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10일 대통령 신년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역대 최초로 질문할 기자를 직접 지명했다. 250여 명의 기자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뉴스1-중앙일보-ABC-디트뉴스24-TV조선-광남일보-전자신문-한겨레-머니투데이-BBC-워싱턴포스트-조선비즈-강원도민일보-대전일보-JTBC-SBS-울산매일신문 순으로 질문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처럼 질문자와 질문내용을 미리 정해놓는 식의 각본 따위는 사라졌다. 문재인정부 취임 1년, 언론계의 달라진 풍경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지난해 초 63위에서 올해 초 43위로 순위가 크게 올랐다. 한국이 미국(45위)보다 높은 언론자유 순위를 기록한 건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이후 11년 만이었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국정과제의 하나로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을 제시했다. 2020년까지 30위권으로 끌어올리는 걸 (정부)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언론을 통제하면 단기적으론 유리할 수 있지만 그 결과 더 많은 비리를 저지르게 되고 결국 적폐가 되기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 지난 1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모습. 사진=청와대
▲ 지난 1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모습. 사진=청와대
국경 없는 기자회는 “인권운동가이자 과거 정치범이었던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한국의 언론자유상황은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고 평가했다. 한 나라의 언론은 공영방송의 수준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MBC는 72일 파업, KBS는 143일 파업을 겪은 뒤에야 사장교체가 이뤄졌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정부의 여당 추천 이사가 사퇴하면 현 여당 추천 이사를 보궐로 임명하는 방식으로 방송문화진흥회와 KBS이사회의 다수를 확보한 뒤 MBC와 KBS사장을 해임시켰다. 현 정부의 지난 1년간 최대 변화는 공영방송 정상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언론계 역시 적폐청산 요구가 터져 나왔고 이는 공영방송 파업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김장겸 MBC사장과 고대영 KBS사장이 각각 최승호 MBC사장과 양승동 KBS사장으로 바뀌었다. 최 사장과 양 사장은 시사교양PD출신으로 지난 10년간 공정방송투쟁의 맨 앞에 있었던 상징적 인물이다. 이들은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정부비판을 이어갔던 언론인들로, 공영방송사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할 수장을 얻었다.

▲ 문재인 정부 이후 교체된 공영방송 사장들. 디자인=이우림 기자.
▲ 문재인 정부 이후 교체된 공영방송 사장들. 디자인=이우림 기자.
보수언론과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문재인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프레임을 꺼내들었지만 호소력은 자유한국당의 정당지지율로 수렴했다. MBC는 사장후보자 라이브 공개면접을 진행했고, KBS는 시민자문단을 통해 사장 선임 과정에서 시민들 평가가 반영되게 했다. 지금껏 정치권 밀실인사로 이뤄지던 공영방송 사장 임명 과정이 진일보한 것이다. 물론 여전히 여야 추천으로 공영방송 이사회를 구성하는 ‘구태’는 바뀌지 않은 상황이지만, “시민사회에 공영방송 사장임명권을 주자”는 언론운동진영의 주장에 여당이 공개적으로 동의해 전망이 나쁘지는 않다.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의 경우 박노황 사장에서 조성부 사장으로, 교육공공성을 담당하는 EBS는 우종범 사장에서 KBS 교양PD출신의 장해랑 사장으로 바뀌었다. 조준희 YTN 사장의 뒤를 이은 최남수 사장은 박근혜 정부시절 간부들을 품으며 시대정신에 맞지 않은 인사라는 사내 비판이 거세게 일었고 결국 최 사장은 언론노조 YTN지부의 84일 파업 이후 불신임투표로 회사를 떠났다. 이 과정에 청와대 개입은 없었다. 지난 1년간 ‘적폐’ 경영진을 몰아낸 건 언론사 내부의 언론노동자들이었다.

▲ 지난 2월2일 김의겸 청와대 신임 대변인이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평창올림픽 기간 정상회담 일정 등에 대해 첫 브리핑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월2일 김의겸 청와대 신임 대변인이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평창올림픽 기간 정상회담 일정 등에 대해 첫 브리핑을 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 정부 미디어정책을 총괄하는 각료로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과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뽑혔고, 청와대 대변인으로는 현재 김의겸 전 한겨레 기자가 활약하고 있다. 2016년 9월20일자 한겨레 1면에서 최순실이란 이름을 최초로 꺼내들며 박근혜 국정농단을 이끌었던 김의겸 기자가 현 청와대 대변인이란 사실은 현 정부의 성격과 지향점을 드러낸다. 도종환 장관은 신문분야 정책에 큰 관심이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ABC협회장 인사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해 이명박 대통령후보 특보 출신이 여전히 협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교수 출신의 이효성 위원장은 아직 방통위를 장악하지 못했다는 우려 섞인 평가도 나온다. 일례로 종편 미디어렙 최초 승인 당시 주주 관련 법 위반 사안을 2014년과 2017년 놓친 채 재승인한 사실이 알려져 올해 초 방통위 제재가 이뤄졌지만 솜방망이 제재인데다가 재승인 과정에 가담했던 담당자 처벌은 물론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심의제재가 종편 재승인 심사에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에도 방통위는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파업 국면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대응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올해 초 이완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교체국면에선 불협화음을 낳기도 했다.

▲ 왼쪽부터 고삼석, 김석진 방통위 상임위원, 이효성 방통위원장, 허욱, 표철수 상임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 왼쪽부터 고삼석, 김석진 방통위 상임위원, 이효성 방통위원장, 허욱, 표철수 상임위원. 사진=이치열 기자
반면 오랜 ‘휴업’ 끝에 올해 2월부터 재개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강상현 위원장과 민경중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적폐청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장기공백으로 민원이 쌓이면서 누적된 심의안건을 처리하는데 많은 시간을 써야했지만 그 와중에도 청부심의논란과 관련해 관련 담당자를 해고하고 진상조사위를 가동시키는 모습으로 가시적 성과를 보였다. 심의도 전과 달리 전원합의로 의결되는 비중이 높아져 긍정적이다. 현 방심위가 광고소위를 중심으로 홈쇼핑 프로그램에 대한 과징금 처분을 많이 내면서 소비자를 기만한 프로그램의 제재수위를 높이고 있는 점도 긍정적이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문재인 정부는 언론에 직접 통제하지 않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언론정상화의 환경기반을 조성했다”고 1년을 평가한 뒤 “4기 방심위 들어 그간 문제로 제기돼온 정치심의, 표적심의 등 운영상 문제점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방통위에 대해선 “줄곧 적폐청산을 위해 방통위 내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주장했지만 4기 방통위는 적폐청산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인수위가 생략되는 정부 출범을 거치면서 미디어 정부조직 개편이 미뤄졌고, 2차 정부조직개편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공공성에 입각한 미디어 환경 전환 추진을 위해 미디어 정부부처 통합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년간 문재인정부와 직접 갈등을 겪은 언론사는 TV조선이다. TV조선 기자가 ‘드루킹’ 논란 당시 절도혐의를 받으며 경찰이 TV조선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갈등이 불거졌다. 당시 한국기자협회는 “현 정부에 결코 유리하지 않은 언론의 드루킹 사건 관련 보도를 위축시키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며 현 정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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