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래퍼 슬릭(Sleeq)은 디스곡 ‘이퀄리스트(Equalist)’를 발표했다. 이른바 이수역 폭행사건이 발생한 뒤 래퍼 산이(SanE)가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를 내놓은 다음날이다. 산이는 “나는 여성을 혐오하지 않는다. 혐오가 불씨가 돼 혐오가 조장되는 상황을 혐오한다”고 덧붙였다.

“니가 바라는 것? 여자도 군대 가기. 데이트할 때 더치페이하기. (중략) 여성전용 주차장 없애기. 결혼할 때 돈 반반 내기. 역차별 안 하기. 워마드 폐지, 메갈 폐지. 음, 조금 다른 널 믿어주기.
내가 바라는 것? 죽이지 않기. 강간하지 않기. 폭행하지 않기. 죽이고 강간하고 폭행하면서 피해자 탓하지 않기. 시스템을 탓하라면서 시스템 밖으로 추방하지 않기.”

-슬릭, ‘이퀄리스트’

2주 동안 힙합계 디스전을 다루는 기사가 쏟아졌지만, 지난 2년 간 래퍼 슬릭에게 여성을 비롯한 약자에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은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2016년 엠넷TV 프리스타일 랩 프로그램에 나가 랩으로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 “게이 같다는, 계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하는” 국내 힙합씬을 디스했다.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 분포도를 써넣은 ‘출산지도’를 발표했을 땐 노래 ‘내꺼야’를 내놨다. 자신이 국내 힙합씬 밖에 있다고 말한 그는 지난해 ‘올해의 과소평가된 앨범상’과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을 탔다.

‘디스 위한 디스’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해온 래퍼가 궁금했다. 서울 휘경동에 있는 슬릭의 작업실을 찾아 이번 디스전에 대해, 힙합과 혐오 그리고 페미니즘의 관계에 대해 들었다. 그의 곡 작업과 미디어가 비추는 힙합도 물었다. 답변은 담담하면서도 주저 없었다.

- 자기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나.

“‘한국에서 음악하는 슬릭입니다.’라고 합니다.”

- 페이스북 영상에선 ‘페미계 장윤정’이라고 소개했다.

“아.(웃음)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에요. 제가 하도 페미 행사를 많이 다니니까 지어주셨어요. 표현이 재밌어서 그렇게 소개하기도 해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많다는 뜻이니까 기분 좋은 말이죠.”

▲ 지난달 24일 서울 휘경동 작업실에서 만난 래퍼 슬릭.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24일 서울 휘경동 작업실에서 만난 래퍼 슬릭. 사진=김예리 기자

페미니스트들의 표현을 가져와 더 우스워진 거죠

- 최근 이야기부터 하자. 곡 ‘페미니스트’를 향한 비판이 커지자 산이가 가사의 의도를 한줄 한줄 설명했다.

“해석을 제대로 읽진 않고, 어떤 뉘앙스인지만 봤어요. 요는 ‘곡 속 화자가 자신이 아니고, 어떤 지질한 사람을 대변했다’잖아요. 만일 그게 산이의 실제 의도라면 그 곡은 실패한 연출이라고 봐요. 아무도 몰랐으니까요. 만약에 곡 해석을 따로 내지 않고 시간이 흘렀다면 아무도 몰랐을 거고, 그렇다면 나중에 붙이는 해석은 변명이라고 생각했죠.”

산이의 곡 ‘페미니스트’는 “야 그렇게 권릴 원하면 왜 군댄 안가냐. 왜 데이트 할땐 돈은 왜 내가 내. 뭘 더 바래” “합의 아래 관계 갖고 할 거 다 하고 왜 미투해, 꽃뱀?” 등 여성혐오적 가사를 담았다. 그는 곡 발표 전날 이수역 폭행 사건 영상 일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가사 논란은 더 컸다. 영상은 여성들이 남성을 조롱하는 장면이었다. 당사자 여성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당시는 남성 일행과 서로 온갖 비난과 욕설을 내뱉으며 감정이 격화된 상황이었다. 그런 욕설을 하게 되기까지 전후 사정은 모두 빠진 채, 화나서 맞대응하는 장면만 나와 있다”고 했다. 이후 래퍼 제리케이와 슬릭이 각각 ‘No You’re Not’과 ‘이퀄리스트’로 산이를 디스했다. 산이는 다시 제리케이를 겨냥한 곡으로 ‘6.9cm’를 내놨다.

- ‘6.9cm’를 어떻게 들었나.

