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지난 2008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린 동아사태에 대한 ‘결정’을 꼼꼼히 살펴보시고 합당한 조치를 취해 주십시오. 돌아오는 3월이면 저희 동아투위원들이 동아일보사에서 강제 축출된 지 43년이 됩니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 전에 꼭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려는 대통령님의 의지를 믿습니다.”
지난해 12월 박종만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위원은 청와대에 청원을 등록했다.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 ‘자유 언론 수호’ 투쟁을 펼치다 정권에 굴복한 동아일보에서 강제 해직된 자신과 동료들의 명예 및 피해 회복과 국가와 동아일보의 사과가 절실하다는 호소였다.
지난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투위 결성 43주년 기념식에서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모처럼 미소를 보였다. KBS·MBC·EBS·연합뉴스 등 공영 언론 사장들이 기념식에 직접 참여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촛불 혁명이 이끌어낸 변화였다. 최승호 MBC 사장은 “동아투위 선배들이 없었다면 자유 언론 정신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고 저희 MBC 구성원들이 혹독한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동아투위와 자유언론실천재단을 중심으로 한 언론단체들은 지난해 7월 ‘KBS·MBC 정상화 시민행동’이라는 단체를 만들었고 매주 집회를 열며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KBS·MBC 현업 언론인들이 ‘적폐 인사’들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던 것이다. 이렇듯 동아투위 언론인들은 ‘언론 정상화’ 투쟁 최전선에 있었다.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은 “선배들이 너무 오랫동안 길거리에서 고생하고 계셔서 쉬게 해드려야 한다고만 생각했다”며 “그런데 함께 싸우는 ‘바로 옆 동지’로 계셨다. 이번 언론 자유 투쟁은 선배들과 어깨를 걸고 함께 싸웠기에 가능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MB 정부 때인 2008년 10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년 반 동안의 조사를 통해 “동아일보사는 비록 광고 탄압이라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야기된 경영상의 압박이 있었다 하더라도 동아일보사의 명예와 언론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해 왔던 자사의 언론인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정권의 요구대로 해임함으로써 유신 정권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하고 말았다”고 밝힌 바 있다.
종합하면 박정희 유신 정권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 탄압이라는 부당한 공권력 행사가 있었고 동아일보가 정권에 굴복해 언론인들을 대량 해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로 동아일보가 100여 명의 언론인을 강제 해직한 것은 ‘경영상 판단’으로 간주됐고 자연스레 국가 책임도 희미해진 것이다. 동아투위가 문재인 정부에서 청와대 청원을 찾은 까닭이다.
동아일보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동아투위는 동아일보 사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김상만은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 자유언론실천운동에 참여한 사원 113명을 강제 해직한 장본인이다. 김병관은 1980년 ‘서울의 봄’에 기겁을 했던지 동아투위에 은밀하게 대화의 손길을 뻗다가 전두환 신군부의 5·17 쿠데타로 독재가 재현되자 재빨리 몸을 사려버렸다. 김재호는 할아버지의 언론인 학살과 아버지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관해 동아투위를 향해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3월19일자 동아투위 결성 43주년 성명)
장남 김상만·장손 김병관·장증손 김재호(현 동아일보·채널A 사장)는 동아일보 창업주 김성수의 자손들로 4대째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다.
김 위원장도 기념식에서 “국민들이 성금을 모아서 한겨레를 창간했듯이 동아일보는 이제라도 폐간하고 우리는 폐간된 신문을 인수해서 민족·민주를 위한 언론으로 만들 것”이라며 “동아일보를 정말 ‘민중의 신문’으로 만드는 운동을 시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동아 사태’에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종만 위원은 청원을 통해 “이제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에선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며 “이 결정이 내려진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그 결정은 유효한 것이고, 비록 늦었더라도 정부는 반드시 그 결정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 아니라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이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취지에 비춰보면 동아일보 기자들이 1974년 10월24일 유신 독재에 맞서 저항의 정신으로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과 1975년 3월17일 결성한 동아투위 역시 ‘언론 민주화의 이정표’라는 평가다. 강성남 새언론포럼 회장은 “지난 10년 동안 바른 언론을 위한 투쟁은 자유언론실천선언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앞으로도 우리 언론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그때마다 동아투위 정신을 바탕에 두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종철 위원장은 “세계 언론 역사에서 해직된 113명의 언론인이 옥살이와 고문을 겪으면서, 또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도 금지 당하면서 43년 동안 권력에 맞서 싸운 일이 또 있을까”라며 “10·24 자유언론실천 선언이 언론과 민족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후배들이 다시 바로 서는 데 동인이 됐다면 그 공로를 흔쾌히 정부가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대표로서 10·24 선언과 동아투위 결성 등을 기념일로 지정해 국민들에게 그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