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기 간행물인 신문과방송이 2월호 커버스토리로 ‘받아쓰기 보도’를 다뤘다. ‘따옴표 저널리즘’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담은 글이 배치되면서 흥미 있는 쟁점으로 부각되는 모양새다.

기고글의 두 주인공은 KBS 저널리즘토크쇼 J의 패널로 출연 중인 송수진 기자와 임성수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다.

송수진 기자는 “‘저질 정치’는 ‘저질 보도’를 먹고 산다”라는 글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의 폐해를 꼬집은 반면, 임승수 기자는 “정확한 받아쓰기는 좋은 정치보도의 기본요건”이라는 글에서 충실한 받아쓰기는 저널리즘의 기본이라고 주장했다.

송 기자는 지난 2018년 11월 5일 한 경제매체가 강연재 자유한국당 법무특보의 SNS 내용을 보도한 예시를 들어 따옴표 저널리즘의 폐해를 꼬집었다.

강 특보가 “국민들이 지켜온 이 나라를 소수의 홍위병 좌파들이 모든 걸 위태롭게 하고 있다”, “근본도 헌법정신도 모두 무너져 진짜 ‘개판’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고 비난한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린 때는 11월 3일 오후 5시 58분.

하지만 이틀 후인 5일 오후 1시 25분 한 경제매체가 강 특보의 SNS 내용을 보도하고 50여개 타 매체가 받아쓰면서 강 특보의 이름은 포털의 실시간 검색어로 등장한다.

송 기자는 “이렇다 할 대외 활동이 없던 한 정치인을 실검 1위로 등극시킨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가져다 쓴 한 온라인 매체의 첫 기사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며 “이 기사로 득을 본건 강 특보뿐만이 아니다. 강 특보의 발언을 처음 게재한 기사는 조회수 76만을 기록하며 2018년 11월 5일 네이버에서 ‘가장 많이 본 정치 뉴스’에 올랐다”고 썼다.

강 특보는 “기사의 클릭수가 늘어날수록 광고 단가도 올라가고, 결국 언론사의 영업 이익 증가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강 특보의 발언을 처음 다룬 이 기사는 투자 대비 이익이 무척 높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뉴스 가치가 모호한 정치인의 SNS 발언이 몇 번의 ‘복붙’을 거쳐 기사가 된 뒤 뉴스 소비자의 SNS를 떠돌며 거대한 여론을 만들어내자, 언론사는 매출 증가로 이어져 좋다고, 정치인은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 좋다고 말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따옴표 저널리즘’은 정치부 기자들의 기사 쓰기 방식의 하나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뉴스 소비 생태계로 인해 따옴표 저널리즘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송 기자는 자신의 경험담도 털어놨다. 송 기자는 “부끄럽지만 나도 그랬다. 토론회를 가든, 기념행사를 가든, 상임위를 가든, 그 어떤 행사든 정치인의 말에만 집중하게 됐다”며 “‘행사’라는 형식 아래 많은 진실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을 테지만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송 기자는 따옴표 저널리즘식 기사 쓰기가 기자들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인들 발언의 맥락을 따져 보지 않고 확인 취재도 하지 않게 되며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아예 빼고 기사를 쓰는” ‘삭제 신공’을 발휘하면서 비정상적인 저널리즘 행위가 굳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송 기자는 “클릭 몇 번 만으로 관심 있는 정치인의 말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는 시대에, 방금 들은 저 정치인의 말을 그대로 받아쓴 것에 불과한 글에 당당하게 바이라인을 붙여 ‘기사’로 출고한 정치부 기자의 전문성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런 기자에게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기대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발행, 신문과방송 2월호.
▲ 한국언론진흥재단 발행, 신문과방송 2월호.

반면 임성수 국민일보 정치부 기자는 지난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을 예로 들어 정치부 기자의 숙명은 받아쓰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임 기자는 “기자회견 다음 날 대부분의 신문은 3~4개 면을 털어,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문화 순으로 꼭지를 나눠 대통령의 발언을 모두 소개했다. 이보다 더한 받아쓰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기’만 했다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최고 권력자의 발언 하나하나가 갖는 무게 때문이다. 받아쓰기는 정치부 기자의 숙명이다”이라고 주장했다.

임 기자는 송 기자가 속한 저널리즘토크쇼 J의 “타자수인가, 기자인가”라는 주제의 프로그램 내용을 언급하며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받아쓰기가 잘못된 정보나 의도된 거짓을 유포하는 통로로 활용돼온 나쁜 전례가 넘쳐나기 때문”이라며 ‘전원 구조’라는 세월호 참사 오보 문제를 지적했다.

임 기자는 “권력은 늘 크고 작은 거짓말을 한다. 취재원이 항상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자는 ‘받아쓰기’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실 관계에 대한 철저한 확인 없이 함부로 보도해서는 안 된다. 특히 검·경찰과 같은 수사기관, 정보의 비대칭이 심한 출입처일수록 더 경계해야 한다. 어떤 기자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제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임 기자는 “정치부 기자는 왜 받아쓰는가? 정치인의 말이 다 ‘사실’이거나 그들의 주장에 전부 동의해서인가? 아니다. 사실을 담은 주장, 공감하는 발언뿐 아니라 사실이 아닌 주장, 동의할 수 없는 주장도 받아써야 한다. 그것이 취재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은 그다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8년 12월 28일 당 전국장애인위원회 발대식에서 “정치권에서 말하는 걸 보면 저게 정상인처럼 비쳐도 정신 장애인들이 많다”며 “이 사람들까지 포용하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 여당 출입기자들이 장애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받아쓰지 말자고 판단을 내렸다면 국민은 여당 대표가 장애인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고 발언했다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을 거라는 게 임 기자의 주장이다.

임 기자는 따옴표 저널리즘이 기자의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공을 들여 쓴 기획기사보다 정치인의 발언을 거의 그대로 전달한 기사가 더 많은 독자를 끌어당기기도 한다. 받아쓰기만 해도 높은 조회수를 기록할 수 있다. 조회수는 곧 매출이다. 정치부 기자는 취재한 모든 발언을 누구보다 빨리 온라인 기사로 내보내야 하는 압박과 유혹에 시달린다. 그러니 정치부의 ‘받아쓰기 저널리즘’은 온라인 뉴스 시대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기자 개인의 직업윤리와 전문성 결여 탓으로만 몰아세울 순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임 기자는 “‘받아쓰기’ 비판의 핵심은 결국 기자들이 정치인의 발언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중계한다는 지적으로 수렴된다...(중략)...독자와 시청자는 신속한 뉴스를 소비하는 동시에 한발 더 나간 분석과 풍부한 해설, 전망도 함께 요구하는 ‘까다로운 구매자’다. 정치부 기자는 잘 받아써야 하는 동시에, 받아쓰는 것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려운 과도기에 놓여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송수진 기자와 임성수 기자의 문제의식 요지는 다르지만 받아쓰기 행태가 더 이상 기자들에게 지속 가능하지 못한 모델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결국 온라인 정보의 홍수 시대에 받아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언론계가 받아 안은 숙제와 같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치인들의 막말에 반응해 대결구도로 모는 기사 형식에 맞춰 손쉬운 보도를 하려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전직 기자인 윤형중 LAB2050 연구원은 “따옴표 저널리즘을 끝내려면”이라는 글에서 “국회의 한켠에선 취재거리(공청회, 상임위 정책 법안 통과 과정 등)가 널려있는데도 언론은 당 지도부의 회의와 국회 복도에서 벌어지는 정치인들이 힘겨루기에만 주목한다. 그것이 정치저널리즘의 진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