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고용 노동부의 보고서 공개 결정에 대해 삼성은 행정심판과 소송까지 제기하며 이를 막으려 합니다. 수많은 언론들은 고용노동부를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보고서가 무엇인지 그동안 이 보고서와 관련하여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 필자 주


2012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소송을 심리하던 중 삼성전자에게 원고가 근무했던 사업장의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이하 ‘작업환경 보고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법원은 각기 다른 사건에서 삼성 혹은 고용노동부에게 같은 자료를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 보고서가 제대로 제출된 적은 없었다. 보고서의 주요 내용이 임의로 삭제·편집된 정체불명의 자료가 제출되거나 “사업장의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다”는 등의 이유로 아무런 자료도 제출되지 않았다.

2014년 10월 어느 직업병 피해가족은 고용노동부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그마저 거절되자 행정심판을 거쳐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다. 이 보고서가 정말 삼성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법적으로 다투어보자는 거였다. 2년에 걸친 소송에서 피해가족은 완승을 거뒀다. 대전고등법원은 2018년 2월 이 보고서가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근로자의 생명·건강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돼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판결했다.

고용노동부는 이 판결을 수용하기로 하며 “앞으로 작업환경 보고서를 적극적으로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전고등법원의 판결 취지에 비추어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 소식을 접한 직업병 피해자들은 일제히 재해노동자가 근무했던 사업장의 보고서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김모씨 유족은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 보고서를, 림프종으로 사망한 황모씨 유족은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보고서를 림프종에 걸려 투병중인 김모씨는 삼성 LCD 탕정공장 보고서를 각각 청구했다.

▲ 지난해 11월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반올림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지난 10년간 숨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11월20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삼성디지털시티 정문 앞에서 반올림 등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지난 10년간 숨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약속대로 보고서 공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삼성이 여기에 다시 제동을 걸었다. 보고서가 공개되면 삼성의 영업비밀이 침해된다며 고용노동부의 공개결정에 행정심판과 소송을 걸었다. 삼성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소송에서 그랬듯 이번에도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들을 대거 고용했다.

대체 이 보고서가 무엇이길래 이 난리일까. 산안법(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사업주는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에 대하여 작업환경측정을 한 후”, 그 결과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해야” 하고 “근로자에게도 알려야” 한다(동법 제42조). 여기서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이란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가 있는 작업장”을 뜻한다(동법 시행규칙 제93조 제1항). “작업환경측정 대상 유해인자”에는 발암성ㆍ생식독성 같은 인체유해성이 확인된 183종의 화학적 인자와 2종의 물리적 인자, 6종의 분진이 포함되어 있다(동법 시행규칙 별표 11의5).

요컨대 삼성 반도체 공장은 산안법이 말하는 “인체에 해로운 작업을 하는 작업장”이다. 따라서 삼성은 산안법이 특별히 유해하다고 판단한 190여종의 유해인자가 공장 내부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정기적으로 측정해야 하고, 그 결과가 기재된 보고서를 고용노동부에 제출해야 한다. 지금 그 보고서의 공개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보고서는 직업병 피해자들의 산재입증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다. 노동자가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으려면 ‘업무 중 유해인자에 상당 수준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산재보험법 시행령 제34조). 그런데 그러한 노출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얼마 없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운영되는 ‘가스 누출 감지 시스템’ 작동 기록이란 것도 있지만, 삼성은 관련 기록은 더욱 심하게 은폐해 왔다. “1년이 지나면 다 폐기해 버린다”고 주장했고 감독기관이 요청할 때도 제출하지 않았다. 그러니 직업병 피해가족들이 공장 내부의 유해물질 노출 상황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료가 이 ‘작업환경 보고서’다.

그렇다면 이 보고서를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정보들을 알 수 있는 걸까. 이를테면, 지난해 어느 직업병 사건에서 확보할 수 있었던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 ‘작업환경 보고서’가 있다. 역시 삼성의 영업비밀 주장에 따라 상당부분이 삭제된 보고서였지만 그로부터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삼성 반도체 화성공장은 총 57종의 유해 화학물질이 복합적으로 노출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공장에서 노출될 수 있는 물질 중에는 5종의 1급 발암물질을 포함한 16종의 발암물질이 있었고 2종의 1급 생식독성 물질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정보를 담고 있는 보고서이기에, 직업병 피해가족들은 소송까지 제기해가며 이 보고서의 공개를 요구해 왔던 것이고, 대전고등법원은 “근로자의 생명·건강과 직결된 정보로서 공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한 것이다. 지금까지 다른 반도체 사업장에서도 이 보고서의 공개여부가 문제된 적은 없었다. 산재소송 중에 법원의 제출요청이 떨어지면 다른 사업장들은 이의 없이 제출했다.

유독 삼성만 직업병 피해가족들의 산재소송에서, 그리고 고용노동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절차에서, 보고서 공개를 강하게 반대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피해자들이 보고서 공개를 요구하고 법원이 그 공개를 결정한 이유와 삼성이 보고서 공개에 반대하는 이유는 같을 것이다. 이 보고서가 반도체 사업장 내 유해물질 노출 상황을 알게 하고 노동자들의 직업병 발병 이유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1.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➀-
삼성전자가 직업병 피해 유족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합니다

2.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②-
삼성이 끝내 은폐하려는 이 보고서, 대체 무엇이길래

3. 삼성 ‘작업환경 보고서’ 이야기 ③-
삼성이 ‘영업비밀’이라 하자, 언론은 ‘30년 노하우’라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