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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역사, 고정관념 깨기

[미디어오늘 1152호 사설]

2018년 06월 02일(토)
미디어오늘 media@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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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의 군주 페르디난도는 1688년 베네치아에서 카니발 음악에 반해 33살의 악기 기술자 크리스토포리를 피렌체로 데려왔다. 처음 그가 만든 피아노는 ‘운 침발로 디 시프레소 디 피아노 에 포르테’라는 긴 이름이었다. 직역하면 ‘크고 작은 소리를 내는 삼나무 건반’쯤이다. 1700년 피아노는 이렇게 우연히 태어났다. 피아노가 음악에 끼친 영향은 인쇄술이 문명에 미친 영향만큼 크다. 300년 동안 피아노는 숱한 오해와 편견에 시달렸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어린 모차르트가 피아노를 미친 듯이 치는 장면은 모두 허구다. 모차르트는 다 큰 스무 살쯤 뮌헨에서 피아노를 처음 봤다. 모차르트가 연주한 피아노는 지금 피아노와 엄청 달랐다. 당시엔 양손과 두발로 건반을 짚었다.

피아노 연주회를 숨죽이며 듣는 건 최근에 생겼다. 모차르트는 판돈이 오가고 게걸스레 먹어대는 청중의 야유와 고함, 언쟁이 벌어지는 도박장이나 레스토랑에서 신곡을 발표했다. 피아노왕 리스트도 불꽃놀이와 줄 타는 댄서들 사이에서 연주했다.

▲ 영화 ‘아마데우스’ 한 장면
▲ 영화 ‘아마데우스’ 한 장면
체코의 국민음악가 드보르작은 1893년 “미국 음악의 장래는 ‘흑인’에게 있다”고 했다. 드보르작의 예언대로 피아노는 미국에서 민중음악인 재즈를 만나 전성기를 맞았다. 재즈 피아노의 독특한 연주법은 뉴올리언스의 악명 높은 사창가 스토리빌의 왁자지껄한 술집에 놓인 관리상태 엉망인 피아노에서 나왔다. 그 피아노는 같은 리듬을 꼭 두세 번씩 쳐야 제대로 소리가 났다. 재즈 피아노가 북미를 휩쓸 때 남미에선 탱고가 쿠바와 아르헨티나 카페를 휩쓸고 뉴욕에 상륙했다.

피아노는 재즈, 블루스, 라틴 리듬을 결합해 로큰롤을 낳았다. 미국 주류 언론은 흑인 음악에 뿌리를 둔 로큰롤을 혐오했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 ‘로큰롤은 전염병’이라고 썼고, 타임지는 젊은 록 추종자를 ‘히틀러의 대중집회’에 비유했다. 미 해군은 록 금지령을 내렸다. 인종적 편견도 다분했다. 그러나 록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6년 “내 음악은 오랜 세월 노래하고 연주해온 흑인들에게 물려받았다”고 고백했다.

피아노는 혈기 왕성한 건반 귀신들이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려고 격전을 벌이는 할렘가 ‘집세 마련 파티’의 중심 악기였고, 골드러시를 따라온 광부들 가슴을 어루만졌고, 허리가 휘는 시베리아 농부들을 위로했다.

우리는 피아노 하면 쇼팽만 떠올린다. 고고한 쇼팽과 엉덩이 흔들어대며 피아노를 두들기는 흑인 연주자 오스카 피터슨은 쉽게 조합되지 않는다. 쇼팽은 첫 번째 피아노 마왕이었고, 2대 마왕은 리스트다. 리스트는 3대 마왕 스테판 토만을 가르쳤고, 토만은 4대 마왕 폴 드 마키를 길렀다. 피터슨은 4대 마왕 마키에게 쇼팽을 배웠다.

▲ 오스카 피터슨 (Oscar Peterson)
▲ 오스카 피터슨 (Oscar Peterson)
피터슨은 1993년 뇌졸증으로 쓰러져 몸 왼쪽이 굳었다. 2006년 휠체어를 탄 피터슨이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오랜 병마에도 81살 마왕은 건반이 사정권에 들어오자 오른손을 던져 건반을 장악했다. 불규칙한 바운스와 엇박자를 자랑하는 부기우기는 뉴올리언스와 멤피스, 뉴욕, 세인트루이스 빈민가에서 태어나 피터슨과 함께 자랐다. 피터슨은 2006년 뉴욕 공연 이듬해 숨졌지만 그의 70년 연주는 피아노를 원래 있던 서민의 품에 돌려놨다. 피아노가 있어야 할 자리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이 아니라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엔딩신처럼 여수 밤바다가 보이는 허름한 나이트클럽이다.

북한 비핵화 보도를 봐도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난다. ‘응석받이’, ‘철부지’ 같은 정파보도는 기본이다. 전문가 전망을 담은 분석기사는 ‘삼성이 북한에 들어가기만 하면’, ‘北, 삼성 뒷마당 가능’을 넘어서지 못한다. 편견에 빠진 굳은 머리로는 한반도의 미래를 열 수 없다. 더욱이 스스로 만든 편견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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