“안 들어봤어요. 바빠서 들을 시간이 없죠. 가사만 조금 봤어요. ‘좌좀(좌파 좀비의 준말)’ 어쩌고 하는 부분을 보고는 다 볼 필요 없다고 느꼈어요. 전혀 상대방이 모욕감을 느끼거나 뜨끔할 포인트를 전혀 못 잡았다고 생각했어요. 후속곡을 발표하고 해명하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고 봐요.”

- 제목을 보고서 어떤 생각이 드나.

“‘제리케이의 고추가 6.9cm다’라는 건데. “서로 아는 사이인가? 어떻게 알지? 봤나?”란 생각부터 들면서, ‘그걸 지금 욕이라고 하는 건가?’ 궁금해지고. 여러 알고리즘이 그려지는데, 만약 실제로 본 후 서술했다면 ‘그걸 본 걸 왜 증명하지?’ 싶어요. ‘안 봐도 고추 작은 걸 알겠다’는 뜻이면, 뭐랄까. (잠깐 생각하다) 유치한 거죠. 사실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주의자를 놀리는 전복의 의미가 아닌 이상, 남자들끼리 성기 크기로 비방하는 건 정말 우습잖아요. 자기 성기 크기에 대한 신경증을 반증하는 꼴이고요.

심지어 산이는 상대방 사이즈를 비난하면서 ‘6.9cm’라는 페미니스트가 사용하는 표현을 가져와서 더 우스운 꼴이 된 거죠.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주의자들이 어디에 버튼이 눌리는지 아니까 놀리려고 그 표현을 쓰는데, 그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쓴 거니까요. ‘단어의 의미를 정말 잘 모르는구나’ 생각했어요.”

- 사실 여성혐오 가사 논란은 산이가 탄핵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둔 곡 ‘나쁜 년(Bad year)’이나 발라드랩 ‘못먹는 감’을 발표했을 때부터 이어졌다. 산이뿐 아니라 국내 주류 힙합씬이 여성혐오적 가사에 대한 외부 지적에 무감하다는 지적이 있다.

“제가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을 때랑 생각이 달라진 건 없어요. 여성과 약자혐오를 당연시하는 게 힙합이라고 하면, 전 힙합을 안 하는 거예요. 저는 한국 힙합씬에 속해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 소속 레이블(음반 회사)인 데이즈 얼라이브 안에서 가사의 혐오표현 여지를 두고는 어떻게 소통하나.

“피드백도 활발하고, 데이즈 얼라이브에서 회의 거치지 않아도 서로 ‘알아서 하겠거니’ 해요. 일단 혐오표현을 쓸 사람들이 아니에요. 만약 가사에 혐오표현이 있으면 서로 “야, 이거 혐오표현이잖아. 이건 빼.”라는 식으로 말해요. 근데 이럴 때가 있어요. 특정 표현을 썼는데, 곡을 내는 당시 활발한 이슈 때문에 의도가 곡해될 여지가 있다. 그러면 곡 발표 시점을 조정해요.”

▲ 슬릭이 지난해 5월21일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를 맞아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슬릭 제공
▲ 슬릭이 지난해 5월21일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1주기를 맞아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 열린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문화제에서 공연하고 있다. 사진=슬릭 제공

디스랩은 힙합 문화가 아니다

- 이번 디스전은 개인적 비방이 아니라 사회현상을 주제로 했다는 점이 종래 힙합문화와 다른 것 같다.

“글쎄. 일단 이른바 ‘디스전’은 문화라고 볼 수 없어요. 저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다른 그룹이나 사람을 폄하하거나 공격하는 행동 혹은 노래)’가 힙합문화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랫동안 힙합을 들어온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한국 힙합에 디스 문화란 건 없었어요. 이게 한국에서 문화처럼 자리잡은 건, <쇼미더머니> 같은 방송프로그램이 만든 프레임이라고 봐요. ‘힙합이라면 으레 디스를 해야 한다, 필수 요소다!’”

- 디스가 곧 힙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영화에 보면 두 명이 나와 욕하는 랩을 주고받는 장면이 많지 않나.

“그건 ‘배틀랩’이라고 해서 90년대에 있던 다른 장르예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어요. 클럽 같은 곳에서 누가 더 참신한 표현으로 하나, 누가 랩을 더 잘 하나를 두고 랩 대결을 하는 거예요. 여러 주제 중 하나로 상대방의 흠을 비난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상대가 누구건 내가 랩 더 잘해’ 이거예요.

