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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온 여성노동자의 끝나지 않은 죽음

“단속반 온다” 거짓 유인한 남성에 피살, 국가구조금 못 받고 민사도 어려워… 근본 원인 ‘추방정책’ 여전

2018년 11월 07일(수)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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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자였다면 한국에 가지 않았을 텐데. 죽지 않았을 텐데.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추티마의 아버지 삼릿씨는 지금도 얘기한다.

추티마씨는 18살에 홀로 한국에 왔다. 2006년에 들어와 관광 비자가 만료되자 미등록체류자가 됐다.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하며 태국 시골에 있는 가족에게 매달 100만원 정도를 부쳤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10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

지난해 11월 추티마씨는 야산에서 발견됐다. 줄곧 터전이었던 경기 안성에서 멀리 떨어진 경북 영양에서 돌에 심하게 맞아 숨진 채였다. 범인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한국인 남성이었다. 김아무개씨는 “불법체류자 단속이 나오니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겠다”며 추티마씨를 차에 태웠다. 김씨는 성폭행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자 살해했다고 경찰에 최초진술했다.

언론은 떠들썩했다. ‘불법체류’, 성폭행, 살인이란 단어는 충격을 던짐과 동시에 관심을 끌었다. 주요 지면이 그의 개인 사연을 다루고, 방송은 따로 꼭지를 냈다. 태국 신문에도 소식이 전해졌다. “김치의 나라에서 태국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당했다”는 제목이었다.

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추티마씨 사건은 진행형이다. 숨진 피해자가 미등록 체류자라서 국가구조금도 못 받았고, 무엇보다도 살해의 근본원인이 된 단속과 추방정책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언론의 이목이 사라진 뒤 그의 죽음을 돌보지 않았다.

▲ 추티마씨 사건 구글 뉴스 이미지 갈무리.
▲ 추티마씨 사건 구글 뉴스 이미지 갈무리.

추티마씨 측은 한국 정부에 범죄피해구조금을 정식 신청하지 못했다. 사건 당시 유족은 ‘범죄피해구조금’ 신청을 문의했다. 담당 부처인 법무부는 ‘가능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범죄피해구조금은 국가 차원에서 범죄로 생명이나 신체에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주는 지원금이다. 지난해 정부는 한국 국민 264명에게 총 93억원을 지급했다.

이 제도는 추티마씨처럼 미등록 이주민에겐 지원하지 않는다. 대법원 예규(가이드라인)는 범죄피해 지원 대상을 “국민이나 대한민국에 적법하게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외국인”으로 한정했다. 미등록이 아니더라도 외국인에게 범죄피해구조금을 지급한 사례는 없다. 법무부와 검찰청은 지원대상이 아닌 추티마씨에 대해선 “현황조차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추티마씨 사건을 지원하는 이현서 변호사(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는 “법무부 의지가 없어 보이고 검토도 지지부진한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추티마씨가 미등록 상태라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고 했다.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미등록체류자는 사회적 지원과 연결될 가능성이 떨어져 오히려 더 보호가 필요한데, 이들을 지원하지 않는 것은 더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다”고 했다.

추티마씨 유족은 본국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주한 태국대사관이 시신 운송 등 지원을 약속해 태국 신문에 났지만, 나중에 ‘금전 지원하겠다는 게 아니라 안내한다는 뜻’이라고 아버지 삼릿씨에게 전했다. 한국에서 삼릿씨를 도운 경기화성이주노동자쉼터 운영자 한상훈씨는 “결국 추티마씨가 일하던 업장에서 위로 격으로 시신 운송비를 치렀다”고 했다.

남겨진 가족은 추티마씨가 한국에서 쓰던 계좌를 열어 보지 못했다. 한상훈씨는 “제일 급한 건 퇴직금인데, 은행은 삼릿씨가 상속인이라는 증명서를 요구했다”고 했다. 문서 처리에 서툰 아버지가 수소문 끝에 태국대사관에 물었다. 확인 절차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까스로 문서를 마련해 퇴직금을 신청해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한씨는 “외국인노동자도 그렇지만 미등록체류자라면 더더욱 퇴직금을 받기 어렵다”며 “100에서 99건은 받지 못하는 실정이지만 시도해보고 있다”고 했다.

▲ 지난해 11월23일 추티마씨 추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준비한 영정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 지난해 11월23일 추티마씨 추모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준비한 영정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사방이 막다른 길이지만 가족은 바다 건너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 삼릿씨는 태국과 한국을 한 번 오가기도 버겁다. 한씨는 “(유족이) 멀리 떨어진 태국에서도 도심과 격차가 큰 시골에 산다. 한국에 와도 체류비용을 치르기가 곤란해 왔다 갔다 하며 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삼릿씨는 지난해 사건 당시 한 번, 재판 1심 선고가 있던 지난 7월에 한 번 한국에 왔다.

삼릿씨는 ‘무엇보다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될지 걱정’이라고 했다. 한씨는 “추티마씨가 태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미등록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까 삼릿씨가 매번 속을 태운다”고 전했다. 가해자의 형사재판은 이주민 법률지원단체 감동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이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김씨에게 중감금(감금해 때리거나 상해를 가하는 행위)과 살인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성폭행을 시도한 혐의는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현서 변호사는 “이 사건은 추티마씨가 미등록체류 중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계획적으로 행한 범죄라는 의견서를 법원에 냈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변호사는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상 소송을 제기해도 실익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추티마씨 죽음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단속·추방 중심 정책도 여전하다. 미등록체류자들이 법무부의 강제단속과 추방을 피하려다 위험에 처한다는 얘기다. 법무부는 지난 9월 “외국인 불법취업자 단속활동을 강화한다”고 발표하고 현장 단속을 이어가고 있다.

범죄피해자의 국적과 체류지위를 가려 지원하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다혜 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범죄피해자를 보상‧지원하는 국제협약과 권고안, 선언들이 있다”며 “여기엔 체류지위나 국적을 차별요소로 삼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장 부연구위원은 “한국 정부는 ‘상호보증’이 있는 유럽과 오세아니아 등 국적 피해자만 지원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범죄피해자는 아시아인”이라고 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지난해 ‘외국인 범죄피해자 지원 현황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피해자의 체류지위 및 가해자의 국적과 관계없이 범죄피해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일본, 스위스와 같이 국내에 주소를 가진 자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이 적절하다”고 결론을 냈다.

장 부연구위원은 “특히 미등록체류자는 사회‧제도적 지원과 연결될 가능성이 떨어져 더 열악하다”며 “가깝게는 통역이나 법률조력 등 여러 지원 방안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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