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신문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편집국내 여성 비율은 42.8%로 나타났지만 임원 비율은 3%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여성 편집국장이라도 등장하면 그 자체로 언론계에 기사거리가 되는 게 현실이다.

6월 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에스토릴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뉴스에서의 여성(WOMEN IN NEWS)’ 세션에선 이 같은 ‘유리천장’이 세계적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미투’ 국면을 거치면서 뉴스룸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등장했다. 이날 세션에선 젠더 이슈를 강화하고 뉴스룸 내 성 평등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주목을 받았다.

세계신문협회(WAN-IFRA) 미디어 개발 이사이자 ‘뉴스 인 우먼(News in Women)’ 대표인 멜라니 워커는 “지난 1년간 미디어 업계의 성 평등에 있어서 논의가 증가했지만 여전히 여성의 미디어 업계 경영진 진출이 부족하다. 세계 100대 미디어 기업 중 여성임원비율은 17%에 불과하다”며 “2020년에 ‘Women in News’ 보고서가 발간될 때는 상황이 변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 게티이미지.
▲ 게티이미지.
2018년도 ‘Women in News’ 보고서에 따르면 미디어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저널리스트의 48%가 자신의 회사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성희롱을 당한 이들 가운데 83%는 해당 사건을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성희롱은 성이 아닌 권력 문제”라고 강조하며 직장 내 성희롱 대처 가이드를 설명하고 있다. (관련 사이트 www.womeninnews.org)

NBC와 CNN 등에서 활동하고 현재는 글로벌 PR커뮤니케이션회사 웨버 샌드윅 편집인을 맡고 있는 비비안 쉴러는 “미투 운동으로 1년 만에 미디어업계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이제 미디어업계는 뉴스조직을 변화시켜 고용 및 승진체계를 평등하게 바꾸고 보도 및 뉴스 표현 방식에서도 성 평등 달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USA투데이 전 편집장 출신으로 현재는 작가로 활동 중인 조안 리프먼은 “미디어업계에서 여성의 역할이야말로 우리사회를 투영하는 창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과거 한 언론사에서 채용을 진행하며 순전히 능력을 위주로 보았는데 합격한 3분의 2가 여성이었다”고 밝힌 뒤 “여성이 많아야 조직이 성공한다. 모든 연구결과를 보면 양성평등이 실현된 그룹은 더 적은 문제를 겪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6월 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에스토릴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뉴스에서의 여성(WOMEN IN NEWS)’ 세션이 진행중인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6월 6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에스토릴에서 열린 WEF(WORLD EDITORS FORUM)포럼 중 ‘뉴스에서의 여성(WOMEN IN NEWS)’ 세션이 진행중인 모습. 사진=정철운 기자
이날 세션에 모인 참석자들은 뉴스룸의 다양성이란 우연히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으며 뉴스룸 내 남녀평등을 위해 채용 과정에서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리프먼은 “언론관련 학과 졸업생의 3분의 2가 여성임에도 실제 언론사 취업은 17%뿐이다. 임원은 더 적다. 이로 인해 75%의 1면 기사가 남성 기자들의 취재결과물”이라고 주장한 뒤 “누가 1면을 결정하는지 해당 프로세스를 측정해 개선해야 하며 동시에 채용과 승진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자의 구조개선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라쥬 나리세티 컬럼비아 대학교 비즈니스 저널리즘 교수(전 기즈모도 CEO)는 “2028년이면 미국 청년의 다수가 백인이 아니다. 다양성은 10년 내 더 중요해 질 것”이라고 설명한 뒤 “내가 CEO 재직 중에는 백인 남성 위주의 최종 면접 인원 구성을 피하도록 노력한 바 있다”며 채용에 있어서 “최고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채용하는 직원의 다양성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채용을 유지하고 이들을 승진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우간다 매체 ‘뉴 비전’의 편집장 바바라 카이자는 “다양한 뉴스룸에서 여성 기자들을 추적해 봤더니 긴 업무식간과 자녀 양육 간의 충돌로 퇴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가 아프면 어떻게 여성이 장시간 근무할 수 있나. 유연근무가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명한 뒤 “육아를 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뉴스룸에 남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가 앞으로 뉴스룸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덴마크 매체 ‘JP/Politikens Hus’의 수석부사장 도르시 베레가드-크누센은 “2008년부터 CEO가 성 평등 정책을 추진해왔다. 여성의 대표성이 모든 수준에서 개선되도록 목표를 세웠으며 설문조사 통해 가능성과 장애를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적극적으로 뉴스룸 내부에서 여성 멘티와 멘토를 연결해 그들의 잠재성을 개발하고 롤 모델 역할을 세웠다”고 전한 뒤 “리더십의 40%가 여성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변화의 출발점이 부모가 육아휴직을 동등하게 공유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BBC ‘50대50’ 프로젝트, 미국 뉴욕타임스 ‘젠더 이니셔티브’ 주목

“설령 뉴스룸 내 성비가 50대50이어도 남성이 중심이고 여성이 들러리면 아무 의미 없다”

▲ 영국 BBC ‘50대50’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BBC 모바일 화면 갈무리.
▲ 영국 BBC ‘50대50’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BBC 모바일 화면 갈무리.
이날 세션에선 뉴스룸 내 성 평등을 위한 여러 사례들이 소개 됐다. 그 중 영국 BBC ‘아웃사이드 소스’ 제작자 겸 진행자인 로스 앳킨스가 소개한 ‘50:50’ 프로젝트가 관심을 끌었다. 그는 “바이라인, 사진, 디지털 동영상 주인공 등 새로운 것을 다 측정했다. 일간 성비를 확인할 수 있는 대시보드도 운영했다. 그 결과 메인 페이지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35%에서 50%로 시행 2개월 만에 증가했다. 오늘 아침에도 BBC 주요 뉴스 프로그램 두 개에서 50:50이 달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50대50을 위한 데이터의 시각화가 변화의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힌 뒤 “50대50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새롭게 런칭한 ‘젠더 이니셔티브’(Gender Initiatives)는 2년간의 노력 끝에 최근 자리를 잡았다. 프란체스카 도너 뉴욕타임스 젠더 이니셔티브 이사에 따르면 이들은 △내용 측면에서 성 평등을 추구하고 △여성독자의 참여를 늘리는 한편 △뉴스룸에서 여성의 참여를 확대한다는 세 가지 큰 목표를 갖고 있다. 여성독자 증가를 위해 뉴욕타임스는 라이프 스타일·육아·건강 등 여성독자가 즐겨 찾는 콘텐츠를 늘렸다.

프란체스카는 “젠더는 세계적인 관심사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 당선으로 모든 여성 운동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며 최근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전망하면서도 “설령 뉴스룸 내 성비가 50대50이어도 남성이 중심이고 여성이 들러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뉴스룸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했다. 영국 ‘위키트리뷴’의 공동 창업자 겸 부사장인 오릿 코펠은 “위키피디아에는 플랫폼의 성격상 남성이 더 많이 참여하고 편집하지만 위키트리뷴에서는 여성의 참여를 더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젠더이슈를 강화하기 위해 ‘Overlooked(간과되었던)’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포토에세이 형식으로 유방 제거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등 스토리텔링에 집중했다. 프란체스카는 “여성에게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사람 중심의 내러티브가 중요하다. 과거 권위적인 스토리텔링과는 상반된 형식”이라고 설명한 뒤 “우리에게 중요한 관심사는 취재원의 다양성”이라며 여성 취재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블룸버그통신은 최근까지 데이터베이스에 여성전문가 취재원을 2000여명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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