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eck 3d gpu
바로가기
왼쪽 메뉴로 이동
본문으로 이동

강남 유명 성형외과, 노동자 월급에 손댔다

[부당노동행위 연재기획 (04)] 도둑맞은 노동시간

2018년 04월 08일(일)
정윤영 르포작가 media@mediatoday.co.kr
공유하기

URL복사URL복사

URL 복사

아래의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AD FREE

미디어오늘이 기업체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각종 부당노동행위에 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번 연재는 ‘정의당 비상구’를 통해 진행된 노동 상담 사례를 정윤영 르포 작가(‘숨은 노동 찾기’ 공저자)가 당사자 인터뷰 등을 통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 뜨거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갑질’은 물론 임금체불 등 불법·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편집자주

제빵 기사 10년 만에 진짜 세상 만났다
내 딸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손님은 왕이다? 노동자 죄인 만드는 말

준비하던 사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쫄딱’ 망했다. 사기를 당했고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를 떠안았다. 집을 팔아야했고 50년 넘게 살아온 고향을 떠나야했다. 마음을 추스르는데 몇 달이 걸렸다. 딸은 서울에서 일하고, 아들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였다. 아이들을 따라 서울로 올라왔지만 ‘완전 무일푼’이 되어 집을 구하기 쉽지 않았다.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0만 원하는 집을 얻었다. 겨울에는 보일러도 들어오지 않았고, 아들은 휴학을 해야 했다. 박순영씨(가명)는 그렇게 ‘직싸게 고생’하며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아는 사람도 없고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무작정 동네를 돌아다녔다. 주방이모를 구한다는 전봇대 구인광고를 보고 곧장 가게로 들어갔다. ‘주방이모 솜씨가 좋다’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여기 저기 일손을 보태달라는 곳이 많았다. 김장 아르바이트부터 가리지 않고 들어오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어깨가 고장 나 일을 그만둬야 했다.

좀 쉬자 통증은 사라졌고, 빨리 일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바로 소개해달라고 했다. ‘오늘부터 일하라’는 말에 박순영씨는 면접이 끝나자마자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입사한 곳은 강남의 유명한 K 성형외과. 수술도구를 세척하고, 수술복과 수술포를 세탁하는 일을 했다. 오전 9시30분부터 6시까지 일하고 월 140만원을 받기로 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청소를 하고나면 ‘진이 다 빠진다’고 할 만큼 쉴 틈이 없었다. 점심시간은 30분. 식사를 마치면 주방 설거지를 했다. 직원이 많을 때는 100명, 적을 때는 50여 명이 식사한 설거지를 그녀 혼자 해야 했다.

▲ 직원이 많을 때는 100명, 적을 때는 50여 명이 식사한 설거지를 그녀 혼자 해야 했다. 사진=gettyimagesbank
▲ 직원이 많을 때는 100명, 적을 때는 50여 명이 식사한 설거지를 그녀 혼자 해야 했다. 사진=gettyimagesbank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고 공식적인 휴식시간은 없다. 수술포가 해지면 그걸 바느질하는 동안 의자에 앉을 수가 있는데, 그게 쉬는 시간이었다. 앉아서 수술포를 꿰매는 시간외에는 종일 서서 일했다.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힘든 것 없다고 대답했지만, 척추 협착증으로 2년 가까이 치료를 받아야할 만큼 허리를 자주 다친다. 무거운 세탁물을 들고 오르락내리락 한 탓이다. 빨래할 때 쓰는 독한 세제 때문에 손가락 지문도 모두 닳아서 없어졌다. 힘들지 않은 일은 없었다.

도둑맞은 노동시간

일한지 일 년쯤 지났을까, 병원 부장이 순영씨를 불렀다. 계약서를 바꾸자는 게 이유였다. 계약서에 쓰인 내용은 잘 보이지 않았다. 부장은 서명하는 곳을 짚어주면서 거기에 서명만 하면 된다고 했다. 그러고는 이제부터 정규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고 했다. 왜 비정규직이냐고 묻자, ‘그래도 된다’는 대답뿐이었다. 일 년 만에 그녀는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다.

