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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결식 찾은 ‘세월호 세대’의 약속 “내가 잊지 않을게”

[현장] 영결식 전 시민 천여 명 추모 행진, ‘희생자 또래’ 참가자 눈에 띄어… “아들 딸들아” 울음바다된 영결식

2018년 04월 16일(월)
손가영 기자 y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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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나이는 스물 두 살이다. 이들의 참사를 “나와 친구의 죽음”처럼 느꼈던 동세대들이 마지막 영결식 추모행진에 참여해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세월호 4주기를 맞은 16일 오후 1시, 시민 천 여명이 안산 정부합동분향소가 있는 4호선 고잔역에 모였다. 오후 3시 합동 분향소에서 열릴 ‘4·16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합동 영결·추도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산 시내를 걷는 “가만히 잊지 않게습니다” 추모 행진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10여 명씩 짝지어 줄을 선 채로 1시간 20분가량 추모 행진을 한 이들은 ‘기억교실’이 있는 안산교육지원청과 희생자의 모교 단원고등학교를 지나 화랑유원지 내 ‘416생명안전공원(세월호 추모공원)’이 설립될 부지에 접어들었다.

▲ 4월16일 오후 시민 천 여명이 안산 고잔역에 모여 1시간20분 가량 국민추모행진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4월16일 오후 시민 천 여명이 안산 고잔역에 모여 1시간20분 가량 국민추모행진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고교 1학년 때 세월호 참사를 본 김성민씨(21)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고 나왔다. 왜 교복을 입고 나왔냐는 말에 김씨는 “잊을 수 없는 참사”라며 “고등학교 때 세월호 추모 행사를 했던 기억이 함께 나 입고 싶었다”고 말했다.

학생회 활동을 했던 김씨는 학교 선생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추모 리본을 받아와 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행사를 열였다.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은 노란 리본에 하고 싶은 말을 새기고 묵념을 한 후 리본을 태워서 날렸다.

대전의 한 청소년 대안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는 이지성(가명·23)씨는 고등학생 8명을 데리고 나왔다. 이씨는 고3 때 본 세월호 참사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왜 이 일을 함께 아파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오늘 아침 9시30분 차를 타고 올라왔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나이의 유금문씨(23)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장인 그는 학교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추모 행진에 참가했다.

유씨는 “세월호 1주기에 처음 참가했는데 그때 경찰이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이후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2·3주기 행사도 다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전 정부의 해체를 보며 “‘하나는 해냈다’고 생각했다”며 “아직 국민들이 많이 잊진 않은 것 같다. 진상규명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 4월16일 오후 1시 시민 천여 명이 안산시 고잔역에 모여 1시간20분 가량 국민추모행진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 4월16일 오후 1시 시민 천여 명이 안산시 고잔역에 모여 1시간20분 가량 국민추모행진을 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시민들은 단원고등학교를 지날 때 가장 많은 눈물을 보였다. 시민들은 행진 시작 전 받은 국화꽃을 단원고 앞에 마련된 추모 자리에 두고 묵념을 했다. 사회를 본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는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곳이다. 국화 꽃을 놓고 저희 스탭들이 주는 노란 바람개비를 받아가달라”고 말한 후 목이 메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유가족, 하염없이 영정 보며 오열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오후 3시, 영결식장이 마련된 합동 분향소엔 오천 명이 훌쩍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장 내 오천석은 모두 채워졌고 식장은 좌석 양 옆과 뒤 편까지 서 있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영결식장은 304명 희생자들의 영정과 헌화를 올릴 추모대가 설치돼있었다. 무대 윗편엔 ‘기억하겠습니다’ ‘행동하겠습니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적혀 있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아픈 날은 4월16일”이라며 대표조사 낭독을 시작했다.