만약 힙합 문화가 뭐냐고 묻는다면, 공원 같은 데 모여서 프리스타일 랩을 하는 건 문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디스하기 위한 랩’은 문화가 아니에요. 저는 이번에 이유가 있어서 상대방을 비방했지만, 디스랩이 문화가 된다면 이유가 나중에 생기잖아요. 일단 비방하기로 한 다음에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아 누굴 비방해야 하지?’ 하게 되는데, 앞뒤가 안 맞죠.”

- TV 같은 주류 미디어가 전하는 힙합 이미지는 실제와 비교했을 때 어떤가.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요즘 <배워서 남줄랩>(EBS)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데, 세트장에 가보면 벽돌, 가스통, 그래피티, 창고 이런 게 있어요. ‘아, 힙합의 이미지가 이렇구나’ 느꼈어요. 뭔가 거칠고, 돈이나 욕망에 솔직하고, 빤스 내리고. 힙합이란 음악이 처음 생겼을 때 그 곳의 생활양식과 결부되는데, 한국엔 그런 문화가 없잖아요. 수입해 온 거죠. 손인사처럼.”

-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보면 국내 주류 힙합 외에도 대중문화 컨텐츠에서 불편한 지점이 많을 텐데.

“그래서 대중문화를 즐기지 않아요. 저는 TV를 보지 않아요. 예능도 폭력적인 상황이 너무 많아서 안 봐요. 드라마도 그렇고요. 아, 유일하게 보는 프로그램이 골목식당인데 여기서도 불편한 지점이 있죠. 백종원씨는 내가 해주고 싶은 얘길 속 시원하게 해주니까 정말 좋아하는데, 그도 가끔 이상한 말을 해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음식이네’ 이런 말들은 싫죠. 그건 제가 나중에 ‘안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면 되는 거예요. 지금처럼요.”

▲ 지난달 24일 서울 휘경동 작업실에서 만난 래퍼 슬릭. 사진=김예리 기자
▲ 지난달 24일 서울 휘경동 작업실에서 만난 래퍼 슬릭. 사진=김예리 기자
나 같은 사람들의 지지가 훨씬 힘이 돼

슬릭은 여성들과 첫 공연을 했다. 중학교 때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여성이면서 랩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는 싸이월드 클럽 ‘레이디액션’이었다.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들과 토요일마다 합주실을 빌려 랩 연습을 했다. 그리고 서울 홍대거리에서 엠프 스피커를 놓고 랩 공연을 시작했다.

- 랩의 어떤 점이 좋아서 시작했나.

“내용보다도 규칙이 좋았어요. 중학교 때 살던 집에서 처음 엠넷 채널을 접했어요. 랩이 노래랑 좀 다르잖아요. 충격을 받았어요. 당장 방에 들어가서 공책을 펴고 쓰기 시작했어요. 그 뒤 언더그라운드 힙합씬도 찾아 듣기 시작했고요. ‘소리바다’에선 유명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 때 다섯 음절의 각운을 모두 맞추는 랩이 유행이었는데, 그 다섯 음절 라임이 너무 신기하고, 나도 해보고 싶다고 느꼈어요. 어려서부터 창작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어요. 학교에서 동시 짓기를 배우고 나선 집에 와서도 계속 써보고, 아빠가 젊을 때 치다 방치하던 기타를 개조해서 놀기도 하고, 컴퓨터가 생기고 나선 작곡도 해보려 하고.”

- 여성 래퍼도 흔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라고 대외에 선언하는 경우도 드물다.

“저도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요. 원래 잘 나서는 성격도 아닌 데다, 나섰다가 ‘쟤 왜 나선대?’ 하는 식으로 눈총을 받는 경우도 몇 번 겪었어요. 그래서 죽은 듯이 학창시절을 보냈고요. 그런데 20대 초중반부터 내 주변 시선에서 벗어나게 됐어요. 다른 사람과 친하게 지내려고 가면 쓰기를 포기했어요. 그 때부터 다른 이들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게 됐어요.

그 전에는 랩해서 잘 나가야 하고, 어디 가서 음악 한단 얘기를 하려면 유명해져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가수라고 하기 창피했어요. 그런데 절 평가하는 사람들과 인연을 끊다 보니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됐어요. 노래를 만드는 게 재밌고, 잘 되면 잘 되는 거고 안 되면 또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실제로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절 지지하는 것이 다른 불특정다수가 절 지지하는 것보다 훨씬 힘이 돼요. 엄마나 아빠가 나를 지지하는 것보다도요.”

- 페미니스트 선언한 후 반응은 어땠나.

