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파면시킨 국민은 이제 정치권력이 다시는 언론장악을 못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헌정사 최초로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킨 원동력은 촛불시위였다. 여론이 뭉쳐 촛불로 불만을 표출했고 거역할 수 없었던 ‘민심의 태풍’은 국회를 움직였고 최종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파면을 끌어내게 만들었다. 물론 ‘공범 박근혜가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으로 심대한 불법행위라는 원인제공이 있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 대통령의 불법과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장기간에 반복적으로 이뤄져왔지만 공영방송 KBS, MBC는 권력 견제, 감시기능을 제대로 해내지못했다는 점은 여러 차례 지적됐다. 그 반면에 종편 JTBC의 활약은 마치 공영방송의 역할을 대신하는 듯한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을 망친 맹목적인 ‘친박세력들’이 JTBC를 적대시하며 협박과 고발을 멈추지않았다는 것은 필지의 사실이다.

국민의 의식과 판단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공영방송사는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장악하려는 유혹을 느끼는 힘센 공조직이 됐다. ‘이명박근혜시대’ 9년 동안 공영방송은 집권 세력들이 사장, 이사 등 인사권을 조종하여 불공정방송을 일삼는 반신불수로 만들어놓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 3월11일 열린 제20차 박근혜퇴진 범국민공동행동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낸 탄핵을 자축하는 폭죽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3월11일 열린 제20차 박근혜퇴진 범국민공동행동 촛불집회는 시민들의 힘으로 이뤄낸 탄핵을 자축하는 폭죽을 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문제는 대통령 파면이후 권력교체가 눈앞에 왔다는 지금이다. 야당이 권력을 잡게되면 현재의 공영방송사 사장 선임과 이사선임 체제하에서는 또 다시 불공정방송이 예상된다는 사실이다. 이제 유권자도 언론도 대통령 선거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당장 국회에서 시급하게 다뤄야 할 문제가 바로 현재 계류중인 ‘언론장악방지법과 언론청문회 개최’여부다. 지난해말 언론 및 시민단체가 이 문제를 부각시켰으나 별 주목을 받지못하고 야당은 집권당탓하는 것으로 끝나버렸다.

언론단체비상시국회의는 지난해말 언론장악방지법을 즉각 제정할 것과 국조특위 6차 청문회를 ‘언론게이트 청문회’로 개최할 것을 국회에 요구했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언론을 청와대 나팔수로 여기는 자들이 일방적으로 장악, 농단할 수 없도록 ‘언론장악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 지난 2월20일 오전 미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 홀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와 신상진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지난 2월20일 오전 미방위 소속 야당 의원들이 국회 로텐더 홀에서 언론장악방지법 처리와 신상진 위원장의 퇴진을 촉구하며 농성에 돌입한 바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시기적으로 이제 때가 지난 것처럼 보이지만 대통령 선거와는 무관하게 국회는 ‘언론장악방지법과 언론게이트 청문회’를 개최하여 다시는 어느 정부가 들어서도 방송장악, 언론장악을 하지 못하도록 법제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은 ‘이명박근혜 정부’의 생생한 교훈이다.

방송법 개정안 등을 담고 있는 일명 ‘언론장악방지법’은 국회의원 162명의 공동발의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상정돼 대체토론을 마친 상태다. 과거 집권 ‘새누리당’이 법안심사소위원회 회부와 심사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국회에 계류 중이라고 하지만 집권당이 사라진 현실에서 제1다수당, 더불어민주당이 얼마나 진정성을 보이느냐가 관건이 되고 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새누리당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야당이) 혹여 정권을 잡으면 현재 이 상황이 괜찮지 않나 방치하는 것이라면 정말 잘못된 생각”이라며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공영방송 좌지우지 하지 않도록 하는 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민적 참사에서조차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본말전도식 보도에 앞장선 공영방송은 국민의 수신료를 받을 자격과 신뢰를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판은 커녕, 미화와 우상화 보도에 앞장 서 결과적으로는 파면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오는 공범노릇을 한 것이 아닌가.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는 헌재의 박근혜 파면 결정 후 청와대 언론장악에 굴종해온 KBS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도 함께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고대영 사장은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공영방송으로서 권력의 부정과 부패를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넘어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이 드러나는 상황 속에도 이를 축소·왜곡하는 뉴스와 방송을 지속했다”며 “탄핵 여론과 세월호 진상조사, 사드 등 우리 사회 주요 현안에 대해 정부와 여당, 대통령의 입장에 치우친 일방적인 보도와 방송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언론자유를 침해함으로써 KBS를 삼류 방송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김연국)도 최근 “대통령 탄핵과 함께 박근혜 부역 체제의 산물인 MBC 경영진도 즉각 탄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MBC본부는 “지난 5년 MBC는 정권의 비리를 감시하기는커녕, 정권의 이익을 수호하는 친위대 역할을 했다”면서 “세월호 참사와 최순실 게이트 국면마다 사태의 본질을 왜곡·훼손하고 정권을 대변하는 잇따른 보도 참사로 시청자들에게 고통을 안겼다”고 질타했다.

▲ 지난해 12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 1000여 명이 ‘언론부역자 청산,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씨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 지난해 12월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조합원 1000여 명이 ‘언론부역자 청산, 언론장악 방지법 즉각 제정’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씨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고대영 KBS 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안광한 전 MBC 사장의 탈을 쓰고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청와대는 어떤 식으로 공영방송사 사장, 이사장선임에 개입했는지, 주요 사건에 청와대는 어떤 식으로 뉴스를 마사지 했는지, 홍보수석은 어떤 식으로 협조요청 혹은 탄압했는지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공영방송사 사주는 어떤 식으로 공정방송 요구를 묵살하고 언론인들을 부당하게 해고 등 중징계에 나섰는지, 탄압은 어떤 식으로 일상적으로 행해졌는지, 방송노조는 왜 그렇게 자주 파업과 투쟁에 나서야했는지 국민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제 주권재민의 시대, 한걸음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만들어내는 것은 대통령을 탄핵, 파면 시킨 국회와 국민이 해내야 할 역사적 과제가 됐다. 야당은 방송장악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 야당이 이제 공정방송을 제도화 시킬 수 있는 언론장악방지법 제정과 언론게이트 청문회 개최의 칼자루를 쥔 셈이 됐다.

“언론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한때 언론인들의 표어로 등장한 문구다. 언론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고통스럽지만 추한 몰골을 드러내고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법제화를 도출해내는 일이다. 수권정당을 원한다면 야당은 지금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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