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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훈 “조선일보 불편해하는 세력이 매일 공격”

창간 99주년 기념사 “3·1운동 없었으면 조선일보도 없었다”… “조선일보가 통일시대 이끌어야”

2019년 03월 11일(월)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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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이 조선일보 창간 99주년 기념식에서 “조선일보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세력이 조선일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격하고 있다”며 “우리 스스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창간 99주년 기념식은 지난 5일 오전 조선일보 편집동 2층 미술관에서 열렸다. 기념식에는 방 사장, 홍준호 발행인, 방준오 부사장, 양상훈 주필 등 조선일보 임직원과 계열사 임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방 사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3·1운동과 조선일보 창간의 역사성을 강조했다. 방 사장은 “100년 전 3·1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조선일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일본 총독부는 연인원 100만명이 참가한 전국적인 저항에 직면하자 강제병합 후 10년 만인 이듬해에 우리말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을 허용했다. 3·1운동이 있었기에 조선일보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조선미디어그룹
▲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사진=조선미디어그룹
그러면서 “조선일보는 3·1운동의 정신인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이어받아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혼을 일깨우며 독립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다”며 “일제강점기 조선일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창간 첫해 조선일보는 지령 4호만에 총독부로부터 첫 압수를 당했다”고 설명한 뒤 “(일제는) 1940년 8월10일 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시켰다”고 밝혔다.

방 사장은 “해방 이후에는 분단과 6·25 전쟁을 겪었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도 지역갈등과 이념 대립이라는 장애물을 만났다. 정권에 밉보여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면서도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말은 하는 신문의 소임을 다해왔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최근 ‘그래도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세력은 조선일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격하고 있다”며 “조선일보의 위상이 커지면 커질수록 조선일보 기사와 임직원 개개인을 바라보는 독자와 국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윤리 의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방 사장은 “결코 기자 정신이 위축돼서는 안 된다”며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기자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정신을 되새기면서 더 정확하고 품격 높은 기사로 한국 미디어를 주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 사장은 “조선일보는 2014년부터 통일 캠페인을 진행해왔다”며 “비록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과제가 한동안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남북한의 모든 민족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을 위해 조선일보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통일 시대를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사 기자들의 대기업 관련 금품 수수 및 기사 거래 의혹,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의 횡령·배임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와의 기사·재판 거래 의혹, 방상훈 사장의 친동생인 방용훈 코리아나호텔 사장 일가를 둘러싼 각종 의혹 등에 대해 이번 창간 기념사에는 구체적 언급이 없었다.

도리어 이런 이유로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이들을 염두에 두고 “조선일보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세력은 조선일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격하고 있다”는 표현을 한 것으로도 보인다.

▲ 조선일보 8일자 사보 1면.
▲ 조선일보 8일자 사보 1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창간 99주년 기념사 전문.

조선미디어 가족 여러분. 오늘은 조선일보가 창간 99주년을 맞은 날입니다. 35년 근속상을 받은 홍준호 발행인을 비롯한 48명 수상자분들에게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까지 정확히 1년 남았습니다. 100주년을 맞게 되는 조선일보가 그동안 최고 언론의 위상을 지켜온 것은 한국 언론계는 물론, 기업사에서도 보기 드문 업적이라고 자부합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100년 전 3·1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조선일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 총독부는 연인원 100만명이 참가한 전국적인 저항에 직면하자, 강제병합 후 10년 만인 이듬해에 우리말 신문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창간을 허용했습니다. 3·1운동이 있었기에 조선일보가 있는 것입니다. 

조선일보는 3·1운동의 정신인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이어받아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혼을 일깨우며 독립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조선일보 5대 사장을 지낸 신석우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가 처음 사용했던 우리나라의 국호 ‘대한민국’을 발안하신 분입니다. 일제 강점기 좌우 독립운동가를 한데 묶은 신간회 운동을 주도했던 월남 이상재 선생, 9번의 옥고를 치르면서도 독립의 염원을 불사르셨던 민세 안재홍 선생, 민족자강과 민족주의의 상징이셨던 고당 조만식 선생도 모두 조선일보 사장을 지내면서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습니다. 계초 방응모 선생은 ‘불편부당’ ‘산업발전’ ‘문화건설’ ‘정의옹호’를 사시(社是)로 제정하고 당대 최고의 문필가들을 기용해 조선일보 중흥의 토대를 닦았습니다.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이육사 선생과 백석, 주요한, 박종화, 심훈, 김동인 선생도 조선일보 기자로 재직하면서 한국 근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조선일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창간 첫해 조선일보는 지령 4호만에 총독부로부터 첫 압수를 당합니다. 당시 왕세자 이은과 일본 왕족의 혼인을 주요 기사로 다루면서, 왕세자와 먼저 혼약을 맺었다가 강제 파혼한 조선인 규수의 비통한 사연을 함께 보도하며 일제 정략결혼정책을 꼬집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총독부는 8만8000건이 넘는 본지 기사를 압수했고 네 차례나 정간을 명령했습니다. 급기야 1940년 8월 10일 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일보를 강제 폐간시켰습니다. 

