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인생 드라마를 이처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전 세계사를 통해서도 드물다. 아버지에 이어 최초 부녀 대통령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수많은 최초 기록을 갈아치우며 ‘선거의 여왕’에서 마침내 이 땅에 최초 여성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헌정사 최초로 탄핵 당하는 대통령, 최초로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당한 대통령, 구속수사에 이어 1심 법원에서 그의 범죄혐의 18개 중16개가 유죄로 인정돼 24년의 중형과 벌금 180억 원이 선고되는 판결내용이 역시 최초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 4월6일 박근혜씨 1심 선거 연합뉴스TV 보도 갈무리.
▲ 4월6일 박근혜씨 1심 선거 연합뉴스TV 보도 갈무리.
중죄인이 된 대통령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이고 국가의 비극이다. 세월호 같은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대통령은 침실에 있어도 접근조차 하지못했던 대통령실장을 비롯한 수석참모, 장관들 이들이 얼마나 허수아비같은 거짓과 위선의 인물들이었는가를 판결문은 질타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남용과 뇌물수수 등 주요 혐의는 바로 참모들의 협조와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나는 몰랐다” “나는 이용당했다”는 식의 무책임한 행태, 반성하지 않는 행태에 대해 법원은 양형으로 단죄했다. 검찰수사에 협조하겠다고 했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지키지않았다. 사법절차를 모두 보이콧하며 법원을 부정했다.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는데 가장 큰 잘못의 원인은 참모가 아닌 본인에게 있다. 특히 본인의 고집과 거짓말은 지금까지의 잘못을 키웠고 스스로 범죄자로 전락시켰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식으로 지금까지 보여준 고집은 미래 자신을 더욱 옥죄는 족쇄로 작용할 것이다.

때로는 지도자의 고집이 필요하지만 대의명분이 없을 때는 비극이 된다. 더구나 그 고집이 거짓말과 결합되면 재앙으로 변할 확률은 높아진다. 언론의 견제를 무시하고 국민을 우습게 보면 그가 누구든 몰락하게 된다는 역사의 교훈을 다시 한번 목격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주범 비선실세 최순실이 2017년 5월2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주범 비선실세 최순실이 2017년 5월23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박 전 대통령의 592억 원대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한 첫 정식재판에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박 전 대통령은 ‘비선실세 최순실’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번 놓쳤다. 2014년 세계일보 특종으로 청와대 십상시 문건 파문이 터졌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찌라시에 나라가 흔들렸다”고 거짓말 했다. 문고리 3 인방을 중심으로 ‘비선실세’ 사실을 밝히자는 건의를 했지만 묵살당했다고 한다. 거꾸로 세계일보 보도에 대해 소송에 나서며 국세청을 동원, 세무조사 협박카드를 내밀었다.

권력의 힘은 거짓말을 덮는 유용한 무기였다. 다른 모든 언론사의 입을 막았고 그 후 진실은 수면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가던 2016년 9월 이번에는 한겨레가 특종을 했다. ‘대기업 돈 288억 걷은 케이(K)스포츠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센터장’이라는 보도를 통해 국정농단의 중심에 최순실씨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다. 이때도 청와대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일방적인 추측기사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라고 거짓말했다.

그러나 장기간 풍겨나온 구린 냄새를 모두 덮을 수는 없었다. 눈치빠른 언론은 취재경쟁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국정농단’ 보도는 막을 수가 없었다. 결정적 한 방은 방송사의 몫이었다.

이번에는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입수, 충격적인 내용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2016년 10월 최순실씨가 대통령 연설 전 연설문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찔끔사과, 대리사과’ 등 진정성없는 사과로 빈축을 샀던 박전대통령은 이때만큼은 진지한 모습으로 머리숙여 사과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신뢰와 원칙’의 정치인 이미지를 강조하던 그 입에서 또 다시 거짓말을 반복했다.

▲ 2016년 10월24일 JTBC 뉴스룸은 이 보도를 통해 최순실씨가 사용했다는 태블릿 PC와 태블릿 PC 안에 있는 청와대 관련 파일을 공개했다. 서잔=JTBC 뉴스룸 갈무리
▲ 2016년 10월24일 JTBC 뉴스룸은 이 보도를 통해 최순실씨가 사용했다는 태블릿 PC와 태블릿 PC 안에 있는 청와대 관련 파일을 공개했다. 서잔=JTBC 뉴스룸 갈무리
박 전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하지만 최씨는 2016년 4월경까지 비밀 문건 등을 받아본 것으로 드러났다. 이때도 박 전대통령은 거짓말로 일관했다. 법원은 청와대 문건유출을 유죄로 판결했다.

JTBC 등 언론은 국정농단 보도의 실체를 파헤치며 연일 놀라운 뉴스를 충격적으로 전했다. 청와대 참모들은 우왕좌왕 불통의 대통령 눈치나 살피며 전전긍긍하는 사이 국민적 분노는 촛불 시위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 이후 탄핵, 파면, 구속, 24년형 선고는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됐을 뿐이다. 지도자의 어리석음과 거짓말, 고집은 불법과 죄를 잉태했고 결과는 최순실과 공범으로 전락, 죄인이 된 것이다.

한때는 ‘친박’ ‘진박’ 운운하며 박 전 대통령에게 의존하던 자유한국당마저 무성의한 세 줄짜리 짧은 코멘트로 이제 박 전대통령과는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늘 재판부의 판결내용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재판 과정을 스포츠 중계하듯 생중계한 것은 매우 개탄스러운 일이다. 오늘 이 순간을 가장 간담서늘하게 봐야 할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 지난 2월2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격이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에게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과 벌금 1천185억 원을 구형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기간 연장을 결정한 재판부에 반발해 지난해 10월16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발언한 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 지난 2월2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농단 사건의 몸통 격이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씨에게 검찰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30년과 벌금 1천185억 원을 구형했다. 사진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기간 연장을 결정한 재판부에 반발해 지난해 10월16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 없다. 향후 재판은 재판부의 뜻에 맡기겠다”고 발언한 후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는 모습. ⓒ 연합뉴스
이 논평은 ‘박 전 대통령의 중형선고는 이미 예견됐다’고 할 정도로 범죄를 인정하고 있다. 대신에 생중계를 문제삼고 뜬금없이 70%대의 높은 국민지지율을 받고 있는 문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만큼 궁색한 입장을 대변하며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박 전 대통령이 앞으로 한국당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소심에 가더라도 24년형에서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거짓말과 고집은 실패의 근원이었다. 이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궁색한 ‘정치보복’ 프레임으로 자신을 속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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