한 혐의는 ‘변호사법 위반’이다. 다소 길지만 검찰의 주장, 즉 공소사실을 살펴보자.

“피고인 송희영은 2014년 12월경부터 2015년 1월경 사이에 당시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 고재호로부터 ‘연임을 도와달라’는 취지로 청탁을 받게 되자 2015년 1월경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을 조선일보 본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낸 다음, 안종범에게 고재호가 대우조선해양 사장으로 연임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로 말하며 고재호 연임을 청탁했다.”

“피고인 송희영은 고재호에게 (자신의) 처조카 임OO의 대우조선해양 취업을 부탁해 임OO이 2015년 1월1일 대우조선해양에 취업하게 했다. 공무원이 취급하는 사무에 관해 청탁 또는 알선을 한다는 명목으로 제3자인 임OO에게 취업 기회 제공에 따른 액수 불상의 재산상 이익을 공여하게 했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당시 고재호 대우조선 사장(63·구속기소·재임 기간 2012년 3월~2015년 5월)의 연임을 청와대에 청탁하는 대가로 자신의 처조카를 대우조선에 입사시킨 것이다. 이 시기는 대우조선 사장 선임을 놓고 경쟁이 치열했던 때였다. 이른바 ‘종범실록’이라고 불리는 안종범 전 수석의 2015년 1월치 업무수첩에는 “<송희영> 대우조선 고재호 고대 / 박OO (실장님)”이라고 쓰여 있다. ‘실장님’은 당시 현직이었던 김기춘(79·구속기소)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의미한다. 재판부에 따르면, ‘박OO’은 김 전 실장이 차기 대우조선 사장 후보로 지지했던 고등학교 후배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재판부는 “2014년 12월경에는 송희영과 고재호 사이에 대표이사 연임 청탁 내지는 알선에 관한 공통의 인식이 있었다”며 “그런 인식 하에 송희영이 안종범에게 연임 청탁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송 전 주필의 처조카 임씨는 대우조선 취업 기준에 비춰봤을 때 ‘부적격자’였다. 재판부는 임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송희영의 처조카 임씨는 지역 고려, 학군별 학점 등의 사유로 서류 전형을 통과할 수 없었다. 그런데 송희영으로부터 취업 청탁을 받은 이철상(전 대우조선 부사장)과 고재호 지시에 의해 서류 전형을 통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에 따르면 고 전 사장은 자신의 아들이 대우조선에 불합격하는 상황에서도 임씨에게는 부당한 특혜를 제공한 뒤 채용했다.

또 재판부는 “면접 점수, 채용 인원 등에 비춰 임OO은 자신이 지원한 경영 관리 분야에 합격할 수 없었음에도 이례적으로 지원 부서를 조달 분야로 변경할 수 있게 해줬다”며 “최종 합격을 한 후 2015년 1월1일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하게 됐다”고 밝혔다. 

즉 “임OO은 송희영의 취업 청탁에 따른 부당한 특혜에 힘입어 대우조선해양에 취업하게 됐고, 이는 대우조선해양 대표이사로서 신입사원 채용의 최종 결재권자인 고재호가 임OO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 김진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지난 2016년 8월2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에게 요트 여행등이 포함된 초호화 유럽 여행으로 접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 소리
▲ 김진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이 지난 2016년 8월29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연임을 목적으로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에게 요트 여행등이 포함된 초호화 유럽 여행으로 접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민중의 소리
③ 기업 돈 받아 초호화 외유 떠났지만 무죄

송 전 주필은 논설주간이던 시절 남상태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68·구속기소·재임 기간 2006년 3월~2012년 3월)에 우호적인 칼럼 및 사설을 게재하고 이를 대가로 2011년 9월1일부터 9월9일까지 최고급 외유 출장을 다녀온 혐의(배임수재)도 받았다. 

그가 박수환 전 대표와 함께 다녀온 유럽 여행지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이탈리아 베니스, 로마, 나폴리, 소렌토, 폼페이, 그리스 산토리니, 아테네와 영국 런던 소재 골프장 등이었다. 이 여행에서 송 전 주필이 남 전 사장으로부터 항공권, 숙박비, 식비, 전세기, 호화 요트 등을 제공받아 3973만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취했다는 혐의다.

재판부는 송 전 주필이 3973만 원 상당의 재산상 이익을 수수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배임수재 요건인 “부정한 청탁”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송희영은 당시 조선일보 논설위원실 실장 및 논설주간으로 재직했지만 조선일보 사설 작성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기록상 조선일보 논설주간으로서 그 임무와 관련해 남상태로부터 ‘국민주 공모 방식 매각 홍보’, ‘중공업사관학교 홍보’ 등에 관해 청탁을 받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탁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 임무와 관련해 재산상 이득을 취하는 것만으로 배임수재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다. 기업 대표 제공으로 초호화 외유를 다녀왔지만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워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송 전 주필은 또 고재호 전 사장 연임을 로비해주는 대가로 현금·상품권 등 17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배임수재)도 받았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고 무죄를 내렸다. 다만 송 전 주필이 2012년 9월 한 식당에서 고 전 사장으로부터 220만 원 상당의 맞춤 양복 상품권 1장을 받은 사실은 인정됐다.

▲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3일 오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인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13일 오후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오른쪽 인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송 전 주필은 미디어오늘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 침묵한 채 법정을 떠났다. 사진=이치열 기자
④ “기자로서의 의무 저버려”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했다. 

“피고인 송희영은 국내 유력 일간지인 조선일보의 주필 겸 편집인으로서 취재, 보도, 평론, 편집 등의 업무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송희영은 고객들을 위해 주로 대언론 업무를 처리하는 홍보대행업체 운영자인 박수환과 오랜 기간 동안 스폰서 형태의 유착관계를 형성·유지하고, 이에 기해 장기간에 걸쳐 박수환의 고객에게 유리한 기사 청탁 등을 받았다. 그 대가로 골프 접대 등 재산상 이익을 지속적으로 취득했다. 이로써 송희영은 사회적 공기인 기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리고, 조선일보 주필 겸 편집인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해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했다. 이 사건 배임수재 범행으로 인해 조선일보의 취재, 보도, 평론, 편집 등 업무의 공정성, 청렴성, 객관성 등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됐고 나아가 우리 언론 전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현저히 손상됐다.”

“피고인 송희영은 자신의 개인적인 청탁을 위해 대통령비서실 소속 경제수석비서관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내는 등 조선일보 주필 겸 편집인으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을 뿐 아니라 이 사건 변호사법 위반 범행으로 인해 공기업 인사 업무의 공정성, 청렴성 등에 대한 사회적 신뢰 또한 현저히 손상됐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의 위법성 및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큰데도 송희영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을 뿐”이라고 꾸짖었다. 그가 이날 실형을 피한 것은 형사 처벌 전력이 없다는 점도 참착됐기 때문이다. 송 전 주필은 지난 13일 1심 선고 후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침묵을 지키고는 법정을 빠져나갔다. 송 전 주필은 김진태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에 의해 자신의 비리 의혹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2016년 8월 조선일보를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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