바뀐 건 또 있었다. 소독과 세탁만 하던 걸 5층 청소에 주방 설거지까지 늘었다. 출근도 9시30분에서 7시로 바뀌고 주말 근무까지 생겼지만 월급은 140만 원 그대로였다. 노동 시간도 업무량도 늘었으니 보수가 더 있어야 되지 않겠냐고 박순영씨는 부장에게 또 물었다. ‘하기 싫으면 그만 두면 되잖아’ 하는 부장의 말에 그녀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일을 못 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일을 해야만 하는 순영씨가 언제나 아쉬운 입장이었다.

똑같이 10시간 일하는 동료는 160만 원을 받는다, 오전에만 건물을 청소하는 동료는 95만 원을 받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속상했지만 못 들은 척 흘려들었다. ‘5층 이모는 자꾸 따져서 찍혔다’는 말이 무서웠다. 140만 원으로 생계를 잇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저녁에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족한 생활비를 보탰다. ‘오래 일하면 올려주겠지’ 생각하며 3년을 넘게 일했다.

일은 계속 늘어나고 급여는 그대로, 이번엔 연차까지 없어졌다고 했다. ‘싫으면 나가라’는 말도 부장은 잊지 않고 덧붙였다. 박순영씨는 ‘좀 크게 항의’하고 싶어 사직서를 썼다. 사직서에는 그동안 부당하게 느꼈던 내용들을 빠짐없이 적었다. 사직서를 받아든 부장은 ‘이게 무슨 사직서냐’며 순영씨를 향해 내던졌다. ‘좀 크게 항의’하자 병원은 급여를 150만 원으로 올려줬다. 입사 5년만의 첫 인상이었다.

늘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정당가입으로 이어져

항의 끝에 처음으로 10만 원이 오르긴 했지만 그녀는 140만 원이 늘 의아했다. ‘아무리 계산해도’ 최저임금이 안 되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월급이 올라야하는데, 오르지가 않았다. 기본급이 오르면 식대가 없어지고 수당이 사라졌다. 병원에선 최저임금 넘는 금액이라고 했지만 순영씨는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때 한 정치인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며 정당에 가입한 계기를 밝혔다.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고 돈도 제대로 못 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죠. 그런데 심상정 의원이 하는 말이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노동자로서 당당하게 살아야한다고 말하잖아요. 심상정 의원한테 반해서 바로 입당했지요.(웃음) 우리는 노동에 관한 법을 모르잖아요. 당에 가입해서 꼬치꼬치 물어보고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눈 뜨고 코 베이는 세상, 몰라서 당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노동법을 알고 싶었다. 정당에서 하는 교육과 활동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걸 배웠고, 알면 알수록 더 많이 알고 싶었다. 일하고 살림하며 아르바이트까지, 여유는 없었지만 정당 활동을 열심히 한 덕에 모범당원으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 해 말, 박순영씨는 병원에서 해고됐다. 해고통지를 받기 며칠 전, 병원에서 순영씨와 동료를 불렀다. 회사에 ‘조사 나온다’며 부장은 계약서를 내밀고 서명을 요구했다. 회사가 어렵다는 말에 두말도 않고 서명했다. 그게 사직서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자신이 직접 서명한 계약서를 보여주며 이번 달까지만 일하라는 말에 순영씨는 ‘멘붕’이 왔다. 그녀는 정의당 비상구와 상담해보면 어떻겠냐는 지역위원장 권유에 곧바로 비상구 노무사에게 연락했다.

