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이 남북고위급 회담 당일인 16일 새벽 12시 30분께 리선권 단장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회담을 취소했다. 한미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발생한 첫 갈등으로 해석될 수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회담 취소 이유는 북한의 이날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찾을 수 있다. 북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11일부터 남조선 당국은 미국과 함께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에 대한 공중선제타격과 제공권장악을 목적으로 대규모의 2018 맥스 썬더 연합공중전투훈련을 벌여놓고 있다”며 “이번 훈련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며 좋게 발전하는 조선반도 정세 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북과 남은 이번 판문점선언에서 조선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나갈데 대하여 합의하였으며 이를 미국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며 “남조선당국과 미국은 4·27선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대규모의 연합공중훈련을 벌려놓음으로써 우리가 보여준 평화애호적인 모든 노력과 선의에 무례무도한 도발로 대답해나섰으며 선언리행을 바라는 온 겨레와 국제사회에 커다란 우려와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고 밝혔다.

조선중앙통신은 “우리는 남조선에서 무분별한 북침전쟁 소동과 대결난동이 벌어지는 험악한 정세하에서 16일로 예견된 북남고위급회담을 중지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며 “미국도 남조선당국과 함께 벌리고 있는 도발적인 군사적 소동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수뇌상봉(북미정상회담)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개최될 북미정상회담까지 거론한 것을 봤을 때 이번 사안을 해결하라는 강력한 경고로 풀이된다.

북은 고위급 회담을 전격 취소한 이유로 한미공군연합훈련 때문이라고 명시했는데 특히 이번 훈련에 처음 참가한 스텔스 전투기에 반감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스텔스 전투기인 F-22 랩터 8대를 이번 훈련에 처음 참가시켰다.

스텔스 전투기는 레이더에 걸리지 않고 적진에 들어가 작전을 수행하는 비행체로 공격 징후가 발견되면 은밀히 침투해 타격하는 능력을 갖췄다. 북 입장에선 정례적인 군사훈련이라고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이후 군사훈련에서 자신을 타격 대상으로 삼는 강력한 무기가 한반도에서 훈련을 전개하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6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F-22 전폭기가 8대나 뜨고 B-52 장거리 폭격기가 뜨면 북한은 놀란다”며 “방어라고 하지만 방어에서 공격으로 바뀌는 것은 순간이지, 머리카락 하나 차이지 무슨 훈련이라고 다 저쪽에서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또한 “이렇게 대대적인 위협적인 무기가 동원되는 경우에 국방부가 미 국방부와 얘기를 했었어야죠. ‘이것은 곤란하다’, ‘지금 북미정상회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북한 반응은 충분히 예상되는 바이니까 이것 좀 줄이자고 얘기를 했었어야 되는데 안 했고 청와대도 방심하고 있었던 같다”고 진단했다.

북이 회담을 취소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태영호 전 주영공사도 거론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름을 특정하지 않았지만 “남조선 당국이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 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 선언을 비방 중상하는 놀음도 버젓이 감행하게 방치해놓고 있다”고 했다.

태영호 전 주영공사는 자신이 쓴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 증언’이라는 책 출판기념회를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었다. 태 전 공사는 책에서 3층 서기실에 대해 “김정일 김정은 부자를 신격화하고 세습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라며 “북한이 개혁개방으로 나가 주민들이 김씨 부자의 실체를 알게 되면 3층 서기실은 와해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지난 5월14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 북한전문가 초청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5월14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북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 북한전문가 초청강연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 대남 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수차례 태영호 전 공사에 대한 비난을 한 적이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지난해 4월에는 “남조선 보수패당은 인간쓰레기 태영호를 저들의 장단에 춤추는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있다”고 했고 2016년 12월에는 “국가비밀을 팔아먹고 미성년자 강간범죄까지 감행한 후에 그에 대한 법적 처벌이 두려워 도주한 특급 범죄자”라고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만 보면 회담 취소 이유의 키워드는 ‘스텔스’와 ‘태영호’인 셈이다.

정부 당국은 북측의 회담 취소 배경을 파악하고 향후 북미정상회담에 끼칠 영향 등을 분석하고 있다. 통일부는 일방으로 회담을 연기한 것은 판문점 선언의 정신에 부합하지 않다고 유감을 표명하면서 “북측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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