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대대적인 KBS ‘국민 성금 모금’ 배후에 MB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모금 생방송과 각종 특집으로 전사적 성금 모금 운동을 펼친 KBS가 지난 5일 보도한 내용이다.

2010년 4월11일 KBS 천안함 성금 모금 특별 생방송이 전파를 탔다. 사고 발생 17일째였다. 생방송 나흘 전인 7일 MB 청와대 문건 ‘천안함 순직 장병 보상금 지급 관련 보고’를 보면,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은 순직 장병의 예상 보상금을 보고하면서 국민 성금 모금을 위해 언론사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KBS는 지난 5일자 보도에서 “1차 모금 방송으로 5억 원이 모였지만 국방부는 제2연평해전 보상금 수준에 맞추려면 163억 원을 추가 모금해야 한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실제 2010년 4월11일 이후 KBS에서 모금 방송이 세 차례 더 편성됐다.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실이 일일 모금 현황을 점검하고 모금 완료 시점을 뒤늦게 결정한 뒤 이를 방송사에 전달키로 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청와대와 KBS의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당시 KBS 사장은 MB 언론 특보 출신 김인규 현 경기대 총장이다. 공영방송 공정성을 MB 정권 입맛에 맞게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1973년 KBS 공채 1기로 입사했다. 김 전 사장은 MB 정부 때인 2009년 1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KBS 사장으로 재직했다. 그때 ‘김인규 경영진’은 천안함 성금 모금을 어떻게 기획했을까.

▲ KBS 뉴스9은 지난 5일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대대적인 KBS ‘국민 성금 모금’ 배후에 MB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KBS뉴스 화면
▲ KBS 뉴스9은 지난 5일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대대적인 KBS ‘국민 성금 모금’ 배후에 MB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사진=KBS뉴스 화면
김인규 “당초 계획보다 모금액 저조” 질타

미디어오늘이 지난해 입수한 ‘KBS 임원회의록’을 보면 2010년 4월11일 천안함 성금 모금이 기획·논의된 시점은 생방송 일주일여 전인 4월5일. 당시 김 전 사장은 KBS 임원들에게 “이럴 때 KBS가 뭐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진짜 사나이’ 추모 모금 운동이 어떨까. 다들 자녀들도 있는데”라며 “빠르면 이번 주 토요일을 목표로. 외부엔 일체 얘기하지 말고”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국민통합 계기로 승화시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산가족찾기, 금모으기와 비슷한 상황이다. 국민의 정신적 대미지(damage)가 크다”고 덧붙였다.

생방송 방송 직후인 12일 임원회의에선 “주말 천안함 생방송 수고들 많았다. (KBS 생방송을 보도한) 신문들 반응도 좋았다”면서도 “당초 계획보다 모금액이 저조했다. 대기업들 커뮤니케이션 안 돼서 우왕좌왕했다”고 KBS 보도본부의 ‘무성의’를 지적했다.

4월16일에도 김 전 사장은 돌아오는 주말 특별 생방송에 대해 “총리, 비서실장,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야당 원내대표 등 못 온 사람들이 오게끔 노력이 필요하다”, “진행자들은 돈은 신중하게 쓰겠다고 해야지 절대 누구 준다는 표현은 하지 말라”, “속보 방송 낼 때 앵커들은 조복을 입고 홈페이지에는 ‘명복을 빕니다’를 게시하라”고 지시했다.

천안함 국면이었던 2010년 4월 KBS는 각종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3주 연속으로 주말 모금 방송이 편성되는 등 추모와 애도 분위기를 주도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천안함 성금 모금 방송에 “예능제작국과 기획제작국, 교양제작국에서 PD들이 차출돼 만들어졌다”며 “이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일선 PD들의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천안함 병사들과 (실종 장병 수색에 나선) 금양호 어민이 참변을 당한 상황에 KBS가 애도를 표하고 국민들과 슬픔을 같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신 인양도 아직 안 된 상황에서 모금 방송을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시신을 인양하고 원인규명을 한 후에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KBS가 대대적인 생방송으로 추모 방송을 하며 성금 모금을 벌이는 것은 언론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는 비판이었다. 시신이 제대로 수습 되지 않던 상황에서 진상 규명 대신 강행된 모금 생방송에 다수 시청자가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KBS를 포함한 언론들이 정권 입맛에 맞게 지나치게 ‘북풍 여론몰이’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지난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김인규 전 KBS 사장이 지난 2012년 7월26일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 방북 상황을 보고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데스크는 뭐하고 국장은 뭐하는 거야”

진상 규명은 뒷전이었다. 김 전 사장은 사고 발생 3일 뒤인 3월29일 임원회의에서 “천안함 사태에 KBS는 신중히 대응해야 한다. 사실 보도만이 옳은 것인지, 공정보도 개념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면서 “KBS 태도에 따라 전쟁이 날 수 있다. 밑에 있는 애들 요구는 안 된다. 경륜에 따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젊은 기자들이) 사고를 친다. (중략) 원인이 외부(북한)라고 결론 나면 수천 명 특파원이 몰려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KBS 보도국 간부들에게 젊은 기자들 통제와 관리를 주문한 발언으로 보인다. KBS는 사고 발생 40일 만인 5월5일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분석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보도한다.

