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의 월화 드라마가 새로 출시되면서 이들 간 시청률 경쟁에 관심이 뜨겁다. 그 중 <파스타>는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 프린스> 등을 히트시킨 MBC가 내놓은 요리드라마이자 트랜디 멜로물이다. 일단 설정은 좋다. 요리로 볼거리를 충족시키면서 요리사들이 성장해나가면서 애정을 싹틔우는 것은 매력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현재 4회까지 방영된 <파스타>는 그러한 기대가 무참하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최악의 노동현장을 그린 '노동지옥 드라마'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 말하며, 사소한 문제이니 지켜봐달라고 무마하기엔 사태가 너무 심각해 보인다.

<파스타>는 첫회부터 신임 셰프 최현욱(이선균)가 부임하자마자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는 선언과 함께 여성 요리사 전원을 하루아침에 해고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부주방장부터 막 보조 딱지를 뗀 초보 요리사까지 네 명의 여성요리사들이 해고된 이유는 각각 다르지만, 해고사유가 공정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 MBC 드라마 <파스타> 주인공 최현욱 역(이선균). ⓒMBC  
 
일례로 두 명의 남녀가 애정행각을 벌였는데, 남자는 남고 여자는 해고됐으며, 여동생까지 덤으로 해고됐다. 설마 그럴 리가? 우연히 해고를 하다보니 여자만 잘린 건가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아니다. 그(이선균)는 공공연하게 "내 주방엔 여자는 없다"고 외치며, 자신이 외부에서 데려 온 남성요리사와 주방보조로 들어온 지 하루 된 남성으로 그녀들의 빈자리를 채우고, 이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술자리를 갖는다. 그러니까 그는 실력과 전문성을 강조하다보니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게 된 전문가주의자가 아니라, 실력보다 성별을 중시하여 여성을 솎아낸 '성차별주의자-확신범'이다. 

그런데 그래도 되는 걸까? 성격이 괴팍하고 여성에 대한 뭔가 안 좋은 기억이 있어서 그러려니, 이해하면 되는 걸까? 해고야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겠거니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 그렇지 않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해고하면 사업주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 제11조, 37조에 분명히 나와 있다.

또 정당한 사유에 의한 해고라 할지라도 최소 30일전에 해고가 예고돼야 함이 '근로기준법' 26조에 명시돼있다. 따라서 드라마가 쏟아내는 "내 주방에 여자는 없다"느니, "넌 오늘부터 해고야" 등의 대사는 개성 강한 상사의 독특한 신념표명도 아니고, 그냥 '나쁜 남자'의 폭언도 아니며,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로 관할 지방노동청에 신고하면 처벌이 가능한 위법행위이다.

그러나 드라마 <파스타>는 이것이 위법은커녕 노동문제라는 인식도 전혀 없다. 무더기로 해고된 여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부당해고인가 알아보거나 복직투쟁도 하지 않으며, 새 일자리와 관사를 대신할 새 거처를 알아볼 뿐이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여주인공 서유경(공효진)만이 계속 직장에 남으려 버티지만, 그녀 역시 해고의 부당함이나 자신의 정당한 노동권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경력을 낮춰 주방보조 자리로라도 있게 해달라고 사정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재입사를 위한 콘테스트에 통과하여 재취업된다.

그뿐이 아니다. 드라마의 첫회에서 음란성 시비가 됐던 "당신의 요리가 섹스보다 낫다"는 대사는 음란함이 아니라 성희롱이 문제이다. 즉 "섹스"라는 단어가 드라마의 대사로 나올 수 없는 수위 높은 단어라서 문제인 게 아니라, 그 대사가 말해진 맥락이 문제다. 저 말은 연인 간에 주고받은 말이 아니라, 레스토랑의 단골손님(을 가장한 레스토랑 오너)이 말단 요리사에게 한 말이다. 그것도 찬사의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외국에선 이런 말도 하곤 한다며 '농지거리'를 거는 말이었다. 현행법은 이런 것을 고객에 의한 성희롱으로 판단하며, 여성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간주한다.

상사에 의한 성희롱도 무시로 일어난다. 탈의실에서 셰프 최현욱(이선균)는 여성요리사 앞에서 아랫도리를 벗으려는 제스처를 취하며, 그것이 싫으면 홀 직원의 탈의실을 이용하라고 한다. 기름진 메인요리와 다이어트식 샐러드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 위해 섹시한 애인과 뚱뚱한 마누라 둘 다 끼고 자라며 쩌렁쩌렁 소리를 지른다. 직장 내에 아무렇지도 않게 울려 퍼지는 상사의 이런 상스럽고 폭력적인 발언 하나하나가 여성노동자들에게 성적 수치심과 위화감을 안기는 성희롱에 해당된다. 어떤 이는 셰프(이선균)를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와 비교하기도 하지만, 강마에가 아무리 "똥 덩어리"를 외쳐도 그것은 성희롱이 아니다. 오케스트라는 취미를 위한 애호가모임이었지 생존을 위한 노동현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 MBC 드라마 <파스타>의 주인공 최현욱(이선균)과 서유경(공효진) 역 ⓒMBC  
 
<파스타>의 직장이 여성노동자에게만 지옥인 것은 아니다. 인사와 상벌이 공정하지 않고, 직원들 간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리더의 명령으로 돌아가는 조직은 노동 강도와 무관하게 생지옥이다. 일관성 없는 명령을 감정적으로 전달하며 독불장군 식의 비민주적 운영을 해 나가는 셰프 밑에서, 직원들은 변덕스러운 셰프의 눈치를 살피고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전략적인 행동을 하기에 바쁘다. 그 결과 동료들 간의 불필요한 경쟁과 갈등이 격해져 직장 내 스트레스가 심해진다.

직원들이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낭비하느라 사소한 실수가 잦아지지만 보고되지 않는다. 실수가 누적되다가 드러나고, 상사는 그런 실수를 찾아내느라 더 많은 호통과 폭언을 퍼붓는 악순환에 빠진다. 결국 경영은 실패로 이어지고, 그 결과 고용이 줄고 노동 강도는 더욱 강화된다. 그는 노동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의 측면에서도 손해를 끼치는 무능한 경영자이다. 단지 버럭 소리 지르는 것만으로 '군기를 잡아' 관리에 성공할 수 있다면 그 많은 경영학 책은 왜 필요하겠는가? 그가 요리의 신기(神技)를 지녔다 한들, 셰프로서는 부적합하다. 모든 요리를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닌 이상 관리능력이 요리능력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파스타>는 최악의 상사(이선균)가 만드는 최악의 노동환경을 보여주지만, 제작자와 마찬가지로 언론 역시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별로 없는 듯하다. 짐짓 요리의 전문성이나 도제적인 특성을 들먹이며 이해를 구하거나, 부드러운 남자 이선균의 변신이 성공인가 실패인가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이에 화답하듯 '까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버럭 선균'에게 반했다는 시청자 반응이 답지한다. 도대체 이런 무비판적 수용을 어찌 봐야 할 것인가? '이태백'의 시대이니만큼 아무리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도 취직만 되면 황송하다고 여기기 때문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젊은 나이에 자기계발에 성공하여 남에게 호통 치며 살게 된 셰프에게 환상적으로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일까?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드라마 안팎으로 노동지옥을 노동지옥이라 느끼지 않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막장 노동 감수성에 섬뜩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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