▲ 지난 해 말, 박순영씨는 병원에서 해고됐다. 사진=gettyimagesbank
▲ 지난 해 말, 박순영씨는 병원에서 해고됐다. 사진=gettyimagesbank
‘돈도 제대로 못 받는다’는 느낌은 사실이었다. 인식기에는 9시로 기록하지만, 실제 출근하는 시간은 7시, 매일 두 시간씩 더 일했다. 노무사는 노동시간 조작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했다. 식대가 사라지고 연차미사용수당이 사라진 건 포괄임금제를 악용한 임금체불이라는 것도 노무사 덕분에 알게 됐다. 3년간 체불된 임금만 1400만 원 이었다. 그녀가 병원에 새로 쓴 근로계약서와 취업 규칙을 달라고 하자, 부장은 ‘바빠 죽겠는데 어떻게 찾아주냐’고 하더니 나중엔 근로계약서와 취업규칙이 ‘국세청에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녀는 비상구 도움으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넣었고, 포괄임금의 문제점을 꼬집는 이야기가 언론에도 나갔다. 노동청에서 만난 부장이 ‘이모님, 꼭 그러셔야겠냐’고 따져 묻는 게 마음에 걸리고, 언론과 인터뷰를 한 뒤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서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비상구를 만나 여기까지 온 건 백 번 생각해도 잘 한 일이었다. 7년 가까이 일한 병원과 법적 다툼중이라는 사실이 속상하지만, ‘나이 많고 갈 곳 없는 엄마’라는 사실을 병원이 알고 그랬다는 생각을 하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7년 동안 매일 일하러 갈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한 번도 일하러 가기 싫은 적 없었고, 원장님, 부장님을 싫어한 적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가 여기까지 온 거는 돈으로 너무 야박하게 굴었어요. 체불된 것도 많고 섭섭한 거 많았죠. 해고할 때 위로금도 없냐 했더니 픽 웃으면서 비아냥거리더라고요. 조금이라도 우리 입장 생각해줬으면 여기까지 안 왔어요.”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박순영씨는 지금 노동청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그동안 일하는 시간도 강도도 월급 150만원은 적다고 늘 생각했다. ‘170만 원은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체불된 임금이 있고, 그걸 돌려받을 수 있다니 좋았다. 그보다 노동자를 도와주는 곳이 있고 노동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좋았다. 비상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가입하길 정말 잘했다’ 싶다. 그런 생각은 같이 해고된 동료도 마찬가지였다. 노동자 편에 선 정당이라면 믿을 만하다는 생각에 바로 정당에 가입했다. 동료 역시 더 이상 몰라서 당하고 싶지 않았고, 그러려면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순영씨가 해고되는 과정을 지켜본 이웃들은 정당에 관심을 갖고 당에 가입도 했다. 누구에게도 당에 가입하라고 권유한 적 없지만, 주변 사람들이 자기 얘기에 공감하는 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임금체불을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체불임금 받는다고 일이 끝난 게 아니라며 그녀는 소감을 밝혔다.

“몰랐던 걸 알게 되고, 나중엔 그걸 적용할 수 있고. 그게 좋아요. 몰랐으면 모르는 채 살아갔을 거잖아요. (노동법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차곡차곡 배워가고 있어요. 나이는 많지만 아직도 배울 것 많아요.”

박순영씨는 현재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70세까지 일 할 수 있다는 얘기에 시작한 일이다.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다며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그녀는 포부가 남달랐다. 계약서 내용을 묻지도 않고 서명을 하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다. 일하는 시간을 은근슬쩍 늘리자고 해도 그러겠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몰라서 당하는’ 노동자가 없도록 노동법 공부도, 정당 활동도 계속할 것이다. ‘당한다는 느낌’에도 꾹 참고 일한 7년, 그리고 해고까지 ‘멘붕’의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배움의 시간이었다. 예순이 넘은 나이의 순영씨에게도 노동은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걸, 노동법이야말로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라는 걸 그녀는 깨달았다. 노동이 당당한 삶을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진 요즘이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전체선택후 복사하여 주세요.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