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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념의 조선일보, 남은 건 ‘비건이 닭한마리 먹었다’

조선일보 “(비건은) 국자로 냄비 속 닭다리를 건져 올렸다”… 북한이 또 영변 카드 꺼냈다, 근거는?

2019년 02월 09일(토)
이정호 기자 leejh67@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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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갔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8일 저녁 6시35분께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서울에 도착한 비건은 이날 밤 9시께 주한 미 대사관에서 본국에 협상결과를 보고했다.

여기까지는 9일자 아침신문 대부분이 밝힌 내용이다. 9일 아침신문은 대부분 비건 대표가 묵은 서울 종로구 한 호텔 앞에서 뻗치기 하면서 차 타고 이동하는 비건 대표를 찍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9일자 3면에 차 안에 탄 비건 대표를 찍은 뉴스1의 사진을 실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5면에 차 안의 비건 대표를 찍은 연합뉴스 사진을 썼다. 대부분 8일 밤 8~9시 사이에 찍은 사진이었다.

조선일보, 심야식당서 국자 든 비건 사진 1면보도

그러나 조선일보는 달랐다. 9일자 조선일보 1면엔 편한 옷차림의 비건 대표가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웃으며 닭한마리를 먹는 사진이 실렸다. 밤 11시까지 버틴 조선일보 사진은 돋보였다. 집념의 조선일보는 비건 대표가 끓는 냄비에 국자를 넣으며 웃는 사진을 건졌다. 조선일보는 이 사진에 ‘서울로 돌아온 한밤에 닭한마리 식사’라는 제목을 붙여 “(비건 대표가) 밤 11시쯤 숙소인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서울에 도착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찍은 주요 신문 사진들. 시계방향으로 9일자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3면, 한겨레신문 5면.
▲ 서울에 도착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찍은 주요 신문 사진들. 시계방향으로 9일자 조선일보 1면, 동아일보 3면, 한겨레신문 5면.

조선일보는 사진 아래 1면 기사에서 “(밤 11시쯤) 숙소 근처 식당에 들러 닭한마리를 주문”했고 “칭다오 맥주를 가득 채워 건배한 뒤 맥주를 들이켰다”고 썼다. 물론 조선일보 기자는 “협상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었느냐”고 질문했지만 비건 대표는 “대답 할 수 없다. 지금 나는 배가 고프다”고만 했다.

조선일보는 4면에 이어진 기사에서 비건 대표가 “밝은색 청바지”의 “편한 옷차림으로 서울 시내를 활보해 호텔에서 식당으로 이동했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기자의 질문에 “(비건 대표가) 살짝 웃다가 국자로 냄비 속 닭다리를 건져 올렸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비건 대표 일행은 자정 무렵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자정 무렵까지 현장을 지킨 조선일보의 의욕은 좋았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비건 대표에게 계속 질문했지만 의미 있는 말을 듣진 못했다. 조선일보는 “다낭에서 회담이 열리는 것이냐”고 질문했지만 이마저도 비건 대표는 “살짝 웃다가 국자로 냄비 속 닭다리를 건져 올렸다”로 끝났다. 결국 9일 아침 북미 2차 회담은 다낭이 아닌 하노이라는 발표가 나왔다.

게다가 조선일보 1면의 비건 대표 사진 뒤로는 ‘닭 한 마리 맛있게 드시는 법’이란 식당 내부 안내문과 유리창 너머 맞은 편 ‘해물파전’ 가게도 나온다. 식당이 비건 대표 숙소인 광화문 근처라는 사진설명까지 썼다. 안내문만 봐도 광화문 일대 직장인이라면 이 식당을 손쉽게 안다. 기자의 의욕은 이해하지만 외교적 결례 여부를 떠나 좀 과했다. 적어도 안내문은 가리는 게 옳았다.

‘청바지’ ‘닭한마리’ ‘칭다오 맥주’ 나왔지만 소득 없이 끝나

밤늦게까지 버틴 조선일보는 ‘청바지’ ‘닭한마리’ ‘칭다오 맥주’ 말고는 별소득 없이 취재를 마무리해야 했다.

비건 취재의 핵심은 평양 협상의 내용이다. 2박3일간 50시간 넘게 이어진 평양 협상은 결국 예측기사로 채워졌다. 한겨레신문은 9일자 1면에 이어 5면 머리에 ‘55시간 밀도있는 평양 담판…정부, 협상 잘된 걸로 안다’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한겨레는 이런 근거를 ‘복수의 정부 고위관계자’의 입을 빌렸다. 이들은 한겨레 기자에게 “평양 실무협상이 잘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평양 협상을 한겨레와 달리 해석했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비건 대표와 50시간 넘는 협상에서 1993년부터 26년간 써온 낡은 ‘영변 카드’를 또 꺼내들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9일자 4면에 ‘위기→합의→파기 되풀이…26년간 한발도 못나간 영변 핵폐기’란 제목의 머리기사 첫문장부터 “북한은 (중략) 평양에서 열린 실무협상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시작했다.

북한이 또 영변 카드 꺼내들었다는 근거는?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1993년부터 북한이 국제사회에 영변 핵시설로 위기를 조성했다가 폐기를 약속하고는 막대한 이득을 챙긴 뒤 다시 파기하기를 반복해온 역사를 소개했다. 조선일보는 북한이 이번에도 26년 동안 우려먹은 영변 핵폐기를 또 꺼내들었다고 보도했다.

▲ 북한이 2박3일 평양 협상에서 ‘영변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조선일보 9일자 4면 머리기사.
▲ 북한이 2박3일 평양 협상에서 ‘영변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조선일보 9일자 4면 머리기사.

그런데 조선일보는 ‘영변 카드’ 주장의 근거를 밝히지는 않은채 ‘알려졌다’ 뒤로 숨었다. 한겨레가 협상이 잘됐다고 한 근거를 ‘복수의 정부 고위관계자’라고 밝힌 것과 대비된다. 조선일보는 4면 기사 첫 문장부터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 뒤 이를 사실로 규정하고 지난 26년의 협상의 역사를 소개한 뒤 기사 끝부분에 ‘전직 고위 외교관’과 ‘김승 전 통일부장관 정책보좌관’ 멘트로 이를 뒷받침할 뿐이다. 그나마 두 사람 중 ‘전직 고위 외교관’은 “영변 핵시설은 안전문제를 우려해야 할 만큼 노후화가 심각하다”고 했다고만 발언해,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영변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사실과 무관하다.

영변 카드를 둘러싼 논란은 국제사회가 일치된 입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도 약속 파기를 미국이 먼저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영변 카드를 꺼내 들었을 수도 있다. 비건을 밤늦게까지 만났던 열정의 조선일보가 이를 2박3일 평양 협상의 핵심으로 내세우려면 영변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직·간접 근거를 좀 더 밝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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