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현장 쫓고 쫓기는 두뇌 싸움

한국일보는 2017년 8월29일자 1면과 2면에 걸쳐 ‘완전범죄는 없다’는 연재 기획시리즈를 시작했다. 격주 화요일마다 1면을 털어 1년 반 동안 진행된 연재보도는 지난달 15일자 11면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을 끝으로 34번의 시리즈를 마무리했다.

2017년 8월29일자 첫 기사는 ‘고급 전원주택 연쇄 강도’였다. 교도소에서 만난 세 남자가 2011년부터 3년 동안 전국의 고급 전원주택을 돌면서 수십차례 연쇄 강도짓을 벌이다가 2014년 11일 체포된 사건이었다. 이들은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다른 사람이 피운 담배꽁초를 주워다가 현장에 일부러 떨어뜨리고 갔다. 이들은 중산층 노부부가 사는 고급 전원주택만 노렸다. 가끔 허탕칠 때도 있지만 한 집에서 6000만원어치 귀금속과 3000만원의 현금을 챙기기도 했다. 경찰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흘린 꽁초 정보가 오히려 경찰에겐 단초가 됐다.

한국일보 경찰팀은 완전범죄가 사라져야 한다는 바람을 담아 연재기사 문패를 ‘완전범죄는 없다’로 잡았다. 지난달 15일자 마지막 연재기사는 아직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현재진행중인 ‘제주 보육교사 피살’을 고른 것도 그 때문이다.

▲ 한국일보 ‘완전범죄는 없다’ 연재보도 10번째 꼭지 ‘시화호 연쇄 토막 살인’을 다룬 2018년 1월16일자 11면의 사건 개요도
▲ 한국일보 ‘완전범죄는 없다’ 연재보도 10번째 꼭지 ‘시화호 연쇄 토막 살인’을 다룬 2018년 1월16일자 11면의 사건 개요도

 

지갑 속 9만원에 이웃집 노부부 잔혹 살해 뒤 방화

한국일보는 이 연재기사의 서술방식을 전형적인 스트레이트 문장이 아닌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구성했다. 직업없이 돈에 쪼들리던 30대가 옆집 노부부를 살해하고 화재로 위장하려고 방화까지 했던 ‘아산 노부부 살인방화’는 대리운전기사가 2011년 12월14일 새벽 3시30분 아산소방서로 화재신고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감식반이 숨진 70대 부부의 목 안에 그을음이 없다는 사실을 전하자 형사들은 바짝 긴장했다. ‘죽인 뒤 불 질렀다’는 뜻이다. 건너편 집 안상태(33)씨는 알리바이를 만들려고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다운 받아 봤다고 했지만 내용을 묻는 형사에게 “중세시대 칼싸움 영화”라고 말하면서 사건 일체가 드러난다.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하고 불까지 저지른 안씨가 챙긴 돈은 고작 9만원이었다.

비 오는 날 밤길 걷는 여성만 노린 ‘홍대 괴담’

16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밤길 걷는 여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2003년 ‘신촌 퍽치기 살인’은 비 오는 날 젊은 여성만 노려 ‘홍대 괴담’이란 이름으로 삽시간에 소문이 번졌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2003년 9월14일 새벽 5시 홍익대 미대에 다니던 한아무개(23)씨는 고향 갔다가 서울로 올라와 자취방으로 총총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골목길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진 한씨는 이틀 뒤 숨졌다. 그 해 7월부터 시작된 신촌 일대 퍽치기 사건은 한씨까지 모두 7건이었다. 서대문과 마포경찰서 형사 50명이 공조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피해자들 뒷머리 함몰 모양으로 범행도구를 장도리나 벽돌공이 사용하는 다용도 해머로 추정하고 신촌 곳곳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경찰은 그해 10월13일 밤 연희동 성당 옆 골몰길에서 한 외국인 여성에게 같은 범행을 하려든 김아무개(32)씨를 추격 끝에 붙잡았다. 김씨는 동대문에서 장사하다가 실패하고 큰 빚을 져 연희동 옥탑방에 숨어 지내다가 몹쓸짓에 손을 댔다. 한 명을 살해하고 7명을 중태에 빠뜨린 김씨가 챙긴 돈은 고작 89만원이었다.

법원은 김씨에게 15년을 선고했다. 그 때 다친 피해자 중엔 아직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이도 있는데 가해자 김씨는 올해 감옥을 나온다. 김씨를 체포했던 경찰은 “법이 피해자의 남은 삶까지 책임지지는 않는 거겠죠”라고 말했다.