“반발이든, 동조든 되게 컸어요. 이슈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라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특히 힙합씬 내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반응이 갈렸어요. 재밌는 건, 성별에 따라 반응이 갈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랬어요. 모두 성별을 밝히고 말하는 것도 아닌데, 가만 보면 이상한 논리로 욕하는 사람은 남성이었어요. ‘여자는 왜 정수기 안 가냐, 뭘 안 하냐’고 말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여성이겠어요.”

- 페미니스트로서 듣기 좋은 노래와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 사이에서 갈등은 없나. 인권 감수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좋아할 수밖에 없는 노래도 있을 것 같다.

“들을 때에 갈등은 있어요. 특히 영어는 뜻을 찾아보거나 오래 들어봐야 성차별적 가사를 알게 되는데, ‘좋지만 짜증난다’는 생각이 들죠.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요. 하나는 ‘너무 좋으니까 듣자’는 거고, 대개는 플레이리스트에서 빼요. 그 곡만큼 좋은 노래는 세상에 많으니까요. 사실 지금까지 ‘이 노래가 아니면 죽음을’이라 할 정도의 곡은 제겐 없어요.

나중에 피드백을 할 수도 있죠. 노래에 대한 감상을 들려줄 자리가 있으면 ‘난 그런 표현이 문제라서 안 듣겠다’라고요. 그런데도 작곡자가 상관없어 한다면 그 사람은 제게서 멀어지는 거고, 반성하고 수정하면 다시 지지할 거고요. 내가 직접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성차별 표현을 감내하고 들어줄 만큼의 인내심은 없는 거죠.”

- 노래를 만들 땐 어떤가.

“딱히 갈등이 없어요. 만에 하나 혐오표현일 여지가 있어 보이면 데이즈 얼라이브에 물어봐서 바꾸고, 나중에라도 밖에서 지적이 오면 다음부터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해요. 만약 혐오표현이 곡의 완성도를 위해 필요하고 그게 요즘 스타일이라면, 전 스타일리시한 거 안 하면 돼요. 대신 악기 사용이나, 음악을 완성하는 다른 요소를 손보면 되니까.”

거창한 표현보단 개인 감정과 경험

슬릭은 지난 5월 두 번째 정규앨범 ‘Life Minus F is Lie’를 냈다. 2집의 톤은 1집의 당찬 선언과 다르다. 수록곡 ‘36.7’에선 조용한 비트에 “짧은 머리에 점프수트를 입고 건방지게 이름 앞엔 hella f*ckin’ feminist”라고 노래했다. ‘AIQ’에선 “자판기 앞에 서서 동전을 세다 보면 온기라는 게 사라진 세상을 만나지. 우린 다른 이율 가지고 목이 다 나갔지. 난 가만히 생각해 내가 가진 비밀 한 갤 너에게 말한다면 해가 뜨지 않을지”라고 썼다. AIQ는 성소수자 가운데 무성애자(Asexual), 간성(Intersex), 아직 자신의 성 정체성‧지향이 의문인 사람들(Questioning)을 가리키는 준말이다.

- 2집으로 갈수록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이야기한 곡이 많다.

“개인적 이야기가 일반화하기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성평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오면 ‘불평등하다’고 말하기는 오히려 쉬워요. 그런데 그 답변이 설득을 얻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차별을 겪고 느낀 감정을 얘기할 때 더 공감을 얻고, 실제로 제 개인 감정을 노래했을 때 더 많은 반응을 끌어내기도 했고요. 그래서 사적인 경험을 얘기하는 작법을 많이 생각해요.”

- 페미니스트 선언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나.

“‘지옥에서 온 페미니스트다’라는 가사를 예전에 썼는데, 거창한 표현을 쓴다는 게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자칭할 만한 사람인가 반문도 하게 되고. 페미니스트가 사상적으로 완벽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데도, 선언을 하고 나면 흠집이 나기 쉽죠. 제가 페미니스트이긴 하지만 24시간 페미니스트는 아니거든요. 누군가를 뒷담화하기도 하고, 성차별 발언도 할 때 있고. ‘36.7’ 가사는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나왔어요.”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우에노 치즈코)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요즘은 무슨 책을 읽나.

“최근엔 텀블벅에서 산 책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소희 외)를 읽었어요. 성판매 여성들의 수기를 엮었어요. 마음이 아파서 중간 중간 멈추면서 읽었어요. 한 사안을 이해하려면 당사자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하다고 느껴요. 관찰자로서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도 시혜적일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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