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이 발표될 당시 카카오톡을 통해 다음과 같은 ‘찌라시’가 유포됐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의 헌법 개정초안이 나왔습니다. 2. 지방분권제(고려연방제) 토지소유권박탈 재산균등분배(공산주의체제)”

사례2. 노컷뉴스는 지난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응원단이 사용한 ‘미남형 가면’이 ‘김일성의 얼굴’이라고 보도했다. 이후 정치권에서 논란이 불거지자 노컷뉴스는 기자가 착각했다며 ‘오보’를 인정하고 해당 기사를 삭제했다.

사례3. 지난 미국 대선 기간 오바마 대통령이 알제리 출신 학생들의 학교 입학을 금지했다는 뉴스가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됐다. 이를 보도한 언론사는 미국의 방송사와 같은 이름인 ‘ABC’라는 제호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주소가 다른 가짜 사이트였다.

가짜뉴스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정치권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짜뉴스에 대응하는 신고센터를 만들고 법적 대응에 나섰고 여야 의원들은 관련 법안을 잇따라 발의했다. 그러나 가짜뉴스 처벌법들은 개념이 불분명한 점을 정리하지 못한 상황에서 실효성은 낮고 역효과만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 더불어민주당이 유포자를 고소한 카카오톡 등을 통해 유포된 '가짜뉴스' 내용. 한국에서는 언론사를 흉내낸 사이트가 아닌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가짜뉴스가 유포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 더불어민주당이 유포자를 고소한 카카오톡 등을 통해 유포된 '가짜뉴스' 내용. 한국에서는 언론사를 흉내낸 사이트가 아닌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가짜뉴스가 유포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앞서 언급한 3가지 사례 중 가짜뉴스는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사례3’만이 가짜뉴스다. 가짜뉴스는 실제 언론 보도가 아니지만 언론사처럼 위장해 꾸며낸 것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례3’은 찾기 힘들다. 대신 카카오톡 대화방과 폐쇄형SNS를 통해 확산되는 ‘사례1’의 경우가 많다. 미국과 한국 정치권에서는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지칭하면서 ‘사례2’를 비롯한 오보, 왜곡보도도 가짜뉴스라 불리고 있다.

가짜뉴스를 둘러싼 가장 큰 문제점은 ‘개념이 모호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가짜뉴스가 아닌 개념까지 포괄적으로 가짜뉴스라고 부르다 보니 ‘규제 사각지대’가 아님에도 ‘규제’를 요구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짜뉴스 처벌법 가운데 안호영·이은권·송희경 의원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언론보도가 아닌 ‘온라인상의 허위정보’를 가짜뉴스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블로그를 포함한 게시글이 명예훼손 소지가 있다면 ‘임시조치’ 제도를 통해 언제든 차단하고 삭제하는 과도한 규제가 있다. 선거기간에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후보자와 관련한 허위사실은 물론 비방 게시글까지 촘촘히 삭제 요청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법의 사각지대란 없다. 여야가 가짜뉴스 신고센터를 통해 허위사실 유포에 대해 고소하고, 언론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는 것은 별개의 법이 필요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사례1’의 경우 실제 더불어민주당이 이미 24명을 고소하기도 했다.

기존에 나온 가짜뉴스 처벌법들이 가장 극심한 가짜뉴스 형태인 ‘카카오톡 찌라시’를 잡지 못하는 점은 ‘입법 목적’과 ‘현실’의 괴리를 드러낸다. 정보통신망법은 개인 간 사적 대화인 카카오톡이 해당되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카카오톡에 유포되는 가짜뉴스를 사업자가 찾아내 처벌하도록 한다면 카카오가 개인의 대화를 들여다봐야 하는데 ‘사찰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터넷자율규제기구(KISO)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달 초 네이버와 카카오가 ‘언론사로 위장한 게시글’을 삭제한다는 내용을 담아 약관을 개정했는데 정작 ‘메신저 대화’를 포함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메신저 대화는 사적인 대화 성격이 강하고 URL이 없어 게시물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19대 총선 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한 MLB파크의 '나경원 자녀 대입 의혹'에 대한 댓글.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이미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조치는 과도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 19대 총선 기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삭제한 MLB파크의 '나경원 자녀 대입 의혹'에 대한 댓글. 허위사실 유포로 볼만한 내용이 없는데도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이미 인터넷 게시글에 대한 조치는 과도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누가 진짜와 가짜를 판단해야 할까

