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을 규명하고 위법행위에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여기에 관여한 현직 법관들을 탄핵소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법원이 사법농단 및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 압수수색 영장을 무더기 기각하는 가운데 탄핵 제도가 사법 권력을 외부로부터 통제할 유일한 장치라서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개 정당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이 주제로 2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백혜련 의원,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 민주평화당 박지원‧천정배 의원, 정의당 심상정‧이정미‧윤소하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공동주최했다.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이래 법관 탄핵을 중심 주제로 국회 토론회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27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토론 참가자들은 ‘탄핵소추 외에는 어떤 경우에도 국회 등 국가기관이 법관을 견제할 권한 장치가 없다’며 탄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온 윤진희 뉴스1 법조전문기자는 “사법부는 ‘법원 내외의 견제가 전혀 없는 상태’란 의미로 사법 독립을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다”고 진단했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관 탄핵이라는)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에 사법권을 통제할 수단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헌법 제65조는 대통령뿐 아니라 법관 등 법으로 정한 공무원도 직무집행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 탄핵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는 재적의원 3분의1 이상이 발의하고 재적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의결된다. 의결 후에는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심판과 같은 심리 절차를 거쳐 결정한다.

판사 탄핵소추 시도는 국회 개원 이후 지금까지 두 차례 있었으나 부결되거나 폐기돼 실제로 소추가 이뤄진 적은 없다. 윤진희 기자는 “탄핵 제도가 있지만 실질화하지 못한 까닭에 지금과 같은 사법농단 사태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양승태 대법원 시절 이들 법관의 헌법‧법률위반 내용은 탄핵 요건을 충족한다. 서기호 민변 변호사(전 판사‧국회의원)는 사법농단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한 조직적 범죄’라고 규정했다. “2013~2017년까지 3명의 법원행정처장이 모두 재판개입 등 사법농단 사태에 관여한 사실이 확인됐고, 행정처장을 임명 및 지휘해왔던 양승태 대법원장의 총괄 지시에 따랐다고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서기호 변호사는 “(탄핵은) 형사상 유죄판결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탄핵 소추는 징벌의 뜻을 담은 형사처벌과 달리 위법행위를 저지른 공직자를 직무에서 배제하는 법적 행위에 가깝다.

▲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개 정당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5개 정당 국회의원 9명과 함께 ‘사법농단 관여 법관 탄핵의 의의와 필요성’을 주제로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상희 교수는 “해외에서 탄핵소추는 일반적으로 (행정부 고위공직자보다) 법관을 향한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거쳐 민주적 정당성을 얻은 입법부·행정부의 경우와 달리 사법부 고위공직자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까닭에 더 엄격한 견제를 받는다. 일본에선 법관을 대상으로 탄핵소추를 청구한 사건이 1948~2017년까지 1만 9814건에 달했다. 탄핵이 소추된 건 48건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관만 15건 탄핵 소추됐다.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 영장이 10건에 9건꼴로 기각되는 수사 흐름도 무시할 수 없다. 지난해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은 88.6%였다. 윤진희 기자는 “비공개인 영장재판 특성상 법원과 검찰 주장을 판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소모적인 법원-검찰 대립구도 아래 사법농단이 ‘죄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온다”며 “검찰 수사와 별개로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의혹을 남김없이 규명하려면 국회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지금 밝혀진 480여 건의 문건도 일일이 키워드로 검색해 접근한 실체의 일부에 불과하다”며 “국정조사를 반드시 함께 진행해 법원의 반성 없는 태도와 검찰 수사의 실체를 국회가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11일 국정조사 추진 방침을 세웠다. 참가자들은 사법농단 의혹 관련 재판을 담당할 ‘특별재판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법안은 지난 14일 박주민 의원이 사법농단 피해자 재심 추진을 위한 특별법과 함께 발의했다.

▲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민중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2018 추석맞이 노동시민사회단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민중의소리
▲ 민주노총과 민중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과 민중당이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에서 ‘2018 추석맞이 노동시민사회단체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사진=민중의소리

열흘 전인 17일에는 전국의 법학전문대학교와 법과대학 교수 137명이 사법농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청와대와 ‘재판거래’는 “권력분립과 법관의 독립을 규정한 대한민국 헌법을 짓밟은 헌법파괴이자 명백한 범죄행위”라며 △법관 탄핵 △국회의 국정조사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관련법 제정 등 해결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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