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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대가 4·3을 모르는 건 당연할지 모른다”

[미디어현장] 페북 조회수 108만 뷰, CBS ‘씨리얼’ ‘4·3이 제주에서 일어난 이유 깔끔 정리’ 기획제작 신혜림 PD

2018년 04월 12일(목)
신혜림 CBS ‘씨리얼’ PD mink@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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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3일, 많은 뉴미디어 매체들이 4·3사건을 정리하는 영상을 제작했다. 이중 CBS 씨리얼이 제작한 5분 남짓되는 영상은 찰흙을 이용하며 4·3 사건을 조목조목 설명해 관심을 끌었다. 사용한 찰흙은 ‘제주화산모래’로 만든 흙이다. 이 영상은 페이스북 조회수 108만 회, 유튜브 조회수 22만 회를 기록했다. 

영상을 기획제작한 신혜림 씨리얼 PD는 “제주도 출신이지만 나 역시 4·3사건을 잘몰랐다”며 영상 제작을 계기로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신혜림PD는 미디어오늘에 해당 영상을 제작하고 난 후 느낀 점을 글로 보내왔다.

 

클로즈업(Close Up, 확대)과 함께 탑 뷰(Top View, 위에서 찍기)를 자주 섞어 영상을 만드는 편이다. 무엇이든 멀리서 내려다봤을 때 맥락이 읽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4·3도 그랬다. 척박한 화산도에 지금이야 1시간이면 가지만 예전에는 한반도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던 섬이었다. 역사적으로 식민지나 다름없었고 수난이 극에 달한 일제 강점기에는 많은 주민이 일본 땅으로 도망치듯 떠났던 섬이었다. 제주를 내려다본 뒤에 4·3에 가까이 다가 가보면 개개인의 사연이 몇 배로 처참하다.

씨리얼에서 4·3 영상을 만든 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선생님들은 ‘필요한 영상을 만들어줘서’, 어느 유족은 ‘우리가 할 일을 해줘서’, 연구자는 ‘명확히 알려줘서’, 독자는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부끄러웠다. 이번 취재는 4·3에 대한 무지와 의심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4·3을 잘 몰랐다. 아주 가끔 누군가 4·3을 물어올 때마다 복잡한 사건이라며 얼버무렸던 기억이 기어코 발목을 잡았다.

▲ 씨리얼의 ‘제주 4·3 5분 요약 정리’ 영상은 페이스북 조회수 108만 회를 기록하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책을 찾아 읽고 제주 사투리로 가득한 증언 채록을 낑낑대며 해석했다. 최대한 본질에 접근하고 싶었다고 그간의 과정을 포장해볼 수는 있다. 하지만 결국,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했다. 공부하는 내내 인물과 단체를 접할 때마다 ‘좌-우’라는 틀에 얽매여 ‘균형’을 찾으려 애썼다. 자꾸만 어느 한쪽으로 규정하려 했다. 어쩌면 이 태도가 4·3이 우리에게 남긴 2차 피해가 아닐까. 수도 없는 피해 사례를 읽었지만, ‘좌-우’ 중 어느 하나로 간단히 규정될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제주에는 4·3 이후 암흑의 50년이 있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되었고, 2000년이 넘어서야 관련 보고서가 나와 이를 근거로 대통령이 처음 사과했다. 그 후로 10여 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4·3은 완전히 부정당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주목받지도 못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4·3 방명록에 ‘정부가 바뀌어도 4·3에 대한 평가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써놓았다. 당선 후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은 예산문제로 중단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 4월3일은 국가추념일로 지정됐고,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공약 중 몇 안 되는 지켜진 공약으로 남았다. 그러나 정작 국가원수에게 외면받는 국가추념일이었다.

이제 막 발굴된 현대사의 거대한 비극은 그렇게 땅속도 바깥도 아닌 어느 애매한 곳에 갇혀 있었다. 그 상황에서 4·3을 주목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 어느 콘텐츠 업계의 사정이든 비슷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과 체념 속에서 조용히 10년을 보냈을 것이다. 그 10년을 학창시절로 보낸 세대가 지금 20대다. 4·3을 모르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4·3이 다른 사건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ᅠ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수도권 중심주의’도 한몫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4·3의 역사를 설명하는 영상으로 기획을 시작한 이유다.

비극 이후 제주가 감내해야 했던 비정상적인 성비는 어떤가. 4·3 발생 이후 약 12년 뒤인 1960년, 제주의 30세 이상 남성은 3만8627명, 여성은 6만2660명이었다. 이념 갈등 때문에 많은 젊은 남성이 희생되고 나서, 여성의 인권 신장을 외쳤던 신여성의 목소리는 무색해졌다. 마을이 초토화되고 아들이 더욱 귀해진 세상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갔는지는 감히 가늠하기 힘들다.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ᅠ

▲ 씨리얼은 4·3 관련 영상 제작뿐 아니라 계속해서 4·3을 알리고 기록하기 위한 펀딩도 진행 중이다. 텀블벅 링크: https://www.tumblbug.com/creal_in_jeju
▲ 씨리얼은 4·3 관련 영상 제작뿐 아니라 계속해서 4·3을 알리고 기록하기 위한 펀딩도 진행 중이다. 텀블벅 링크: https://www.tumblbug.com/creal_in_jeju
▲ 신혜림 CBS ‘씨리얼’ PD
▲ 신혜림 CBS ‘씨리얼’ PD
4·3을 마주할수록 ‘헬조선’에 사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갈등이 겹쳐 보인다. 그래서 씨리얼의 4·3 기획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변해야 했을 때 변하지 못한 우리는 아직도 달라지려는 시도에 빨간색이 덧칠되는 것을 느낀다. 국회 의석수는 70년 전 형성되어버린 스펙트럼에 여전히 갇혀 있다. 지금을 사는 나는 70년 전 억울하게 죽은 원혼만큼이나 갖가지 이유로 촛불 든 우리가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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