돈 2000만원에 헬스장 10년 지기 살해 후 암매장

지난해 5월 경기 포천 영중면의 한 공동묘지엔 경찰 300명이 모여 뭔가 찾고 있었다. 30대 남자 시신 뒷머리는 둔기에 맞아 움푹 패였고 목엔 노끈이 감겨 있었다. 4월30일 종암경찰서에 실종신고가 접수된 직장인 유아무개(37)씨였다. 유씨는 은행에서 대출받은 2000만원을 챙겨 나간 뒤 시신으로 발견됐다. 

집 근처 헬스장 관장 조아무개(45)씨가 용의자로 떠올랐다. “둘이 헬스장을 같이 차리겠다고 했다”는 탐문 결과가 결정적이었다. 조씨가 실종 당일 새벽 4시40분께 헬스장에서 검은 비닐봉투를 챙겨 나가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20분 뒤 도봉역 근처에서 숨진 유씨가 조씨 차에 오르는 모습도 나왔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조씨는 아내에게 자살 암시 메모를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나 조씨는 도주한 것이었다. 경찰은 도주 엿새 만에 광주터미널 근처에서 조씨를 붙잡았다. 

조씨는 여러 증거에도 6번의 경찰조사에서 범행을 전면부인했다. 헬스클럽 운영이 어려워지자 돈 2천만원에 10년간 형 동생하고 지낸 이를 죽인 조씨는 법정 최후변론에서 ‘바벨 봉으로 팔 근육 운련이 가능한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했고 유가족을 비난해 망자를 2차 가해했다. 법원은 조씨에게 살인과 사체유기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조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경찰은 “그런 사람은 처음봤다. 거짓을 진실로 믿도록 자기최면을 거는 듯했다”고 했다.

10년 묵은 제주 보육교사 피살, 실오라기 한 점이 해결

 

▲ 제주 보육교사 시신이 발견된 주변을 수색중인 경찰.  사진=민중의소리
▲ 제주 보육교사 시신이 발견된 주변을 수색중인 경찰. 사진=민중의소리

2009년 2월8일 새벽 귀갓길에 실종된 보육교사 이아무개(27)씨는 제주 애월읍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9년 하고도 323일만인 지난해 12월28일 택시기사 박아무개(50)씨를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겼다. 경찰은 사건발생 10년만에 유력한 용의자 박씨를 법정에 세우게 됐다.

 

▲ 연재기사 마지막편(34회)인 ‘제주 보육교사 피살’을 다룬 한국일보 지난달 15일자 11면
▲ 연재기사 마지막편(34회)인 ‘제주 보육교사 피살’을 다룬 한국일보 지난달 15일자 11면

 

이 수사는 살해 시점을 놓고 법의학과 경찰 측이 충돌했다. 숨진 이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연락이 끊겼다가 2월8일 새벽 시신으로 발견됐다. 부검의는 사망시간을 발견 24시간 이내라고 했다. 체온이 13도로 외부 온도 9.2도보다 4도 가량 높아서다. 반면 경찰은 1월31일 저녁회식 때 피해자가 삼겹살을 먹었고, 무스탕을 입었기에 2월1일 새벽에 곧바로 살해됐다고 추정했다. 살해 시점에 따라 용의자들이 다 바꿔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최초로 동물 사체 실험까지 해 살해 시점을 특정했다. 2018년 1~3월 사이에 당시 기온과 같은 날을 골라 돼지 네 마리를 투입했다. 동물실험 윤리 규정도 따졌다. 실험결과 경찰이 이겼다. 무스탕을 입고 배수로에 누운 돼지 사체는 사후 1주일 지나도 대기 온도보다 높았다. 두터운 무스탕과 배수로 특성 탓에 체온이 유지됐고 부패도 지연됐다.

경찰은 2018년 5월16일 박씨를 체포했지만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절치부심한 경찰은 택시 트렁크에서 이씨의 치마와 무스탕과 같은 섬유 실오라기를, 이씨 가방과 치마에서 택시기사의 면바지와 같은 섬유조각을 확보했다. 결국 택시기사는 10년만에 구속돼 법정에 서게 됐다.

책에는 작은 편집 실수도 있었다. 30쪽에 들어간 ‘아산 노부부 살인 방화’ 개요도는 63쪽부터 서술된 ‘아산 윤 할머니 살해’ 개요도를 잘못 붙인 것이다. ‘아산’이란 지명이 같아 편집자가 오해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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