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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떠오르지 않은 ‘세월호’의 진실

[김종철 칼럼]

2018년 04월 16일(월)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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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이래 23차에 걸쳐 1700만여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들 가운데 하나가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윤민석 작사·작곡)였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이 노래는 2014년 4월16일 오전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 참사를 소재로 한 것이지만 당시 대통령 박근혜와 ‘상왕’ 최순실이 저지른 국정농단의 실체를 반드시 밝혀 그들을 응징해야 한다는 결의의 표현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4주년이 되는 오늘(4월16일) 경기도 안산시와 전남 진도 팽목항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면서 다시는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행사들이 열렸다. 특히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미수습자 5명에 대해서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이 유해의 흔적이라도 찾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 세월호 참사 희생자 4주기인 4월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통곡하는 가운데 장례지도사들이 영정과 위패를 분향소에서 영결식장으로 이운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 세월호 참사 희생자 4주기인 4월16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통곡하는 가운데 장례지도사들이 영정과 위패를 분향소에서 영결식장으로 이운하고 있다. 사진=민중의소리
1945년 8·15 해방 이래 한반도에서는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제주 4·3 양민 학살 같은 참극이 벌어져 민족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세월호’는 그런 대량 살육과는 달리 정권이 신속하게 대응만 했다면 희생자를 거의 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국내외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수치스러운 사건이었다.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14개월도 채 되지 않은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당일 실질적으로 ‘무정부 상태’를 빚어냈다. 4월16일 오전 8시52분, 전남 진도군 관매도 남서쪽 해상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는 신고가 전남소방본부에 접수된 뒤, 해양경찰청과 해양수산부를 거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가 보고를 받고 가동하기 시작한 것은 9시45분께였다. 청와대는 박근혜가 10시에 첫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해왔지만, 최근 검찰은 그가 실제로 10시 19분에 보고를 받은 것을 비서실장 김기춘 등이 10시로 조작했다고 밝혔다. ‘구조의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은 시각에 보고를 받았음을 ‘입증’하기 위한 범죄행위였음이 분명하다. 박근혜가 그 뒤 관저의 침실 안에 머물다가 오후 2시 25분이 넘어 최순실 등과 ‘대책회의’를 열고나서 화장과 머리손질을 하고 오후 5시 15분에야 중대본에 나타났다는 사실은 세월호 유족은 물론이고 주권자들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 작태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권은 구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해경을 즉흥적으로 해체하는가 하면 침몰의 원인을 밝히려는 모든 시도를 철저히 차단하거나 방해했다. 국회가 제정한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2015년 1월 1일부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활동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예산은 그해 8월에야 배당되었다. 특조위는 겨우 11개월 동안 명목상의 조사만 했다. 박근혜 정권이 특조위 정원 115명을 85명으로 줄인데다 ‘어용 위원들’이 조사를 주도했기 때문에 참사의 진실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안개가 짙게 깔린 날 세월호가 왜 무리하게 인천항을 떠나 제주로 출발했는지,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는데도 선장을 포함한 선원들이 승객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한뒤 자기들만 탈출했는지, 언론과 야당이 제기한 ‘외부 압력에 의한 침몰설’의 진위 여부는 어떤지 등에 관해 1기 특조위는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을 뿐이다.

▲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5시15분에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한 박근혜씨. 사진=청와대
국회가 지난해 11월 24일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특별법)을 본회의에서 의결한 데 따라 지난 3월 29일 ‘가습기살균제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2기 특조위)가 출범했다. 특조위 위원장으로 선출된 장원익(변호사)은 “두 참사는 생명보다 돈을 중시한 자본의 탐욕으로 국민의 생명이 위험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성역 없는 조사로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안전사회를 건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가 침몰할 때 왜 승객들을 구조하지 못했는지, 콘트롤타워로서 청와대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철저히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2기 특조위는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특별검사(특검) 임명을 위한 의결을 국회에 요청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국정농단을 비롯한 공소사실로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은 박근혜를 법정에 세워 ‘직무유기’ 등에 관한 진실을 명백히 가려내는 과업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4주년을 맞은 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의 물결이 온 나라에 넘실거렸다. 희생자 유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은 그들의 혼이나마 영원한 안식에 들 수 있도록 ‘진실이 침몰하지 않고 떠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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