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무슨 원칙이나 주의가 아니라 국민 삶을 개선하고 일자리를 늘다는 실사구시 정신이다.”

언론에 보도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나는 그 ‘관계자’가 누구인지 모른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특정 개인보다 청와대의 전반적 기조가 중요해서다. ‘실사구시’가 정부의 사회경제 정책이 과거의 틀을 벗어나기는커녕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나 행정적 탄압을 받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모르쇠를 놓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한 발언이라면, 분명히 경고한다. 문재인 정부의 미래는 어둡다.

물론, 문재인 정부에 적극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촉구하는 지식인 300여 명의 공동선언을 놓고 송호근 서울대 교수처럼 “현실을 무시한 고루한 선비들”이라며 자신이 미쳐버릴 정도라고 깐죽대는 윤똑똑이도 있다. 재벌신문에 오래 기고해온 송호근은 제 멋에 겨운 그 칼럼에서도 “재벌 개혁?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근절과 거버넌스 개조는 환영할 일인데, 온갖 규제로 목을 옥죄면 미래 대응적 투자가 가능할까?”라고 주장했다. 저야말로 ‘사민주의’를 아는 대가인 듯 우쭐대지만 결국 재벌 두남두기의 ‘교언영색 대가’일 따름이다. 딴은 삼성의 ‘장충기 문자’ 명단에도 오른 그를 청와대 비서실은 올해 초 ‘공부’를 하겠다며 초청해 ‘강의’도 들었다.

명토박아둔다. 그나마 300여 명의 지식인들이 적극적인 사회경제 정책을 촉구한 내용은 청와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무슨 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무릇 ‘실사구시’라는 말은 목표가 확고할 때 쓰는 말이다. 문제의 핵심은 지금 문재인 정부의 목표가 흔들린다는데 있다. 복지정책의 획기적 확대나 노사 사이의 힘의 균형에 문제의식이 절절해 보이지 않는다. 정책 목표와 정책 의지가 치열할 때 비로소 실사구시라는 말이 제 이름에 값할 수 있다.

거들먹거리는 ‘교언영색의 먹물들’과 달리 학자의 본분에 충실한 전문가들이 강조해왔듯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지출 비중에서 대한민국은 OECD 34개국 가운데 32위(32.35%)다. OECD 평균(40.55%)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다. 신자유주의 종주국 미국도 37.8%이다.

▲ 지난 8월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지난 8월1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그 말은 문재인 정부에 사회경제 정책 확대를 촉구하는 선언이 무슨 ‘주의’에서 비롯한 ‘원칙’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한국 경제는 사회복지를 늘릴 조건도 갖추고 있다. 조세부담률이 20% 수준으로 OECD 평균 25%에 크게 떨어진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에서 최근 내놓은 세법개정안은 외려 감세로 귀결되었다. 대체 어쩌자는 셈인가. 정치인 문재인을 무조건 지지한다고 대통령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세련된 보수논객’을 초청해 청와대가 학습할 때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조세부담 의제만 나오면 ‘세금 폭탄’이나 ‘기업 죽이기’ 따위로 여론을 몰아치는 재벌신문과 그 신문에 기고하며 틈날 때마다 진보세력을 비난하는 ‘사이비 사민주의자’들로 대한민국의 여론 지형은 크게 뒤틀려 있다.

젊은이들이 사랑을 나눠 아이를 낳으면 자녀수당, 보육비에 이어 대학 졸업할 때까지 교육비를 모두 챙겨주고, 1년에 휴가를 6주나 가고, 해고되더라도 실업 수당이 나와 생존권에 위협을 받지 않는 사회는 무슨 꿈나라가 아니다. 인구가 적은 북유럽국가만도 아니다. 보수당이 장기 집권하고 있는 독일도 그렇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지’를 이야기하면 대뜸 ‘포퓰리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언제나 기득권을 대변해온 언론인과 교수들 ‘덕분’이다. 노동운동을 마녀 사냥해 온 저들은 늘 ‘국가 경쟁력’을 들먹인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노사공동경영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제조업과 경제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튼튼하다.

간곡히 거듭 촉구한다. 설령 패하더라도 제발 제대로 싸워 보기 바란다. ‘촛불정부’의 참 이상한 ‘실사구시’로는 “국민 삶을 개선”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맞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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