그러나 혹독한 일제의 탄압도 독립과 언론 자유를 갈망하는 선배들의 의지는 꺾지 못했습니다. 1930년대에 우리나라 첫 여성잡지와 소년잡지 창간을 주도했던 노산 이은상 선생은 훗날 “조선일보 기자들은 모두가 일제 총독정치에 항쟁의식을 갖고 민족을 의식하며 붓으로 싸웠다”고 회고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분단과 6·25 전쟁을 겪었고,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도 지역갈등과 이념 대립이라는 장애물을 만났습니다. 정권에 밉보여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할 말은 하는 신문의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최근, ‘그래도 조선일보는 할 말은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막중한 책임과 사명감을 느낍니다. 

사원 여러분. 조선일보 100주년은 비단 조선일보뿐 아니라 한국 언론계와 독자, 나아가 우리나라가 다시 도약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조선일보 창간 100주년을 미래의 100년을 준비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본사는 이를 위해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을 대표로 모시고,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조선일보 100년 포럼’을 발족했습니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각종 기획과 행사는 이미 풍성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청년 100명을 해외로 보내 세계의 현장을 체험하게 하는 ‘청년 미래탐험대 100’ 프로젝트에 따라 1차로 선발된 50명이 조선미디어그룹 기자들과 팀을 이뤄 해외 곳곳을 누비고 있습니다. 

하지만 창간 100주년을 1년 앞둔 지금, 조선일보가 처한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종이 신문의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고 SNS와 온라인을 통해 범람하고 있는 가짜뉴스는 미디어업계 전체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비판을 불편해하는 세력은 조선일보를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위상이 커지면 커질수록 조선일보 기사와 임직원 개개인을 바라보는 독자와 국민들의 눈높이도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은 윤리의식을 갖춰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사가 2017년 10월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 등 존경받는 각계 원로들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를 발족한 것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윤리의식을 고양하자는 취지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기자 정신이 위축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기자정신’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정신을 되새기면서 더 정확하고 품격 높은 기사로 한국 미디어를 주도해 나가야 합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는 미디어 홍수 시대일수록 정론직필하는 신문의 역할은 더 커질 것입니다. 언론자유라는 숭고한 가치를 굳건히 지키고, 우리를 향한 정당한 비판은 자양분으로 삼아 미래의 100년에도 조선일보가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신문’ ‘국민이 기댈 수 있는 신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원 여러분, 조선일보 역사에는 ‘통합과 혁신의 DNA’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1940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된 뒤 5년 3개월 만인 1945년 11월 23일 복간호에서 조선일보가 내세운 화두도 “소이(小異)를 버리고 대동에 합류하자”는 통합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런 통합의 정신을 이어받아 조선일보는 2014년부터 통일 캠페인을 진행해왔습니다. 비록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 ‘평화 체제 구축’이라는 과제가 한동안 표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남북한의 모든 민족이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통일을 위해 조선일보가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통일 시대를 이끌어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또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기치를 내건 정보화 운동으로 한국이 IT 강국으로 부상하는 주춧돌을 놓았습니다. IMF 외환위기 때에는 ‘다시 뛰자’ 캠페인으로 국민들의 역량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쓰레기를 줄입시다’ ‘샛강을 살립시다’ 등 시대를 앞선 환경 캠페인은 우리 사회 전체에 일대 혁신을 일궈냈습니다. 

100주년을 앞둔 지금, 우리의 혁신 DNA가 다시 빛을 발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선일보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제2의 창간에 나서야 합니다. 100년간 종이신문에서 쌓은 경쟁력을 방송과 디지털에 성공적으로 접목하는 것도 우리의 과제입니다. 1등 신문에 안주하면 도태된다는 절박감과 위기의식을 갖고 새로운 100년의 위대한 꿈을 실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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