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를 놓고 언론사들 사이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북한은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며 폐기 폭파 현장에 한국을 포함한 5개국 취재진을 초청했다. 북은 15일 통일부 앞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명의의 통지문을 보내 남측 1개 통신사와 1개 방송사의 기자를 각각 4명씩 초청했다. 모두 8명의 기자가 북 초청 대상인데 어느 매체 소속의 기자가 현장 취재를 맡을지를 두고 입장이 충돌하면서 갈등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와 관련한 주무부처가 외교부라서 외교부 출입 기자단에서 자율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 취재진을 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16일 오전 외교부 출입 기자단은 취재진 선정 논의에 들어갔다. 방송사 선정은 일찌감치 이뤄졌다. 외교부 출입기자 간사단은 지상파 방송사와 종합편성채널 방송사 12개사를 놓고 일명 ‘제비뽑기’로 현장 취재 매체를 정했다. 추첨결과 MBC가 선정됐다.

지난 2008년 북한은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면서 당시 5개국의 언론사를 초청했는데 북한은 남측 취재진으로 MBC를 지목했다. 핵시설 폭파 현장을 취재하는 기회가 우연치 않게 두번 연속 MBC에 돌아갔다. 

문제는 통신사 취재기자 선정에서 벌어졌다. 연합뉴스는 선정 논의에 들어가기 전 자사가 취재를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는 북한이 통신사에서 4명의 취재단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한 것에 “이는 풀 취재가 아닌 개별 취재 방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북한은 현재 남한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언론사도 개별 접촉을 취하고 있다”며 “따라서 북한이 요청한 취지에 어긋나는 풀 취재는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비핵화의 첫걸음을 취재해 포탈에 싣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국내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 우리의 시각으로 한반도의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서도 연합뉴스가 이번 취재를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는 “오랜 북한 취재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미 조선중앙통신 뿐 아니라 노동신문과 공식적인 전재계약을 체결하고 국내 각 언론사에 기사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뿐만 아니라 북한 취재 경험이 많은 전문기자를 보유하고 있어 이번 행사를 정확히 취재해 국내 언론사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방송사 취재는 공평하게 추첨으로 선정했는데, 연합뉴스가 통신사 몫의 취재는 자사가 전담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풀(pool) 취재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가 풀 취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외교부 출입기자들은 풀 취재를 하지 않을 거면 연합뉴스가 왜 가야 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제한된 인원만 가는 취재 현장에서 팩트를 공유하도록 정리하는 것을 풀 취재라고 한다. 연합뉴스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현장에서 풀 취재를 하면 외신보다 속보 경쟁에서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이 뉴스를 늦게 접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주장하고 있다.

▲ 지난 2006년 10월 미국의 군사전문지 '글로벌 시큐리티'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1차 핵실험 가능 지역으로 주목했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주변을 촬영한 지오아이 위성사진.
▲ 지난 2006년 10월 미국의 군사전문지 '글로벌 시큐리티'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북한의 1차 핵실험 가능 지역으로 주목했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주변을 촬영한 지오아이 위성사진.

반대로 외교부 출입 기자단은 연합뉴스 기자가 가더라도 풀 취재 내용을 공유하지 않으면 형평성이 어긋나기 때문에 연합뉴스의 현장 취재를 반대하고 있다.

외교부 한 기자는 “연합뉴스 주장대로 풀 취재를 하지 않을 거면 그냥 방북허가를 받아서 개별로 취재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풍계리 취재 현장은 연합뉴스만의 취재 현장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국엔 연합뉴스 말고도 통신사가 있다. 다른 통신사들도 연합뉴스 주장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남문현 뉴시스 편집국장은 “뉴시스도 통신사로 당연히 북한 취재에 포함돼야 한다”며 “국내 대표적 통신사로서 그럴 자격과 권리가 충분히 있다. 연합뉴스 측 주장은 언론계 현실을 도외시한 주장이고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뉴시스 한 기자는 “연합뉴스가 간다고 치더라도 풀 취재를 하지 않겠다는 건 일종의 갑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외교부 공보실은 “취재 매체 선정 부분은 기본적으로 출입기자단이 결정할 문제”라며 “방송사 선정 매체는 통보받았지만 통신사 취재는 통보받지 못했다. 계속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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