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때는 임금이 내리는 어명? 서부발전에서 전화가 오면 거역할 수 없어요. 위험해서 작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데, 당장 어떻게든 막 하라는 거죠.”

“‘니들은 우리 시키는대로 다 해야 해,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담엔 일거리 없어’라고 하더라고요.”

“중요한 것은 본청(원청)에서 들어오는 업무지시가 90% 이상이라는 거에요. 원래 본청이 우리한테 하도급을 줬으면 지시하면 안되는 겁니다.”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하청 간 위계적인 소통구조를 직접 증언했다. 발전소의 원하청 구조는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24)씨를 숨지게 한 배경으로 꼽힌다. 노동자들은 원청의 업무 지시가 무차별적으로 내려왔고, 현장의 위험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는 ‘비용’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6개의 인권단체와 노무사, 연구자 등이 꾸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은 24일 태안화력에서 일하는 한국발전기술 노동자들과 타 하청업체 노동자, 서부발전 정규직, 타 화력발전소 노동자 등 48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 조사한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이들의 인권실태를 공개했다. 이 자리에 김용균씨의 동료이자 한국발전기술 소속 노동자들도 참석했다.

▲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은 2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단’은 24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를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현장 노동자들은 태안화력발전소를 ‘태안(원청)공화국’이라 표현했다. 도급관계이기 때문에 하청업체 노동자에 대한 직접 지시는 불법이지만, 모든 업무지시는 원청에서 내려왔다. 이들은 원청이 수시로 직접 지시했고, 이는 감시에 이르렀다고 증언했다. 한 노동자는 “업무 중에 90% 이상은 본청에서 카카오톡 메시지로 사진을 찍어 지시한다. 노동자들은 해결하고 다시 사진을 찍어 올려줘야 하는 업무가 꽤 많다”고 했다.

원청이 현장 상황과 업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 지시해 위험을 가중하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잘못된 방법은 자연발화를 심화하는데, 얘기해도 (원청은) 무조건 자기 말이 맞다고 우겨서 하게 된다. 시키면 하는 시늉이라도 한다”고 증언했다. 조사단은 “이들이 처음에는 큰 기계에 압도당하고 낙탄과 분진에 놀라지만, 둔감해져야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현장 상황을 설명했다.

반면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설비 등 개선 요구는 ‘비용’에 막혔다. 보고회에 자리한 김씨의 동료들은 직접 “그동안 현장 개선 위해 노력했다. 현장 감독에게도 요청하고, TM(Trouble Memo·개선요청서)도 작성했다. 그래도 답이 없어 처장(원청 측)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람이 하면 되는데 왜 개선하냐’는 말”이라고 했다. 다른 동료는 “불량 스크래퍼를 조작하려 1명이 종일 제어실에 상주한다. 그러다 보니 실제 일하는 사람은 5명뿐”이라며 “서부발전은 항상 비용이 문제라고 답한다”고 했다.

조사단은 노동자들이 각자 설비를 만드는 등 대응책을 세우고 심각하게 위험한 상황에선 작업도 거부했지만,  이는 인사평가 불이익 등 노동자의 몫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조사단은 직고용을 통한 정규직화가 이뤄져야만 현장 노동자들이 자신의 안전을 요구할 환경이 된다고 했다. 발전소 내 외주화 자체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의 전문성과 발언권을 밀어내는 까닭이다. 김혜진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은 “재발 방지를 막으려면 진상규명과 대책 마련에 반드시 현장 노동자가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24)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4일 오후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보고회’에 참석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24)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24일 오후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인권실태조사 보고회’에 참석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시민대책위는 오는 27일 고 김용균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49재를 치른다. 김씨 유가족은 진상조사와 재발 방지책, 발전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정부에 요구하며 김씨의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