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의원 사퇴서” 1989년 3월21일자 동아일보 1면 하단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노무현 의원은 당시 사퇴서에서 “민정당은 광주조사 특위와 5공조사 특위에 불참함으로서 국회를 포기했고, 정부는 증인 출석을 방해하고 있다”며 “그들이 즐겨 말하는 소위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노 의원은 “정부가 법을 지키지 않는데 국회가 무슨 소용이고 국회의원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같은날 경향신문은 노 의원이 △민정당이 광주 및 5공 특위에 불참,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있고 △상임위원회 및 국정감사 활동을 통해 노동자에 대한 위법·부당한 행정처리와 공권력 발동을 지적, 시정을 요구했으나 고쳐지지 않았고 △지하철 파업사건도 노동자들이 구속되면서 지하철공사사장은 입건되지 않고 있고 △악법개정의 노력도 물거품이 되는 등 국회와 국회의원이 아무런 일을 하지 못해 사퇴서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 1989년 3월21일자 동아일보 1면.
▲ 1989년 3월21일자 동아일보 1면.
동아일보는 이날 기사에서 “박해 속에서 싸우고 있는 동지들의 투쟁대열에 동참하기 위해 의원직을 사퇴하려 한다”는 노 의원의 사퇴서 내용을 인용했다. 당시 재야단체였던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은 “노 의원의 의원직 사퇴는 국회가 더 이상 민주화와 국민을 위해 역할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노 의원의 사퇴서가 반려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노 의원은 보름 뒤인 4월3일 사퇴의사 철회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했다. 주위의 간곡한 만류 결과였다고 한다.

노무현 의원의 사퇴서가 언론에 보도되고 정확히 30년이 지난 오늘, 그가 한 때 ‘포기’했던 국회는 지금 어떤 모습인가. 30년 전 노무현 의원이 30년 뒤 오늘의 국회를 보았더라면, 그는 또다시 ‘사퇴서’를 꺼냈을지도 모르겠다. 민정당의 후신 자유한국당은 ‘5·18북한군 침투설’을 버젓이 국회에서 유포했고 ‘30년간 입은 낡은 옷, 기득권 양당 맞춤형 패션’(심상정 정의당 의원)으로 불리는 현행 선거법을 개혁하려하자 “좌파독재” 운운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다.

▲ 1989년 4월3일 KBS뉴스화면 갈무리.
▲ 1989년 4월3일 KBS뉴스화면 갈무리.
30년 전 ‘정치혐오 유발자’들은 여전히 국회에서 살아남아 정치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대표되는 선거법 개혁은 특정정당의 유·불리를 떠나 정당득표율이 의석수와 곧바로 연결되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하는 것으로, 1등이 모든 걸 독식하는 현 시스템보다 민의를 반영할 수 있다는 상식에 대한 공감대로 출발했다. 시민혁명이 벌어져도,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국회는 30년 전과 비슷하게 무력하다. 누가 더 자극적인 언사로 언론에 많이 등장하는지만 겨루는 경연대회 같다. 30년 전 초선 의원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더 늦기전에 이제는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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