이 총리는 “학생들에겐 배 안에 있으라고 안내하곤, 자기는 속옷바람으로 탈출한 선장의 작태에 할 말을 잃는다”며 “학생들을 구하려다 희생되신 선생님과 승무원들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304명 희생자들께 죄인의 마음으로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어 “인생에서 가장 참담한 고통을 겪는 부모님들과 가족을 찾지 못해서 보내지도 못하는 미수습자 가족께서 쓰라린 세월을 힘겹게 견뎌 주셨다. 가족여러분께 마음의 위로를 드린다”면서 “그날 이후 생업을 미룬채 구조와 수습을 도우신 진도 어민들,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든 잠수부들, 진도·안산·목포·인천에서 무슨 일이든 도와준 자원봉사자들과 늘 기도해주신 종교인들, 전국에서 식재료와 생필품을 보내주신 기부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 추모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추모 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단원고 앞에서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이 총리는 “정부의 부능과 무책임이 국민들께 얼마나 큰 불행을 드리는지를 일깨웠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은폐하고 거짓을 주장하는 짓이 얼마나 잔인한 범죄인지 알게됐다”며 “이는 지난날을 탓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과제를 확인하기 위해 말씀드리는 것”이라 강조했다.

유가족 대표로 추도사를 읊은 ‘2-7반 찬호아빠’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저는 이 자리에서, 304명 희생자들 앞에서 완전한 명예회복의 시작을 맹세하고자 한다”며 “합동 영결 추도식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전 위원장은 이어 “앞으로의 길은 304명의 소중한 생명과 대한민국을 침몰시킨 자들에 맞서 침몰한 대한민국 인양하여, 모든 국민을 위한 명예회복의 길이 돼야 한다”면서 “완전한 명예회복과 철저한 진상 규명을 이뤄내는 것이야 말로, 희생자 명복을 비는 최고의 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 화랑공원 내 야외광장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에서 유가족들과 추도객들이 슬퍼하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 4월16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안산 화랑공원 내 야외광장에서 열린 4·16세월호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추도식에서 유가족들과 추도객들이 슬퍼하고 있다. 사진=김현정 PD
그리고 전 위원장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라고 운을 뗀 후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전 위원장은 “사랑하는… 아들‧딸들아… 지켜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구나. 진상규명과 안전건설에 대한 염원은 못난 부모들에게 맡기고 이제는 고통없는 그 곳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 구름이 되고 바람이 돼서 너희들이 꿈 꾼 곳에 가거라. 바람이 스칠 때, 그때 너희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할게… 사랑한다…”라고 추도사를 끝내며 눈물을 흘렸다.

편지를 읽은 ‘2-2반 남지현 학생’의 언니 남서현씨는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란 말은 다 거짓말 같아. 사고가 나고 정신과 박사님은 3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는데 전혀 아니잖아”라고 운을 뗐다 .

남씨는 “지현아, 언니가 약속할게. 화랑유원지에 생기게 될 추모 시설과 0.1%의 봉안 시설이 우리가 안전사회 나아가는 시작이 되게 꼭 만들거야”라며 “1%가 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지 나는 알아. 그래서 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남씨는 또한 “나에게 너무 사랑하는 세월호 형제‧자매들을 줘서 고마워. 그래서 언니는 여기서 잘 버티고 싸울 수 있었어”라며 “4년 동안 언니의 온 세상은 너였어.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라고 밝혔다.

영결식이 끝나기 전, 정부 대표 11명과 단원고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희생학생들의 유족들, 희생된 단원고 선생님 유족, 일반인 희생자 유족들은 차례로 단상에 올라 헌화했다.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곤 사회부총리, 김동연 경제부총리, 김영춘 해양수산부장관, 하승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 남경필 경기도지사,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제종길 안산시장,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문무일 검찰총장, 박경민 해양경찰청장 등 11인이 가장 먼저 헌화했다.

▲ 행진 사회를 본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 행진 사회를 본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단원고 유가족들이 단상에 오른 후 영결식장엔 오열 소리가 울려 퍼졌다. 1반의 한 아버지는 헌화대에 머리를 묻고 한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1반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는 영정 사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3반의 한 어머니는 가슴을 움켜 잡고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한 어머니는 부축을 받으며 내려와야 했다.

영결식은 오후 5시15분 경 종료됐다. 4년 간 운영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는 영결식 후 철거될 예정이다. 이후 화랑유원지엔 416생명안전공원이 들어선다. 완공일 등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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