정부 비판에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2010년 4월1일 KBS ‘뉴스9’은 “말로만 ‘영웅 대접’”이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해군 한주호 준위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것과 관련, 정부가 한 준위에게 추서한 훈장 ‘보국훈장 광복장’이 그가 2년 후면 받을 수 있는 ‘생색내기용’이라고 비판했다. 그러자 다음날 임원회의에서 김 전 사장은 “기간이 안 되더라도 훈장을 준 것은 공적을 인정한 것”이라며 “남을 조질 때는 쿨하게 하라. (중략) (보도) 제목도 ‘훈장 격상 필요’가 적당하다. ‘말로만 영웅 대접’이란 감정적 제목이 어디에 있나. 특종 할 땐 정말 쿨하게 해야 한다. 저급한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격앙된 어조로 “데스크는 뭐하고 국장은 뭐하는 거야. 메시지 전달 방식을 그렇게 무식하게 하느냐”며 “기자들 식견이 이것 밖에 안 되나. ‘생색을 낸다’느니 ‘퇴직 훈장’이라느니. 천안함 보도 문제점 분석이 필요하다.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본부장들이 관계자 회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위에서부터 이러니 장악이 안 된다. 이러다간 ‘말로만 공영방송’ 말 나온다”라며 간부들을 압박했다.

“특종한다고 까불까불하다가”

KBS ‘뉴스9’은 4월13일 “인양도 불신 자초”라는 리포트를 통해 ‘군 당국이 천안함 함미를 이동시켜 몰래 인양하려던 것 아니냐’는 불신을 자초했다고 보도했다. 김 전 사장은 다음날 임원회의에서 “영웅들의 주검에 대한 추모 방송인데 ‘국방부 불신 키웠다’는 리포트가 어디에 있느냐”고 불만을 드러낸 뒤 “보도본부 게이트키핑 정말 안 돼 있다. 일반 사건 사고처럼 접근하지 마라. 국가기간방송 역할은 다르다.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편집 책임자 불러 모아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 같다. 벌써 3번째다. ‘시신 발굴’, ‘사고 원인’ 등 엄청난 후폭풍 맞는다. 특종한다고 까불까불하다가 역사적 죄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천안함 장병들의 유족들이 KBS 화면에 등장하느냐 여부도 관심 대상이었다. 김 전 사장은 3월29일 임원회의에서 “유족들 울부짖는 모습 많이 내는 것은 선정 보도다. 절제하라”고 지시했고 4월5일에는 “아직도 유족들 우는 장면 3컷 가운데 1~2컷이 나가더라. 쿨하게 가야 한다. 기자들은 그게 정의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내부 분위기를 잡았다. 유족들의 눈물만 조명하는 것은 저널리즘 윤리 차원에서 부적절할 수 있지만 당시 KBS 내부에서 “사고 이후 근 한 달 동안 KBS 1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선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올 만큼 희생자 가족들 목소리는 축소 보도됐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3년 2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디지털방송 전환 유공자 포상에서 김인규 전 KBS 사장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헛돈으로 쓰이는 국민 성금

KBS가 2010년 모은 성금을 포함해 전체 국민 성금 규모는 395억여 원. 희생자 유족들에게 전달하고 남은 성금 가운데 146억 원은 천안함 재단 설립에 투입됐다. 천안함 재단은 생존 장병 58명에게 위로금 500만 원에서 최고 1200만 원을 전달했다.

지난 5일 KBS 보도에 따르면 2011년부터 최근까지 지출 내역 분석 결과, 재단은 관리비와 운영비로만 10억 원을 넘게 지출했다. △천안함46용사 추모 사업 △천안함46용사 유가족 지원 사업 △천안함 승조원의 사회 복귀 지원 및 재활 사업 △호국정신 선양의 홍보, 계승, 보전 및 육성에 관한 사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한 재단 사업비가 20억 원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관리·운영비에 사업비 절반 이상이 쓰였다.

재단은 2012년 12월 KBS 퇴임 기념으로 김 전 사장에게 10돈짜리 ‘황금열쇠’(297만원)를 선물해 논란을 불렀다. 2013년 4월부터 김 전 사장은 천안함 재단 고문으로 활동했다. 천안함 유가족들은 지난 2016년 부적절한 예산 집행을 이유로 재단 해체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인규 전 사장은 9일 오후 통화에서 2010년 KBS 국민 성금 모금에 MB 청와대가 개입됐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그는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해 KBS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KBS가 추모 방송을 직접 하기 전까지 청와대에서 KBS 방송 기획과 편성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방송을 하고 난 뒤 청와대에서 문건을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에서 사전 전화하거나 개입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논란이 되고 있는 MB 청와대 문건 작성 시점인 2010년 4월7일에 앞서 KBS는 4월3일 ‘추모특집 바다사나이, 한주호’, ‘특별기획 천안함 침몰 국민의 마음을 모읍시다’ 등을 편성해 방송했다. 김 전 사장은 “청와대에서 연락한 적 없다. 하늘에 맹세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 뒤 “(청와대에서) 자기들 업적 남기려고 그와 같은 기록을 남긴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 전 사장은 “유족 슬픔만을 강조하는 식의 방송은 자제하라고 강조한 적 있다”면서도 “보도에 개입한 적은 없다. 보도본부 책임자가 보고하면 사장으로서 종합적 조언을 하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천안함 진상 규명 보도가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당시 수십 명 장병이 사망하는 등 진상 규명을 긴박하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다”며 “시간이 조금 지난 뒤 KBS 시사 프로그램에서 균형 있게 천안함 아이템을 다뤘다”고 말했다.

(오후 5시5분 김인규 사장 입장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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