누가 진짜와 가짜를 판단할 것이냐도 중요한 문제다. 현재 발의된 가짜뉴스 관련 다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들은 포털 등 인터넷 사업자에게 ‘사실’여부를 판단해 삭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러나 논쟁적인 사안의 경우 진위를 가리는 건 매우 어려운 문제다.

정봉주 전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와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제기해 실형을 살아야 했다. 당시만 해도 검찰은 ‘다스의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책무를 다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는 이 같은 주장을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 조사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골든타임이 끝난 시점에도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순실 게이트 역시 JTBC가 태블릿PC를 공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당사자가 부인했다.

만약 일찌감치 가짜뉴스 처벌법이 제정돼 인터넷 사업자에게 ‘즉시 삭제’ 권한이 주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당시 정부가 공문서까지 조작했기 때문에 포털 입장에서는 ‘가짜뉴스’라고 판단해 관련 의혹을 모조리 삭제했을 가능성이 크다. 관련 의혹제기를 한 언론보도 역시 가짜뉴스로 규정됐을 것이다.

▲ 현재 발의된 가짜뉴스 처벌법이 일찌감치 도입됐다면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다스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 모두 가짜뉴스가 돼 삭제됐을 것이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디자인=이우림 기자.
▲ 현재 발의된 가짜뉴스 처벌법이 일찌감치 도입됐다면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다스 실소유주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 모두 가짜뉴스가 돼 삭제됐을 것이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디자인=이우림 기자.

지난 5일 발의된 박광온 의원의 법안은 포털에 무작정 권한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이나 재판 결과에 따라 가짜뉴스를 판단하도록 해 비교적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그러나 언론중재위원회나 재판을 통해 ‘정정보도’ 판결이 나면 언론사가 수용하기 때문에 포털에 이를 강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인 데다 잇따른 ‘재심’ 사건에서 보 듯 사법부가 반드시 옳지만은 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 가짜뉴스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근거로 쓰이는 ‘독일의 가짜뉴스 처벌법’ 역시 사실과 다르게 전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송시강 홍익대 법학과 교수의 사이버커뮤니케이션학회 토론회 발표에 따르면 독일 ‘네트워크 법집행 개선에 관한 법률’은 사례 1~3과 거리가 있다.

독일에서 삭제 대상으로 하는 건 ‘불법 콘텐츠’다. 불법콘텐츠는 한국과 달리 형법에 언급된 것으로 기본적으로 처벌 근거가 마련된 내용이다. 또한 사업자가 무조건 불법 콘텐츠를 삭제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율규제 기구’의 판단에 따를 것을 명시하고 있고, 콘텐츠의 불법성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받도록 요구하는 등 ‘신중한 방식’을 쓰고 있다.

▲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지목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 istock.
▲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지목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 istock.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가 가짜뉴스 ‘처벌’보다는 ‘자율규제 환경 조성’에 방점을 찍고 정책을 펴왔고, 최근에는 이마저도 신중하게 추진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다.

지난달 14일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한국여기자협회 간담회에서 “(방통위가 제시한) 팩트체크를 하는 민간 전문기구를 방통위가 지원하는 방식은 국가가 언론에 개입하는 것이 될 수 있어서 제가 그런 지원을 하지 말라고 했다”면서 “‘이게 진실이다 아니다’ 여부를 우리가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이효성 위원장은 팩트체크는 민간에 맡기고, 방통위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일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좋아하지 않는 모든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부른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영향으로 말레이시아와 인도에서 가짜뉴스 규제가 시행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는 가짜뉴스에 대한 정부차원의 규제 자체가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전제한다. 한국에서 가짜뉴스 처벌법이 통과된다면 한국 역시 ‘우려의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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